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소개] 스페인에서 라이더법 피하기—플랫폼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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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스페인에서 라이더법 피하기—플랫폼 자본주의

이명규 0 87 00:34

논문 소개 · 플랫폼노동

플랫폼의 적응 전략, 국가의 집행역량, 노동조직의 현장 권력

스페인은 플랫폼 배달노동을 특정해 법률로 규율한 유럽 최초 국가들 가운데 하나다. 2021년 라이더법은 배달라이더의 고용관계 추정과 노동자대표의 알고리즘 정보권을 결합한 선도적 입법이었고, 이후 유럽연합 플랫폼노동지침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이 법이 실제 고용관계와 노동과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플랫폼 규제를 추진하는 다른 국가에도 중요한 검토 대상이다. 최근 이 과정을 2026년 초까지 추적한 읽을 만한 논문이 나와 주요 내용을 요약·번역해 소개한다. 이 논문은 제한된 효과를 어느 한 주체의 책임으로 환원하지 않고, 플랫폼의 적응 전략, 디지털 기술, 노동조직의 현장 권력, 국가의 집행역량이 상호작용하면서 법집행 격차를 형성하는 관계적 과정으로 분석한다.

대상 논문
마르티 로페스-안드레우(Martí López-Andreu)·오리올 바랑코(Oriol Barranco)(2026), 「‘법적 두더지잡기’: 스페인에서 라이더법 피하기—플랫폼 자본주의 아래 플랫폼의 전략과 집행의 약화」(“‘A Legal Whack-a-Mole’. Escaping the Rider Law in Spain: Platform Strategies and the Hollowing of Enforcement Under Platform Capitalism”), 『신기술·노동과 고용』(New Technology, Work and Employment), 1–12. https://doi.org/10.1111/ntwe.70043

1. 무엇을 묻는 논문인가

스페인은 2021년 이른바 ‘라이더법’을 제정했다. 배달라이더가 플랫폼의 조직·지시·통제 아래 일하면 고용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노동자 법정대표에게 배차·평가 등 업무상 결정에 사용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시스템에 관한 정보권을 부여한 법이다. 배달노동자의 오분류를 바로잡고 플랫폼의 보이지 않는 통제를 드러내려는 선도적 입법이었다.

이 법은 위로부터 갑자기 주어진 제도가 아니었다. 권리를 위한 라이더(RidersXDerechos, RXD) 같은 라이더 풀뿌리조직의 동원, 노동감독 진정과 소송, 2020년 스페인 대법원의 글로보(Glovo) 노동자성 인정, 노동부와 주요 노총의 연합이 누적된 결과였다. 따라서 라이더법은 플랫폼의 ‘자영업자’ 서사에 맞서 노동자가 만든 정치적 성취이자, 알고리즘 통제를 노동법의 문제로 공식화한 기준점이었다. 논문이 법의 한계를 비판하면서도 입법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법 시행 뒤에도 고용보호가 기대만큼 강화되지 않았다. 일부 기업은 직접고용으로 전환했지만 다른 기업은 중간 물류업체를 끼워 넣거나 자영업과 하도급을 섞었고,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법적 고용주는 바뀌었지만 배차, 경로, 보수, 평가, 계정정지 같은 핵심 결정은 플랫폼 앱을 통해 계속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저자들이 묻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강한 법이 도입된 뒤 플랫폼의 적응 전략, 디지털 기술, 감독기관의 역량, 노동조직의 현장 조건은 어떻게 상호작용했으며, 그 결과 법집행 격차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2. 핵심 개념: 법집행 격차와 수행적 합법성

법집행 격차(enforcement gap)

법집행 격차(enforcement gap)는 문서에 적힌 권리와 그 권리를 현실로 만들 제도적·조직적 조건 사이의 구조적 불일치다. 문제를 감독관의 태만이나 행정인력 부족으로만 보지 않는다. 기업의 조직·기술 재설계 능력, 데이터 독점, 느린 사법절차, 분산된 일터, 취약한 현장 조직이 결합해 격차를 계속 만들어낸다.

