KLSI 노동브리프
노동조합의 ‘테크 연구소’
AFL-CIO Technology Institute의 설립과 활동, 한국 노동운동에 주는 시사점
AI·자동화 시대 기술변화의 결과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에서 기술변화에 개입하는 노동조합으로
요약
- AI는 추론·판단·계획 같은 구상 기능을 기계로 옮기고 그 범위는 설계 단계에서 정해진다. 기술이 도입된 뒤 결과를 교섭하는 방식으로는 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 AFL-CIO는 2019년 노동의 미래와 노동조합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21년 별도의 501(c)(3) 비영리기관으로 Technology Institute를 세웠다. 이 기관은 기술 분석, 단체교섭 의제 개발, 연구개발 단계의 노동자 참여, 대학·정부·기업과의 네트워크를 맡는다.
- 2023년 Microsoft와 맺은 AI 파트너십은 AI 교육, 기술개발 참여, 노동권을 결합했다. 다만 노동자가 제공하는 지식과 데이터의 소유와 성과 배분은 과제로 남아 있다.
- 한국 노동운동에 필요한 것은 연구소 하나가 아니라 기술을 이해하고 교섭하고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역량을 공동으로 축적하는 체계다.
Ⅰ노동조합 기술대응 방식의 전환 필요성
노동조합의 기술 대응은 대체로 기술이 도입된 뒤에 시작되었다. 자동화로 인력이 줄거나 새 시스템이 노동강도를 높이거나 감시기술이 들어오면 노동조합은 그때부터 고용보장, 전환배치, 교육훈련, 보상을 교섭했다.
기술개발→
기업의 기술도입→
고용·직무 변화→
노동조합 대응
기존 노동조합의 기술 대응 순서
AI와 디지털 기술 앞에서 이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기존 자동화가 근력과 실행 숙련을 기계로 옮겼다면 AI는 추론·판단·계획 같은 구상 기능을 기계로 옮긴다. 노동과정에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인지노동으로 확장된다[1]. 사용자는 채용, 인사평가, 작업배치, 성과측정, 감시, 안전관리에 AI를 활용하고 그에 따라 노동과정 전체의 의사결정 방식이 바뀐다.
어떤 판단을 기계에 넘기고 어떤 판단을 사람이 맡을 지는 설계 단계에서 정해진다. 기술이 현장에 들어올 때에는 수집할 데이터와 노동자 평가 기준이 이미 설계에 반영되어 있다. 노동조합이 그 결과만 교섭하면 기술 선택의 권한은 사용자와 기술기업에 그대로 남는다. 노동조합의 개입 시점을 설계 단계로 앞당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조합은 기업이 선택한 기술의 결과만을 교섭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기술을 어떻게 설계하고 도입할 것인지에도 개입할 것인가.
노동조합이 기술의 설계와 도입에 개입하려면 기술을 분석할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별 사업장이나 산별노조가 AI, 알고리즘, 데이터, 자동화 기술을 모두 독자적으로 분석하기는 어렵다. 노동운동 차원의 공동 인프라가 필요한 이유다. 그 인프라가 갖춰야 할 역량은 네 가지다.
기술을 이해하는 역량→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역량→
단체교섭 의제로 전환하는 역량→
기술정책과 연구개발에 개입하는 역량
노동운동의 공동 기술 인프라가 갖춰야 할 역량
AFL-CIO가 Technology Institute를 세운 문제의식이 여기에 있다.
ⅡAFL-CIO Technology Institute의 설립 배경과 과정
2010년대 후반 미국 노동운동에서도 자동화와 AI가 고용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AFL-CIO의 문제의식은 “로봇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AFL-CIO는 2017년 대회에서 노동의 미래와 노동조합 위원회(Commission on the Future of Work and Unions) 설치를 결의했고 이 위원회는 2019년 보고서를 발간했다[2].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기술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Technology does not fall from the sky)”고 쓰고 기술이 공공정책의 선택과 기업·노동자의 결정을 거쳐 개발된다고 보았다. 위원회는 이 인식에서 노동운동이 신흥기술에 관한 전문성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권고를 이끌어 냈고 이를 맡을 기관의 설립을 제안했다. 위원회가 제시한 기관의 역할은 네 가지다[2].
