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다'는 착각,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193호 협약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월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노동기구(ILO) 193호 협약의 비준 계획을 묻자 “현재까지 비준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 그리고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본법을 “좀 더 정치하게 다듬는” 것으로 협약의 정신은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발언은 한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두 규범이 “내용상 겹친다”는 전제다. 그런데 193호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정말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두 규범은 표면적으로 같은 대상인 플랫폼 노동자를 겨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문서다. 내용적으로 무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것을 말한다는 착시
193호는 지난 6월 12일 스위스 제네바 ILO 제114차 총회에서 채택된 ‘플랫폼 경제에서 괜찮은 일자리에 관한 협약’을 말한다. 한국 정부도 찬성표를 던졌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국회에 발의된 여러 법안을 통해 고용상 지위나 계약 형식과 무관하게 모든 노무제공자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선언하는 국내 법안이다.
두 규범 모두 “근로기준법이 놓치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정부는 물론 학계 일각에서도 둘을 같은 흐름으로 묶어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의 플랫폼 노동자 보호 입법을 한국이 벤치마킹할 모델로 거론하면서 기본법을 “변화한 노동 현실에 맞는 새로운 사회계약”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193호 협약의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정부는 “(기본법을 만들 것이니) 비준이 불필요하다”고 하고 학계 일각은 “(193호와 같은 내용이니) 기본법이 정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193호 협약과 기본법은 같은 맥락”이라는 전제는 인식 오류의 출발점이다.
정의부터 다르다
193호의 정의는 “디지털 일자리 플랫폼”이라는 기술적·구조적 매개체를 축으로 삼는다. 협약이 적용되는지 여부를 가르는 문턱은 “이 사람이 근로자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의 일이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조직되는가”다. 협약은 플랫폼 운영자, 노무 종사자,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중개자까지 최소 세 당사자를 상정해 다층적 플랫폼 구조에서 누가 무슨 의무를 지는지 촘촘히 나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정의는 다르다.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이라는 관계적 기준이 축이다. 플랫폼이든 방문판매든 학습지 교사처럼 순수 오프라인 노무든 상관없다. 디지털 기술이라는 매개는 정의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기본법은 사업자와 노무제공자라는 양자 관계로 설계돼 193호가 상정하는 3자 구조를 개념적으로 반영할 장치가 없다.
정리하면 193호는 “플랫폼이라는 특정 기술적 통제 형태가 낳은 일의 세계”를 겨냥한 좁고 정밀한 개념이고, 기본법은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개념이 놓치는 모든 사람”을 겨냥한 넓고 느슨한 개념이다. 부분집합 관계는 성립해도, 두 규범을 서로 대체 가능한 등가물로 취급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지위 무관”이란 말의 함정
두 규범이 가장 닮아 보이는 지점은 “고용상 지위와 무관하게 적용된다”는 설계 원칙이다. 그러나 이 원칙이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도 서로 다르다.
193호는 지위 무관 원칙을 항목별로 분리해 적용한다. 결사의 자유·강제노동 철폐·차별 철폐·안전보건 환경(제3조), 작업중지권(제5조),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의 보호(제6조),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정보제공 의무(제13조)는 지위 판정 없이 적용된다. 반면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설명·이의제기권(제15조)은 지위 분류를 “고려하여” 부여되고, 최저임금 보장(제10조 2항)은 아예 “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로 한정된다. 즉 협약이 완전한 지위 무관 원칙을 관철하는 항목은 노동기본권에 그치고 보수뿐 아니라 알고리즘 통제에 대한 구제조차 지위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기본법의 지위 무관 원칙은 다르게 작동한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적정 보수를 보장받을 권리” 같은 조항들은 지위와 무관하게 정의된 대상에게 부여되지만, 위반 시 제재나 구제 절차가 법 자체에 없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추상적인 권리를 명시하고 있을 뿐 사용자에게 이를 강제할 수단이나 위반 시 처벌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193호의 “지위 무관”은 지위 판정이라는 관문을 항목별로 없애면서 그 자리에 구체적 의무를 채워 넣는 설계고, 기본법의 “지위 무관”은 관문을 없애는 대신 그 자리를 선언으로 채우는 설계다. 표어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그 내용물은 다르다.