수행적 합법성(performative legality)

수행적 합법성(performative legality)은 법이 사라지거나 노골적으로 무시되는 상태가 아니다. 기업은 고용화, 안전, 투명성, 사회적 대화를 말하고 정부도 감독 실적을 제시한다. 그러나 준법의 언어와 절차가 실제 보수·통제·위험의 변화와 분리되면, 합법성은 물질적 결과가 아니라 ‘준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행’이 된다.

이 설명에는 균열된 일터(fractured workplace)와 제도작업(institutional work)이라는 관점이 결합돼 있다. 플랫폼은 경제적·기능적 통제를 유지하면서 고용책임을 하도급업체로 넘긴다. 동시에 계약문구, 앱 기능, 데이터 접근권,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 담론을 바꿔 법의 적용대상과 증거, 준수의 의미 자체를 재설계한다. 저자들은 규제압력에 맞춰 외양을 바꾸되 통제의 중심은 유지하는 이런 노동과정을 카멜레온 노동과정(chameleonic labour process)으로 파악한다.

3. 어떻게 조사했나

연구는 2021년 법 시행부터 2026년 초까지의 집행과정을 추적한 질적 연구다. 노동감독청 고위관계자, 소송 담당 변호사, 노동조합과 라이더 풀뿌리조직 핵심대표를 대상으로 반구조화 면접 9건을 실시했다. 여기에 영국과 스페인의 조직활동가가 참여한 공동토론회(workshop) 2회, 노조·활동가·감독기관이 작성한 전략·평가문서 7건을 결합했다. 표본은 작지만 법 집행과 소송을 장기간 경험한 핵심행위자의 지식을 깊이 파고든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플랫폼 경영자와 중간업체, 비조직 일반라이더를 별도 표본으로 면접하지 않았으므로 기업별 준수율이나 전체 라이더의 경험을 대표하는 조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

4. 법 시행 뒤 무엇이 달라졌나

법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라이더의 노동자성을 공적으로 확인했고, 기업에 사업모델 변경 압력을 가했으며, 노동자와 노조가 부당한 오분류를 문제 삼을 법적 언어를 제공했다. 저스트 잇(Just Eat)은 직접고용과 단체협약 경로를 택했고, 글로보와 우버 이츠(Uber Eats)도 사회보장 당국의 거액 청구와 사법압력을 받으며 고용모델을 조정했다. 따라서 저자들의 주장은 “법이 아무 효과도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변화는 부분적이고 불균등했다. 글로보는 한동안 일부만 고용하고 다수 배달부문은 자영업으로 남기는 혼합모델을 사용했으며, 이후 형식상 고용을 확대하면서도 상당 업무를 물류업체에 하도급했다. 우버 이츠도 법 시행 직후 대규모 접속 해제 뒤 중간업체 고용과 자영업을 혼합했다. 딜리버루(Deliveroo), 스튜어트(Stuart), 게티르(Getir)는 서로 다른 시기에 시장에서 철수했다. 핵심은 ‘고용계약서가 생겼는가’와 ‘플랫폼의 통제와 위험 이전이 실제로 달라졌는가’가 같은 질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 간 차이도 중요하다. 저스트 잇은 직접고용과 제휴 음식점 고용을 병행하면서 주요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반면 다른 기업들은 사법판단과 사회보장 당국의 청구가 커질 때마다 고용범위, 하도급 비중, 앱 운영방식을 달리했다. 같은 법 아래에서도 시장전략과 노조의 접근 가능성, 감독 압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법의 효과를 고용 전환 인원 하나로만 평가하면, 실질 통제자가 누구인지와 하도급 노동자의 조건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놓치게 된다.

