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노동의 역할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사관계, 노동시장의 분배와 갈등을 조정하는 기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양극화가 더 이상 부수적이거나 주변적인 문제가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불 평등과 양극화의 핵심 지대는 다름 아닌 노동시장이다. 노동시장의 격차가 확대될수록 사회통합은 저 해되고, 저임금 노동시장이 확산될수록 경제의 성장동력은 약화된다. 양극화 문제는 흔히 분배정책의 과제로만 다루어지지만, 실상 그것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구조적 문제이다. 노동시장의 분절과 격차를 방치한 채 사회통합을 말하기 어렵고,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의 확산을 그대로 둔 채 안 정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양극화를 완화할 사회적 조정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본래 노사관계는 노동시장 내의 분배와 갈등을 조정하는 핵심 기제여야 한다. 하지만 제도화된 노사관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양극화가 확대되어 왔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가 사회적 조정기능을 충분히 수행 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한국에 노사관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노동시장 전체의 균 형과 통합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노사관계는 구조적 불균형 상태에 있다. 그것은 기업 내부의 이해조정에는 비교적 강 한 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별 기업 안에서 임금, 근로조건, 복지, 갈등 조정 등의 문제를 다루는 노사관계의 기능이 일정하게 발전해 있다. 그러나 기업 간, 더 나아가 노동시장 전체의 격차를 조정하 는 데서 그것은 매우 취약하다. 이는 단지 법이나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와 관행이 결합된 결 과이기도 하다. 기업 단위에 갇힌 교섭구조, 기업별 이해관계에 묶인 노사관계 관행, 외부 노동시장에 대한 낮은 책임성 등이 결합하면서 한국의 노사관계는 기업 내부에는 강하지만 사회 전체에는 약한 구 조를 형성해 왔다.
노동시장 양극화 → 노사관계 양극화
그 결과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양극화는 상호 악순환에 빠져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2 차 노동시장에서 노조로의 조직화와 교섭의 기회가 제약되고, 이는 다시 노사관계의 양극화로 이어진 다. 반대로 주요 기업 내 노사관계가 더 뜨거워지고 더 많은 자원이 그 내부의 교섭과 갈등에 집중될 수록, 산업 내 노동격차는 오히려 더 심화된다. 조직된 일부의 교섭이 강화되는 것이 자동으로 전체 노동시장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바깥에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더욱 주변화될 위험도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 노동시장의 분화된 지형과 맞물려 있다. 한편에는 대기업, 정규직, 고임금 노동 을 중심으로 내부노동시장이 발달하고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형성된 1차 노동시장이 존재한다. 금속, 화학, 보건의료, 공공, 금융부문의 유수한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에는 기간제, 외주화, 탈임금노동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2차 노동시장이 존재한다. 이 영역에서는 내부노동시장이 부재하고, 노사관계 역시 형성 중이거나 매우 취약하다. 제조하청, 공무직, 배달, 택배, 대리운전, 마트 노동 등이 대표적이다.한국사회의노동문제는바로이두노동시장사이의구조적격차,그리고그격차를 메 우지 못하는 노사관계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노사관계의 조정기능 강화, 무엇을 할 것인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중요한 것은 한국 노사관계에 미흡한 사회적 조정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그 방향을 △주체 재구조화, △교섭단위 재구조화, △교섭의제 재구조화라는 세축으로정리하고자한다.이는각각별개의과제가아니라,서로맞물린 하나의개혁방향이다.사 회적 조정기능을 회복하려면 누가 대표되는가, 어디에서 교섭하는가, 무엇을 교섭하는가가 함께 바뀌 어야 한다.
⓵ 주체의 재구조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 등 2차 노동시장 의 대표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노사관계는 조직된 일부를 중심으로 작동해 왔고, 그 결과 노동시장 주변부의 광범한 집단은 대표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이들을 조정과 교섭의 장 안으 로 끌어들이지 않는 한, 양극화의 완화는 쉽지 않다. 아울러 조직력과 교섭력을 오히려 저하시키는 노 조 난립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존재하는 6,000여 개에 달하는 분산된 노조 구조는 경우 에 따라 전체 노동의 대표성과 교섭 효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기업 내 노조 설립만을 반복하기보다 초기업 노조 가입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조직전략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들의 결사를 장려하고 사용자단체를 활성화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노동 쪽의 조직화만으로는 초기업적 조정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측 역시 개별 기업 단위를 넘어 공동의 규율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집합적 주체로 발전해야 한다.