- 신흥기술 전문성을 쌓고 기술 계획과 도입의 초기 단계에 노동자가 참여하기
- 공공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기술진보의 방향을 조정하는 전략 찾기
- 기술 관련 단체교섭 전략과 협약 문구를 모아 보급하기
- 카네기멜런대학교를 비롯한 대학·연구기관과 협력을 넓히기
이 권고의 바탕에는 자원의 비대칭이 있다. 기술기업과 사용자는 전문인력과 막대한 연구자원을 갖추고 있다. 반면 노동조합은 기술도입이 확정된 뒤에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 개별 노동조합이 각자 기술전문가를 두기에는 비용과 역량에 한계가 있으므로 노동운동 전체가 공동으로 쓰는 기술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1년 1월 AFL-CIO는 이 권고에 따라 Technology Institute(이하 Tech Institute)의 출범을 발표했다. 초대 책임자는 어맨다 밸런타인(Amanda Ballantyne)이다. AFL-CIO는 출범 발표에서 Tech Institute가 “노동운동의 싱크탱크(the labor movement’s think tank)”로서 단체교섭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기술이 초래하는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고 밝혔다. 새로운 기술 변동을 파악하고 혁신이 일어나는 모든 단계에 조직활동가와 노동자를 연결하며 조직화 도구와 단체교섭 모범사례를 개발하는 일도 과제로 제시했다[3].
Tech Institute는 AFL-CIO 안의 담당 부서가 아니라 별도의 비영리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이 조직 형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노동운동 차원에서 기술 전문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둘째, AFL-CIO 재정 외에 민간 재단과 공공 연구사업 같은 외부 재원을 끌어올 수 있다. 실제로 Tech Institute는 2022년 채용 공고에서 민간 재단 중심의 지속 가능한 재원 구조를 구축하는 일을 개발이사(Development Director)의 과업으로 제시했다. 같은 공고에서 밝힌 이 기관의 사명은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기술·혁신 정책과 관행을 마련하고 공공 연구개발 투자의 혜택이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공평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4]. AFL-CIO는 일시적인 AI 대응사업이 아니라 기술전문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기관을 세우려 했다.
책임자는 이후 바뀌었다. 2025년에는 에드 윗카인드(Ed Wytkind)가 임시 사무국장을 맡았고[5] 2026년 2월에는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위원장을 지낸 로런 맥퍼런(Lauren McFerran)이 사무국장에 취임했다[6]. AFL-CIO가 노동법 집행기관의 수장을 지낸 인물을 책임자로 세운 데에서 이 기관이 기술 연구와 함께 노동권 규범을 다루는 역할을 강화하려 한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 시기 |
AFL-CIO Technology Institute 주요 연표 |
|---|
| 2017 |
AFL-CIO 대회에서 노동의 미래와 노동조합 위원회 설치 결의[2] |
| 2019 |
위원회 보고서 발간과 신흥기술 전문기관 설립 권고[2] |
| 2021. 1. |
Tech Institute 출범 발표[3] |
| 2021~2023 |
카네기멜런대학교, 운수노조(TWU), 대중교통노조(ATU)와 버스 자동화 공동연구[7] |
| 2023. 12. |
Microsoft와 AI·노동력의 미래에 관한 기술-노동 파트너십 발표[8] |
| 2024. 9. |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5년 기간 양해각서 체결[9], Microsoft 본사에서 AI 노동 서밋 개최[10] |
| 2025. 10. |
AFL-CIO ‘Workers First Initiative on AI’와 노동자를 위한 AI 원칙 8개항 발표[5] |
| 2026. 2. |
로런 맥퍼런 전 NLRB 위원장 사무국장 취임[6] |
| 2026. 3. |
AFL-CIO와 Tech Institute 공동 주최 Workers First AI Summit[11] |
표의 각 항목 출처는 위첨자 번호의 참고자료를 따른다.
ⅢTech Institute의 네 가지 기능
Tech Institute의 기능은 여러 가지로 나열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 기관이 노동조합의 기술 대응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네 가지로 정리한다.