5. 플랫폼의 여섯 가지 회피 메커니즘

  1. 1. 구조적 분절(structural fragmentation)

    물류회사, 협동조합, 하도급업체를 계약망에 삽입해 급여를 주는 법적 사용자와 앱으로 일을 통제하는 실질 주체를 분리한다. 감독기관은 책임주체와 관할을 다시 찾아야 하고, 노동자는 여러 업체로 분산되어 조직된다.

  2. 2. 기술적 불투명성(technological opacity)

    배차·평가·제재는 알고리즘이 결정하지만 기업은 영업비밀, 개인정보, 기술적 복잡성을 이유로 기준과 로그를 공개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노동뿐 아니라 감독기관과 노조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까지 통제한다.

  3. 3. 시간적 전위(temporal displacement)

    법원과 행정절차가 특정 계약과 앱 버전을 심리하는 동안 기업은 계약조항, 앱 기능, 사업지역을 바꾼다. 한 모델에 대한 판정이 나올 때에는 이미 다른 모델이 등장한다. 논문 제목의 법적 두더지잡기(legal whack-a-mole)가 가리키는 장면이다.

  4. 4. 담론적 정당화(discursive legitimation)

    ‘유연한 일’, ‘책임경영’, ‘지속가능성’, ‘사회적 대화’의 언어와 자문기구·안전캠페인을 통해 책임기업의 이미지를 만든다. 실제 노동조건보다 대외적 평판과 절차 참여가 준법의 지표처럼 제시된다.

  5. 5. 협상된 준수(negotiated compliance)

    인력과 기술역량이 부족한 감독기관은 가시적이고 처리하기 쉬운 사건과 형식적 지표를 우선한다. 강제보다 협상과 중재가 중심이 되면 기업은 고용화의 범위와 속도, 자료제출 수준을 사실상 협상할 수 있다.

  6. 6. 비공식 노동의 느슨한 감시(lax monitoring of informal work)

    타인 계정을 빌려 일하는 이주·무등록 노동을 플랫폼이 기술적으로 포착할 수 있으면서도 느슨하게 관리한다. 가장 취약한 노동자는 공식 명부와 노조, 감독체계 밖에 남고 플랫폼은 저비용 노동력을 확보한다.

6. 인터뷰가 보여주는 집행현장

아래는 논문에 수록된 면접 발언 가운데 법집행 격차가 형성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을 옮긴 것이다. 한국어 번역 뒤에 영어 원문의 핵심구절을 병기했다.

“일정, 경로, 보수는 여전히 모두 플랫폼 앱이 결정한다.”

“platform’s app”

— 스페인 노동총연맹(CGT) 대표, 논문 p. 6

“실제 사용자는 앱인데 법은 여전히 인간 사용자를 찾는다.”

“the real boss”

— 노동자총연맹(UGT) 대표, 논문 p. 7

“우리가 소송에서 이길 때마다 회사는 계약조항이나 앱의 버튼 하나를 바꾼다.”

“changes a clause”

— 권리를 위한 라이더(RXD) 활동가, 논문 p. 7

“감독관이 나타나면 갑자기 앱에서 모든 주문이 사라진다.”

“orders disappear”

— 스페인 노동총연맹(CGT) 조합원, 논문 p. 7

“그들은 대화를 방패로 이용한다.”

“dialogue as a shield”

— 노동자위원회(CCOO) 대표, 논문 p. 7

“집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집행이 사유화된 것이다.”

“enforcement has been privatised”

— 스페인 노동총연맹(CGT) 조직가, 논문 p. 8

“집행이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그 실패를 가시화한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다.”

“we make it visible”

— 권리를 위한 라이더(RXD) 조직가, 논문 p. 8

7. 이 논문이 말하는 것

여섯 메커니즘은 서로 떨어진 편법 목록이 아니다. 하도급은 책임을 흐리고, 알고리즘 비공개는 그 책임을 입증할 자료를 가리며, 빠른 모델 변경은 판정의 효력을 과거에 묶어둔다. 기업의 책임경영 담론과 감독기관의 부분적 타협은 이 구조에 합법의 외관을 제공하고, 비공식 노동은 규율 밖의 완충지대를 만든다. 플랫폼은 법을 정면으로 거부하기보다 법이 따라가야 할 대상과 시간, 증거를 계속 이동시킨다.

