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2014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같은 해 노동조합에 가입된 노동자들은 190만 5천여 명이다. 노조조직률은 10.3% 수준이다. 1995년 11월11일 조합원 41만 8,154명으로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015년 기준 69만 8,026명으로 몸집을 키웠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2000년대 중반 공무원노조의 가입으로 조합원 수가 크게 늘어난 뒤 지난 10여 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조합원 수 65~70만 명 사이를 맴돌고 있다.
민주노총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나온 지 수년째다. 기업들이 정년퇴직 등으로 발생한 빈자리에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메우면서 민주노총은 급격히 고령화되는 추세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의 2015년 7월 발표에 따르면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의 평균연령대는 40대 중·후반이다. 금속노조 출범 당시 지부·지회의 평균 조합원 수는 133.7명이었는데 2013년에는 106.1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민주노총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부쩍 많아진 이유다.
(2016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장을 가득 메운 대의원들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이대로는 안 돼” 사상 첫 정책대의원대회 열어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 발전전략으로 산별노조 건설을 채택하고 있다. 2000년 ‘노동운동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조건으로 △경제투쟁 중심의 기업별 노조체계, △낮은 조직률 및 계급대표성, △장기적 전략 결여, △조직 내적의 통합성 약화 등이 꼽혔다. 이런 고민은 2006년 조합원 76.7%를 산별노조로 편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지난해 산별전환율은 80%를 넘어섰지만 15년 전 제기된 과제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산별교섭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면서 중앙교섭은 힘을 잃고 있으며, 16개 산별연맹 구도에서 조직대상자들이 일부 중첩되면서 조직 갈등도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된 정규직 중심의 조합원 구성으로는 전체 노동자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대표성의 위기도 새로 지적받고 있다.
민주노총이 2014년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을 조합원 직선제로 선출한 것은 “민주노총에 대한 조합원들의 애정·충성도를 끌어올리고 비민주적 조직운영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조합원 직선제로 당선된 한상균 집행부는 지난해 2월 민주노총 주요 사업계획을 정기대의원대회에 제출했다. 이영주 사무총장은 최근 “첫해 총파업으로 조직을 혁신하고 두 번째 해에 정책대의원대회를 통해 조직 발전·혁신의 장기적 전망을 세운 뒤 3년 차에 최저임금 1만원을 내건 총파업을 벌여 세상을 바꾸는 주체적 힘을 만들 것”이라며 “한 위원장 구속과 상관없이 노동운동의 발전 전망을 수립하겠다는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부터 23일까지 1박2일간 충북 제천 청풍리조트에서 열린 민주노총 2016년 정책대의원대회는 한상균 집행부의 이 같은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창립 후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정책대대를 위해 민주노총은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전국 단위조직별로 조합원 토론을 전개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8월 두 차례 회의를 열고 수렴된 의견을 중심으로 정책대대 안건의 윤곽을 그렸다. 이날 정책대대는 조합원들의 의사에 기반을 둔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자리였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현장 토론이 원활히 진행되지는 못했다”면서도 “조합원 토론을 통해 민주노총 전략을 수립한다는 풍토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준비 과정을 자평했다.
최저임금 1만원 총파업, 조직강화 5년 전략 수립해
민주노총은 조직혁신전략과 전략조직사업·기금조성계획이라는 두 기둥을 통해 조직의 장기적 발전·강화를 도모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정책대대에 안건으로 제출했다. 조직혁신전략의 세부 내용인 △전략투쟁과 의제, △조직 강화, △조직 확대, △정치전략 등 네 가지 안건 중 앞의 세 가지 안건에 대해서는 비교적 무난하게 동의를 받았다.
앞으로 민주노총은 체제 변혁과 대안체제 수립, 자주통일 기반 구축, 안정된 삶과 좋은 일자리 확대 등 5대 전략투쟁을 중심으로 총파업과 전략투쟁에 나선다. 올해 하반기 2차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를 열고 내년에는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전면에 내걸고 총파업을 벌인다. 2022년까지 향후 5년간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과 민주노조운동 강화를 위한 조직사업과 연대투쟁, 민중연대 활동도 전개한다.
산별운동 확립을 통한 조직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노조가입 문턱을 낮추는 작업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일부 사업장이 비정규직의 조합원 가입을 제한하는 것과 관련해 산별노조와 단위조직의 규약·규정을 개정해 나갈 방침이다. 산별운동과 지역본부를 강화하는 2022년까지의 로드맵은 내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재차 논의한다.
진보진영 정치세력들, 정치전략 논의 과정에 목소리 높여
조직혁신전략 세부 내용 중 마지막 안건인 정치전략 논의는 예상대로 뜨거운 감자였다. 22일을 기준으로 민주노총 대의원은 963명이다. 정책대대가 시작할 즈음 512명이던 참가 대의원은 정치전략이 논의될 즈음 581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참관인 규모만 200여 명에 달했다. 600석이 준비된 회의장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현재 민주노총에는 정치전략과 관련해 ‘지난해 민중총궐기 성과를 발전시켜 노동자·농민·빈민이 함께하는 진보정당을 건설하자’, ‘다양한 정치성향과 현실을 인정하고 연대활동을 이어 가자’, ‘공동 대선투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한 뒤 정치세력화를 모색해 나가자’는 등 세 가지 흐름이 존재한다.
중앙집행위는 세 가지 흐름을 적절히 뒤섞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내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방침을 결정하자”(1안)는 의견과 “민주노총 주도의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해 공동투쟁을 벌이자”(2안)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복수안 상정은 정치전략에 대한 민주노총 내부의 다양한 견해를 반영한 결과다. 당초 중앙집행위는 단수의 정치전략안을 논의했으나 수 시간에 이르는 격론 끝에 복수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은 정책대대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총 집행부와 중앙위조차 정치전략을 통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대의원들의 의견은 진보대통합정당을 만들자는 의견과 두 가지 안건을 모두 폐기하자는 의견으로 뚜렷이 양분됐다. 후자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각자도생하는 현 지형을 그대로 두거나 혹은 오랜 시간을 갖고 천천히 고민해 보자는 견해다.