①노동운동의 기술 싱크탱크
Tech Institute는 AI, 자동화, 알고리즘 관리, 노동자 감시, 데이터 활용 같은 신기술이 노동시장과 노동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정책분석·연구·교육도구를 개발한다[12]. 개별 노동조합이 혼자 분석하기 어려운 기술변화를 공동으로 분석하는 노동운동의 기술정보센터다. 2025년 10월 AFL-CIO가 발표한 ‘Workers First Initiative on AI’도 Tech Institute가 노동조합·정부·시민사회·대학·사용자와 함께 마련했다[5]. 이 구상에 담긴 노동자를 위한 AI 원칙 8개항은 다음과 같다[13].
| 번호 |
AFL-CIO 노동자를 위한 AI 원칙(2025) |
|---|
| 1 |
노동권과 단체교섭 강화Strengthen Labor Rights and Collective Bargaining
|
| 2 |
유해한 작업장 AI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Advance Guardrails Against Harmful Workplace AI
|
| 3 |
저작권과 지식재산권 보호Support Copyright and Intellectual Property Protections
|
| 4 |
노동자 중심 직업훈련Develop Worker-Centered Workforce Training
|
| 5 |
AI 연구개발에서 노동자 목소리의 제도화Institutionalize Worker Voice in AI Research & Development
|
| 6 |
투명성과 책임성 요구Require Transparency and Accountability
|
| 7 |
정부 조달에서 모범 관행 확립Model Best Practices in Government Procurement
|
| 8 |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온전성 보호Protect Civil Rights and Democratic Integrity
|
한국어 번역은 필자가 정리했다.
②기술 문제의 단체교섭 의제화
Tech Institute는 기술 문제를 고용 문제에 한정하지 않는다. AI가 도입되면 다음 사항이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 기술도입 사전통보
- 노동조합과의 협의 또는 동의
- 노동자 데이터의 수집과 이용
- AI를 활용한 평가·징계의 제한
- 알고리즘 의사결정에 대한 설명 요구권
- 인간의 최종 판단 보장
- 감시기술 제한
- 재교육과 직무전환
- 자동화에 따른 고용조정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노동자가 신기술의 향후 도입에 관해 교섭할 권리를 보장받은 단체협약을 사례로 들었다[2]. 2025년 AI 원칙의 첫 항목도 노동권과 단체교섭의 강화다[13]. 이 점에서 Tech Institute는 AI의 고용효과를 연구하는 기관이라기보다 기술을 교섭 가능한 의제로 전환하는 기관이다.
③연구개발 단계의 노동자 참여
Tech Institute가 특히 강조하는 개념은 연구개발에서의 노동자 목소리(worker voice in R&D)다. 2025년 AI 원칙에도 ‘AI 연구개발에서 노동자 목소리의 제도화’가 한 항목으로 들어 있다.
연구개발→
제품개발→
기업 도입→
노동자 영향→
노동조합 대응
기존 모델
연구개발 단계의 노동자 참여→
기술설계→
도입→
운영
새로운 모델: 노동자의 개입 시점을 연구개발 단계로 앞당긴다
Tech Institute는 이를 위해 대학, 연구기관, 정부 R&D 기관과 노동조합을 연결한다. 카네기멜런대학교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Tech Institute, 운수노조(TWU), 대중교통노조(ATU)와 함께 버스 자동화를 연구했다. 버스 운전사는 수시로 바뀌는 도로 상황에 대처하고 응급상황을 처리하며 장애인 승객을 돕는 일이 운전 업무의 일부라는 현장 지식을 연구진에게 제공했고 연구진은 자율주행 기술이 대체하기 어려운 업무를 연구 설계 단계에서 확인했다. 호텔 노동조합 UNITE HERE와 함께한 연구에서는 알고리즘 관리 시스템이 객실 청소를 비효율적으로 배정한다는 사실이 노동자의 증언으로 드러났고 경영진이 배정 방식을 재검토했다. 이 사례를 정리한 밸런타인 등은 연방 연구개발 지원을 받는 연구에 노동조직과의 협력을 요건으로 두자고 제안한다[7].
NSF와의 협력도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 AFL-CIO는 2024년 9월 NSF와 5년 기간의 양해각서를 맺었다. 2022년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근거한 이 협력에서 Tech Institute는 AI, 머신러닝, 반도체, 양자정보과학, 바이오기술 분야에서 연구자와 노동조합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이끈다. 목표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과학기술 연구의 성과에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다[9].
④노동운동의 기술 네트워크
Tech Institute는 노동조합 내부의 기술전문가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AFL-CIO는 출범 당시 이 기관을 협력의 중심이자 허브(collaboration center and hub)로 규정했고[3] Tech Institute는 노동조합과 조합원, 재단, 시민사회, 대학, 공직자, 기업과 함께 일한다고 밝힌다[12].