여기서 국가와 노동조합의 역할도 새롭게 보인다. 감독기관은 기업 내부 데이터와 현장 제보 없이 알고리즘 통제를 확인하기 어렵고, 노동조합은 분산된 라이더를 지속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반복되는 위반을 집단적 패턴으로 만들기 어렵다. 제도권 노조가 대표선거와 협약에 접근할 법적 권한을 갖더라도 하도급·자영업 라이더와의 현장 접점이 약하면 그 권한은 일부 고용부문에 머문다. 반대로 조직된 노동자는 내부정보를 모으고 집단신고를 만들며, 기업의 ‘유연성’ 담론에 맞서는 공적 해석을 생산한다.

따라서 법집행 격차는 국가가 미처 메우지 못한 빈틈이라기보다 기업과 국가, 노동조직의 불균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능동적으로 생산되는 결과다. 이 관점은 법률의 강도만 비교하는 접근을 넘어, 누가 정보를 보유하고 누가 위반을 발견하며 누가 판정 이후의 이행을 감시하는가를 묻게 한다. 논문의 가장 큰 기여는 ‘좋은 법’과 ‘실패한 행정’을 분리하지 않고 입법, 기업의 적응, 감독역량, 현장조직을 하나의 집행과정으로 분석한 데 있다.

저자들의 결론은 법률의 무용론이 아니다. 법은 기업을 움직이고 위반을 명명할 기준을 만든다. 다만 법률의 문언만으로 노동과정이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알고리즘과 계약망을 조사할 국가역량, 기업보다 빠르게 변화를 포착할 집행장치, 내부정보를 모으고 집단신고와 교섭으로 전환할 노동자 조직이 함께 있어야 한다. 현장 조직력은 법 집행의 외부 조건이 아니라 집행체계 그 자체의 일부다.

한국에 주는 함의

이 논문은 법 제정이 충분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고용관계 추정과 알고리즘 정보권처럼 비교적 강한 법적 장치도 하도급 관계, 계약과 앱의 변경, 데이터 비공개, 집행 지연, 취약한 현장조직이 결합하면 '부분적'으로만 실현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어떤 제도가 노동자에게 위반을 명명하고 자료를 요구하며, 행정집행과 권리구제를 작동시키고, 집단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법제도적 권력을 실제로 부여하는지가 핵심이다.

사용자책임은 계약서상의 사업자보다 누가 실제로 배차, 보수·수수료, 평가, 계정정지, 안전기준을 결정하는지를 따라가야 한다. 플랫폼과 지역대행사·물류업체가 기능을 나눠 지배한다면 기능별 책임과 공동책임을 함께 물어야 한다. 사업모델과 계약망의 등록, 변경신고, 알고리즘 버전과 로그의 보존이 없으면 판정이 나올 때마다 규율대상이 사라지는 ‘한국형 두더지잡기’가 반복될 수 있다.

알고리즘 설명권은 추상적인 설명서 제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과 감독기관이 배차·보수·평가·비활성화의 변수와 변경이력, 집단적 결과자료를 확보하고 독립적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영업비밀은 비밀유지 절차로 보호하되 자료공개 자체를 거부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운동은 입법 통과 이후의 ‘집행조직화’를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역 거점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결합해 계약변경, 수수료, 사고, 계정정지 자료를 상시 수집하고, 플랫폼과 중간업체별 지배사항을 지도화해 교섭·진정·소송으로 연결해야 한다. 법의 성패는 조문 수가 아니라 실제 배달료와 대기시간, 계정복구, 산재예방, 단체협약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스페인 사례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법 제정이 끝이 아니라 집행을 둘러싼 새로운 조직화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 논문 내용을 요약·번역한 소개글이다. 구체적인 표현과 논증은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