⓶ 교섭단위의 재구조화: 기업별 교섭만으로는 노동시장 전체의 격차를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업 종·직종·지역 등으로 교섭단위를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기업의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가운데 공 통분모를 만들고 공동규율을 형성할 수 있다. 교섭단위의 확장은 단순히 규모를 넓히는 문제가 아니 라, 개별 기업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회적 기준을 형성하는 문제이다. 특히 원하청 구조가 발달한 산업 에서는 원하청 연대교섭 관행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업단위 교섭 강제와 관련한 법·제도 정 비도 뒤따라야 한다. 현실의 법제도와 관행이 기업별 교섭에 과도하게 고착되어 있다면, 사회적 조정 기능 강화를 위한 교섭단위 확장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⓷ 교섭의제의 재구조화: 지금까지의 교섭은 주로 개별 기업 내부의 임금과 복지 문제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라는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의 교섭은 보다 구조적이고 포괄적인 의제를 다루 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간 조율된 임금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직무·숙련·산업적 특성을 반영하는 방 향으로 임금체계를 표준화하고, 2차 노동시장까지 포괄할 수 있는 초기업적 임금체계를 구축·장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원하청 간 공동복지와 공동산업안전 등 포용적 의제 형성 역시 중요하다. 다시 말해 앞으로의 교섭은 기업 내부의 이익배분을 넘어, 산업과 노동시장 전체의 질서를 형성하는 방향으 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의 역할, 연대와 혁신
이와 같은 노동체제의 전환 속에서 노동의 역할은 중요하고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연대와 혁신이라는 두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연대의 측면에서 노조는 노사관계의 사회적 조정기능 강화를 견인해야 한다. 내부 소통을 활성화하고, 구체적 개혁방안을 제시하며, 기업 내 기득권을 넘어 노 동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이는 단지 도덕적 당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된 노동이 자신의 범위를 넘어 사회 전체의 조정기능 강화를 이끌지 못한다면, 노사관계는 계속 일부 내 부자의 특권적 질서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오늘의 노동운동에는 자기 이해를 방어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의 질서를 재구성하려는 의지와 구상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혁신의 측면에서도 노동은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마침 지금은 복합대전환의 시기이며, 모두 가 함께 움직여야 할 시기이다. 기후위기, 디지털화, 산업전환, 인구구조 변화가 중첩되는 상황에서 노 동은 혁신의 걸림돌이 아니라 적극적 참여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기 일자리 수호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연대적 산업전환과 혁신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변화에 소아적으로 순응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의 방향과 속도, 그 사회적 비용의 분담 방식을 둘러싼 논의에 노동이 전략적으로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이 배제된 혁신은 갈등을 낳기 쉽고, 노동이 참여하는 혁신만이 지 속가능한 전환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감당할 과제
이러한 방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감당해야 할 추가적인 과제들이 있다.
첫째, 기존의 제도적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우리의 노조법에는 정부가 산업별·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보다 천착해야 한다. 이른바 국가직무표준체계(NCS)와의 연계를 통해 임금체계와 포괄교섭의 활용 가능성 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새로운 제도를 무에서 창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제도적 자원을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접근이 우선 요구된다.
둘째, 정부의 노사관계 당사자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교섭의 조정기능을 확 장해 갈 필요가 있다. 적용 가능한 영역부터 먼저 확산시키고, 좋은 사례를 발굴·확산하는 접근이 필요 하다. 학교 비정규직이나 택배 과로사 해결 사례처럼, 이미 일정한 사회적 조정의 성과를 보여준 경험 들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공유해야 한다. 사회적 조정기능은 추상적 원칙만으로 강화되지 않는다. 현 실에서 작동한 사례가 쌓일 때 비로소 제도와 관행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셋째,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특히 일회적 대타협으로 비약해서 목표를 정하기보다, 중 층적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고 신뢰를 축적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하되, 대타 협 자체보다 성공사례의 축적과 귀납적 공유를 통해 신뢰를 만들어가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한국 사회 에서 사회적 대화는 종종 거대한 합의의 실패 여부로 평가되어 왔지만, 이제는 작동 가능한 수준에서 부터 조정 경험을 쌓고 그것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큰 합의를 단번에 만드는 것보 다, 작은 성공을 반복하여 사회적 조정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최근에는 국회 사회적 대 화도 작동하고 있고 크고 작은 다양한 대화 플랫폼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들을 함께 잘 엮어 가는 포 괄적이고 전략적인 노력도 요구된다.
양극화 해소와 지속가능한 성장은 하나의 과제이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줄이지 못하면 사회통합도성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고, 사회적 조정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면 양극화 역시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노동은 더 이상 비용이나 갈등의 원인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은 사회적 조정과 혁신의 핵심 주체임과 동시에 양극화 시대 한국 사회가 다시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 반드시 재 구성해야 할 제도와 정치의 중심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노동은 노동시장 전체를 시야에 두고 연대 와 혁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노사관계의 사회적 조정기능을 다시 세우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와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과제는 그 지점에서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다. (원고 접수일 _ 2026. 4.14.)
* 이 글은 지난 2026년 3월 19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기념 토론회에서 필자가 PPT 자료로 발표한 내용을 글로 풀어 재구성한 것이다. 원발표 내용은 유튜브의 해당 링크 를 참조하시오.
『노동사회』 2026년 제2호(통권 제205호), 박명준, 권두언, 노동시장 양극화, 노사관계 양극화, 지속가능한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