노동조합–
대학–
기술연구기관–
정부–
기술기업
Tech Institute가 연결하는 주체
이 점에서 Tech Institute는 연구소보다는 노동운동의 기술정책 플랫폼 또는 허브에 가깝다.
Ⅳ‘기술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에서 ‘기술에 개입하는 노동조합’으로의 전환
Tech Institute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기술변화의 결과를 교섭하던 노동조합에서 기술의 설계와 도입 과정에 개입하는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이다.
기존 노동조합의 기술정책은 대체로 방어적 성격이 강했다.
자동화→
고용감소→
구조조정 대응
방어적 기술정책
AFL-CIO는 활동 영역을 기술예측부터 산업·기술정책 참여까지 넓히고 있다.
기술예측→
연구개발 참여→
도입원칙 설정→
단체교섭→
재교육·직무전환→
산업·기술정책 참여
AFL-CIO가 넓히고 있는 활동 영역
고용보호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핵심 과제다. 다만 기술 선택이 끝난 뒤의 고용보호는 기술이 노동과정 통제에 가져오는 변화 가운데 일부만 다룬다. 알고리즘이 작업을 배분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작업장에서는 기술 설계가 곧 노동과정 통제의 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기술 선택을 둘러싼 권력관계에 개입하려면 노동조합이 기술을 직접 분석하는 전문성과 그 분석을 교섭과 정책으로 옮기는 조직 기반을 함께 갖춰야 한다. Tech Institute는 AFL-CIO가 이 두 조건을 갖추려고 세운 핵심 인프라다.
기술에 개입하는 노동조합에도 풀어야 할 긴장이 있다. 버스 자동화 연구에서 운전사의 현장 지식은 자동화가 대체하기 어려운 업무를 밝히는 데 쓰였다[7]. 그러나 같은 지식이 자동화 설계를 정교하게 하는 자료로 쓰일 수도 있다. 참여가 살아 있는 노동의 숙련을 죽은 노동으로 옮기는 통로에 그치지 않으려면[14] 노동자가 제공한 지식과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그 성과를 누가 가져가는지를 함께 다뤄야 한다. Tech Institute의 활동은 설계와 도입에 대한 통제에 집중되어 있다. 소유와 성과 배분 문제는 AI 원칙의 저작권·지식재산권 항목[13]과 공공 연구개발 투자의 혜택을 공평하게 배분한다는 사명[4] 수준에서 다루고 있다.
ⅤAFL-CIO와 Microsoft의 AI 파트너십
2023년 12월 AFL-CIO와 Microsoft는 ‘AI와 노동력의 미래에 관한 기술-노동 파트너십(Tech-Labor Partnership on AI and the Future of the Workforce)’을 발표했다[8]. 양측이 내건 목표는 세 가지다. AI 기술 동향에 관한 정보를 노동조합 지도자와 노동자에게 깊이 있게 공유하는 일, 노동자의 관점과 전문성을 AI 기술개발에 반영하는 일, 현장 노동자의 기술 역량과 요구를 뒷받침하는 공공정책을 함께 형성하는 일이다. Tech Institute는 Microsoft와 함께 노동자를 위한 교육 내용과 전문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다[15]. 이 협력은 통상의 기업 후원이나 AI 활용 교육과 성격이 다르다. 그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노동자와 노동조합의 AI 역량 강화
Microsoft의 AI 전문가가 2024년 겨울부터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 학생을 대상으로 학습 세션을 진행하고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직종별 심화 워크숍을 이어 가기로 했다[8]. 목표는 AI 사용법 교육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AI의 작동 방식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교섭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해력을 갖추는 것이다.
②현장의 요구를 AI 개발자에게 전달하는 통로
노동조합 지도자와 노동자가 Microsoft의 제품 개발자를 직접 만나 작업현장에서 AI가 어떻게 쓰이고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전달한다[15]. 2024년 9월 Microsoft는 레드먼드 본사에서 이틀간 AI 노동 서밋을 열었고 교사, 전기노동자, 공공부문, 통신, 간호, 문화예술 분야 노동조합 대표가 참석했다[10]. 노동자는 기술의 사용자에 머물지 않고 기술개발 과정에 의견을 내는 참여자가 된다.