정치전략을 논의하는 순간 정책대대는 옛 민주노동당 전국운영위 등 의결기구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민주노총은 물론 진보진영 내 다양한 정치조직들이 정치전략 1·2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연판장을 돌리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민주노총 의사결정 과정에 정치조직들이 전면에 나선 것은 유례없는 사건이다.
“하나로 뭉쳐야” VS “정치 다원화 인정”
통합정당 건설에 찬성하는 대의원들은 주로 다음와 같은 견해를 개진했다.
“이기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전부 나뉘어져서는 이길 수 없어서 단결해 대응하자는 것 아니냐. 현장 투쟁과 정치세력화를 병행해 승리의 길을 찾자.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쟁취해 나가자는 대의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은 없다. 이 대의를 중심으로 단결하자.”
“민주노총이 여러 진보정당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생각에 차이가 있다고 한 단위사업장에 노조를 두세 개 만들지는 않는다. 사분오열된 진보정당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하나가 돼 공동투쟁을 벌이라는 게 조합원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무다.”
반면,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정치다원화를 위해 현재 정치진형을 그대로 두는 것이 최상이라는 견해, 혹은 지난날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에 대한 냉철한 평가 없이는 통합정당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주로 냈다.
“세력들의 조직문화가 다른데 상시적인 통합정당을 추진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통합진보당은 겉으로는 경선부정 등으로 인해 쪼개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본질적으로는 내부 조직문화가 다른 데에서 발생했다. 진보좌파를 추구하는 복수의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행동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적 다원성을 저버리는 행위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교훈과 평가·반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다른 정당들을 만들고 서로 갈라져 정치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비슷하다면 여러 정당이 왜 있겠는가. 통합을 말하는 이들이 민주노총이라는 백그라운드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자기들의 정치활동을 위해 민주노총을 앞세워 진보정당을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보인다.”
중앙집행위 호소에도 정치전략 수립 무위로
대의원들의 이 같은 도돌이표 주장이 반복되자 중앙집행위는 22일 자정께 50여 분간 별도 회의를 열고 기존 두 가지 안건을 철회한 다음 새로운 수정안을 내놓았다. 같은 날 오후 7시30분께부터 자정까지 50여 명의 대의원들이 마이크 앞을 거쳐 간 뒤였다.
중앙집행위 위원들은 “정치방침에 대해 전 조직적 토론을 거쳐 내년 정기대대에서 정치세력화 방안을 의결하자”는 취지의 수정안을 제시하고 가결을 호소했다. 뒤늦게 현장에서 단일안을 만든 셈이다. 민주노총 주도의 정당건설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해당 수정안에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들 중 일부는 23일 새벽 1시가 넘어가면서 정책대대 정족수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회의 자체를 유예시켜 정치전략 결정을 무산시키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새벽 2시께 재차 정회한 뒤 중앙집행위는 정치전략을 추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앞서 논의한 조직혁신전략 통과를 대의원들에게 요청했다. 빈손으로 정책대대가 막을 내리는 것을 막으려는 고육책이었다. 만장일치 통과 후 확인한 대의원수는 338명. 의사정족수 482명에 턱없이 모자랐다.
한 위원장 공백 확인, “내부 고민 수준 확인한 점은 성과”
이번 정책대대를 통해 한상균 위원장의 빈자리가 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상균 위원장은 정책대대 개최에 앞서 대의원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에서 “노동자-자본, 노동자-정부 간 전쟁의 승패는 우리 편을 누가 많이 만드느냐에 달려있다”며 “소수의견까지도 소중하게 모아내 충분히 점검하면서 현장 의견을 모아 함께할 대의명분을 찾는 과정을 논의해 달라”고 호소했다.
회의 중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서로에 대한 이중 삼중의 불신만 확인한 뒤 판을 깨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며 “한상균 위원장을 감옥에 두고서 진영논리만 앞세울 것이냐”고 말했다.
정치방침에 대한 내부 의견이 수면 위로 떠올라 공론화됐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평가도 있다. 한 대의원은 “향후 5년 투쟁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혁신전략이 수립됐다는 점은 성과”라며 “정치방침에 대한 내부 이견이 선명하게 확인되면서 앞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을 고민할 때 참고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전략조직사업방향·기금조성계획’ 논의조차 못 해
결국 정책대대는 정치세력화 방법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장시간 정치전략 논의로 인해 전략조직사업방향과 기금조성계획은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2005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전략조직화사업을 결정했다. 가장 최근인 2014년에는 비정규 노동자와 더불어 중소영세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전략조직화를 위해 200억 원 기금을 조성한다는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모금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한계에 부딪치면서 사업이 설계대로 집행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정책대대에서 전략조직기금으로 조합원 한 명당 50원을 의무적으로 적립하도록 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기금을 통해 2022년까지 조합원을 배가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복안이다. 정책대대가 유예되면서 이 같은 계획수립은 내년 정기대대까지 표류가 불가피하게 됐다.
정책대대 둘째 날은 선택참여 토론 방식으로 전개됐다. 대의원들은 세월호 투쟁·공적연금 강화 투쟁·보육정책 개혁·재벌개혁·퇴직 조합원 재조직화 사업을 민주노총 주요 사업으로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한상균 집행부는 당초 3년을 기한으로 정책대대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하지만 선거공약 차원에서 실시된 정책대대가 다음 집행부 사업으로 정착될 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