기본법이라는 형식 자체가 문제다
여당이 기본법과 패키지로 추진하는 근로자 추정제 역시 193호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추정제는 “노무제공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으로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할 뿐, “이 사람이 근로자인가”라는 질문 자체는 소송의 중심에 그대로 남겨둔다. 근로자성의 실체적 판단 기준도 바뀌지 않는다. 반면 193호는 애초에 그 질문을 핵심 관문에서 치워버린다. 두 접근은 “플랫폼 노동자 보호”라는 같은 목표를 놓고 정확히 반대되는 설계 전략을 취한다.
흔히 “기본법 자체가 나쁜 입법 형식은 아니다, 다만 이행 장치가 부실할 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2005년 제정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은 대통령 소속 위원회와 기본계획 수립 근거를 마련했지만 15년 넘게 별다른 개정 없이 유지됐고 네 차례의 기본계획은 “기존 정책을 재배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6년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인구 비상사태 끝에 이 법은 ‘인구전략기본법’으로 전면 개편됐다. 그러나 21년 만의 이 개정이 만들어낸 것도 실은 집행력을 가진 부처가 아니라 예산에 대한 의견 제출권 하나를 얹은 자문위원회였다.
이 패턴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그치지 않는다. 2010년 제정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은 실효성 부족 비판 속에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으로 대체됐지만, 그 후속 기본법마저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헌재는 2024년 8월 29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규정한 제8조 1항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2026년 2월 28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만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시켰다.
그런데 국회는 이 시한마저 지키지 못했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조항은 시한 도과와 함께 효력을 상실했다. 국회 기후특위는 임기 만료로 해산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적정 보수를 보장받을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같은 조항들도 정확히 같은 결함을 안고 있다. 무엇이 ‘적정’이고 무엇이 ‘안전’인지 정량적 기준이 없다. 헌재가 세운 잣대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런 조항들 역시 언젠가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다른 나라는 실체법을 고쳤다
비교법적으로 봐도 그렇다. 2024년 채택된 EU 플랫폼노동지침은 회원국에 고용관계 추정, 알고리즘 투명성 등 구체적 결과의 달성을 요구하며, 2026년 12월까지 국내법 이행을 의무화한다. 스페인은 이미 2021년 ‘라이더법’으로 기존 노동자 헌장을 직접 개정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프랑스는 근로자성 확대 대신 업종별 대표성과 교섭 인프라를 제도화했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등 개별 주가 노동법을 직접 고치는 방식을 택했다. 어느 선진국도 “모든 일하는 사람”을 아우르는 포괄적 선언법으로 문제를 퉁치지 않았다. 모두 실체법 개정으로 직행했다.
한국만 유독 다른 나라들이 회피한 길을 택하고 있다. 물론 이 길의 정치적 매력은 명백하다. 국회 통과라는 단발성 이벤트 하나로 “노동 존중 성장”이라는 상징을 얻으면서 근로기준법 항목별 개정이나 최저임금법상 도급제 보수 기준 신설처럼 정치적 비용이 큰 실질 작업은 뒤로 미룰 수 있다.
결론
ILO 193호 협약과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서로 다른 질문, 즉 “플랫폼이라는 기술이 만든 새로운 통제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와 “근로기준법의 낡은 근로자 개념을 어떻게 넓힐 것인가”에 답하는 서로 무관한 규범이다. 정부가 이 무관함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로 뭉개고 비준을 유예하는 명분으로 쓰는 순간, 국제조약이 갖는 구속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국내의 선언 하나로 대체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 착시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본법이라는 형식 자체다. 실체법 개정 없이도 개혁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바로 그 편리함이다. 착시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앙상한 현실이다. 현 정부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확대할 의지가 없다는 현실과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ILO 193호 협약을 비준할 계획이 없다는 현실.
출처: 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