③기술협력과 노동권의 결합
협력은 기술교육에 그치지 않고 노동조합 조직화와 노동권을 함께 다룬다. Microsoft는 2022년 6월 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가입 권리를 인정하는 노동원칙을 채택했고[16] 같은 달 미국통신노조(CWA)와 중립협약을 맺었다[17]. 2023년 파트너십은 이를 바탕으로 AFL-CIO 가맹 노동조합이 Microsoft 노동자를 조직할 때 적용할 중립 틀(neutrality framework)을 담았다. 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가입 권리를 존중하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발전시킨다는 내용이다[15].
이 사례의 특징은 다음 네 요소를 하나의 협력 모델 안에 결합했다는 점이다.
AI 교육+
기술개발 참여+
노동권+
단체교섭
AFL-CIO–Microsoft 협력 모델의 구성
이 협력은 한 기업의 자발적 약속에 기반한다. 노동자의 의견이 실제 제품 설계에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 같은 방식이 다른 기술기업으로 확산될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할 과제다.
Ⅵ한국 노동운동에 주는 시사점
현대자동차 같은 대규모 제조업 사업장의 조합원은 이미 AI, 로봇,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전환에 따른 직무와 고용구조의 변화를 겪고 있다. 2026년 1월 현대자동차그룹은 CES 2026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부품 서열 공정에 투입하고 2030년부터 조립 공정으로 넓히며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체계를 갖추겠다고 발표했다[18].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소식지에서 “해외 물량 이관, 신기술 도입 등 노사합의 없는 일방통행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단 1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밝혔다[19]. 현대차 단체협약은 신기계·기술 도입 계획을 수립하는 즉시 조합에 통보하고 고용안정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이 조항은 1990년대의 ‘협의’에서 2000년대의 ‘합의’로 강화되었다[20].
이 조항은 기술 도입을 교섭 대상으로 끌어들인 제도적 성과다. 다만 이 절차는 사용자가 도입 계획을 세운 뒤에 작동하고 주로 도입 여부와 고용안정을 다룬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이 고강도·고위험 작업을 맡고 노동자는 로봇 훈련과 감독에 집중한다고 설명한다[18]. 그 구상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로봇과 AI가 어떤 작업을 맡고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며 노동자를 어떻게 평가하고 배치할지를 따지려면 기술을 직접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량이 따로 필요하다.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SK텔레콤, Microsoft Korea 같은 국내외 기술기업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기술기업 사이에 기술을 함께 학습하고 노동자의 경험을 기술개발 과정에 전달하며 기술도입 원칙을 논의하는 제도적 통로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 노동운동이 AFL-CIO 사례에서 참고할 부분은 연구소 하나를 세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다음 요소가 서로 이어지는 생태계다.
노동조합의 공동 기술연구기관→
조합간부·현장노동자 기술교육→
AI·자동화 단체교섭 모델 개발→
노동자 참여형 기술개발→
대학·연구기관·테크기업과의 협력→
산업·기술정책 개입
한국 노동운동의 기술역량 생태계 구성 요소
어떤 형태로 시작할지는 산업과 조직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어떤 기구를 구상하든 함께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기구 구상의 판단 기준
- 개별 노동조합이 혼자 확보하기 어려운 기술 분석 역량을 공동으로 제공하는가
- 그 분석이 단체교섭 요구와 협약 문구로 이어지는가
- 공공 연구개발과 기업의 기술개발 과정에 노동자가 참여하는 통로를 여는가
- 노동자가 제공한 현장 지식과 데이터의 이용 조건과 성과 배분을 교섭 대상으로 삼는가
- 전문인력과 재원을 일시 사업이 아닌 상설 조직으로 확보하는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의 대표적 노동조합과 주요 테크기업도 AFL-CIO Technology Institute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연수나 AI 기술견학을 넘어 노동조합이 기술개발과 도입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Tech Institute가 어떤 전문인력과 재정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Microsoft와 노동조합이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 참여형 기술협력을 구축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AFL-CIO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이 기술변화의 수동적 대응자에 머물지 않고 기술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한국 노동운동 역시 AI와 산업전환에 대응하려면 고용보호라는 전통적 대응을 넘어 기술을 이해하고 교섭하고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독자적 기술역량을 구축하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