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半) 주류의 도전과 실험

노동사회

반(反/半) 주류의 도전과 실험

편집국 0 4,753 2013.05.29 09:23

선거가 끝이 났다. 총칼로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인 사람도 대통령을 했는데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주가조작의혹 정도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말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노무현 정권 나아가 민주화세력 일반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문책이었고, 지극히 운이 좋은 사내가 그 과실을 받아먹었을 뿐이라고 얘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서민의 꿈’을 실현해 줄 사람이자, 동시에 “종부세 폭탄”을 제거하고 부동산과 재벌 관련 각종 규제를 풀어 ‘가진 자의 욕망’을 풀어주기도 할 인물을 뽑았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말이 많으냐고 힐난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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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워싱턴의 의회 인근에 자리잡은 헤리티지재단 전경.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꼽힌다. ]

정책을 무기로 정치를 재구성하는 도구, ‘싱크탱크’

이번 17대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 후보자들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 시절 ‘한반도 대운하’라는 “청계천 전국판 공약”을 내걸고 나왔을 때가 그나마 정책을 둘러 싼 논쟁이 조금이나마 살아 있던 짧은 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2007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열렸던 한국 대선관련 토론회에서 어느 미국인 발표자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는 역대 그 어떤 당선자보다 ‘정책 공약’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얘기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서글픈 진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를 지지한 많은 이들이 “경제를 살려 주세요”라고 외쳤던 만큼, 각종 경기부양과 규제완화 정책이 정권 초기에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향한 진군 또한 한동안 거침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좌파세력 척결” 운운하며, 지난 10년간 이루어졌던 남북관계나 정치사회적 민주화 차원의 변화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시도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2008년 4월 총선 승리를 통해 대통령에서 지방의회까지 모두 장악한 초거대 여당을 꿈꾸는 한나라당과, 이에 저항하는 여타 정치세력들의 사활을 건 정치적 공방은 대선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과연 이 국면에서 진보세력은 자신들의 ‘정책’을 무기로 ‘정치’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를 위한 철학적, 조직적 뒷받침은 충분한가?

그러나 이 글은 한국의 당면 정치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을 다루는 글은 아니다. 필자가 미국에서 약 1년 반 가까이 체류하며 진행해 오고 있는 미국 싱크탱크들에 관한 연구 성과의 일부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과연 한국에도 독립적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렇지만 미국 싱크탱크들의 흥망성쇠가 미국 현대 정치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향후 한국 정치의 변화와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전망 또한 불가분의 관계일 것임은 틀림없다. 

‘정책이 실종된 정치’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치가 배제된 정책’이란 것 또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좋은 싱크탱크를 갖는다는 것은 그저 좋은 정책연구소를 갖는다는 의미 이상임을 미리 언급해 두고자 한다. 미국 싱크탱크들의 막강한 영향력 역시 ‘좋은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현황

한국개발연구원을 비롯한 국책연구소나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재벌계열 싱크탱크들만이 눈에 띄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약 1,500~1,600개 정도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싱크탱크들이 현재 활동 중에 있다. 이 가운데 약 300개가량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에 모여 있다. 이러한 싱크탱크들은 1970년대 이후 숫자가 급증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러한 증가는 주로 보수적인 싱크탱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종합형 싱크탱크가 많은 반면,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여성, 환경, 시민권, 평화 등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워싱턴에 가장 많은 싱크탱크들이 집중해 있지만, 최근에는 각 주 단위에서도 싱크탱크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Andrew Rich, 2004; James McGann, 2006). 

미국 싱크탱크의 유형과 역사는 일반적으로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Donald Abelson, 2006). 첫째, “학생 없는 대학”으로 불리며 학술적 성격의 정책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 싱크탱크들이 등장하던 시기(1830~1945년)이다. 이 때 국제평화를 위한 카네기기금(1910년), 정부조사연구소(1916년, 1927년에 브루킹스연구소로 명칭 변경), 후버연구소(1919년), 외교관계평의회(1921년), 미국기업협회(1943년, 1960년에 미국기업연구소로 명칭 변경) 등이 만들어진다. 

둘째, “정부 계약의 수행자”로서의 싱크탱크들이 등장한 시기(1946~1970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됨과 동시에 국내외적으로 큰 과제들에 부딪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자신이 직면한 과제와 관련하여 행정부 외곽의 독립적 싱크탱크를 통해 해결책을 찾고자 했고, 이에 따라 랜드연구소(1948년), 도시연구소(1968년) 등 정부 계약을 중심으로 하는 대형 싱크탱크들이 만들어졌다. 

셋째, 1970년대에는 중립적이며 학술적 성격의 연구기관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주창형 싱크탱크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싱크탱크의 세계를 급격히 변화시켰다(1971~1994년). 이들 중에서 특히 헤리티지재단(1973년)과 케이토연구소(1977년) 등은 자신들의 보수적 이념을 정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적극적 활동을 벌여 나갔다. 이들은 두껍고 어려운 학술서적보다는 얇고 읽기 쉬운 정책보고서 작성에 주력하였고 언론을 적극 활용하였다. 

넷째, “정치인 장식품”용 싱크탱크들이 늘어난 시기다. 주로 전직 대통령 기념 도서관과 연계를 맺거나(예를 들어 카터 센터나 닉슨 센터 등), 유력 정치인들의 정책적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싱크탱크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싱크탱크들의 각 단계들의 역사는 단절보다는 중첩과 연속으로 구성돼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유형의 싱크탱크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때로는 하나의 싱크탱크가 몇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기도 한다. 

정당에서 독립적인 보수 싱크탱크들의 득세

한편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나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연구소와 같이 정당 부설 연구소가 없는 것도 미국 싱크탱크 체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흔히 브루킹스연구소나 도시연구소를 민주당 계열,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를 공화당 계열의 싱크탱크들이라 칭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정당과는 무관한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들이다. 미국 싱크탱크들 대부분은 스스로가 ‘비정파적(non partisan)인 기관’임을 강조하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조차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특정 정당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부정하고 있다고 해서 미국 싱크탱크들이 모두 중립적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 싱크탱크들은 한국의 시민단체나 여타 연구소들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스스로의 이념적 지향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3자에 의해서도 명확한 이념 스펙트럼상의 위치를 부여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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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비단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정책적 영향력 측면에서도 진보적, 자유주의적, 중도적 싱크탱크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미국 싱크탱크들의 정책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인 ‘언론인용 빈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보수 또는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싱크탱크들의 언론인용 빈도가 중도, 중도 좌파 또는 진보로 분류되는 싱크탱크들보다 꾸준히 높았다(Michale Dolney, 2006). 의회 보좌관과 언론인들을 상대로 한 인지적 영향력 평가에서도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영향력이 더욱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Andrew Rich, 2004). 싱크탱크의 예산 규모 면에서도 보수적이거나 중도적 싱크탱크들은 진보적 싱크탱크들의 규모를 압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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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진보적 싱크탱크들의 실험과 도전

이처럼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제5의 권력”이라고까지 불리는 싱크탱크의 역사 속에서, 소위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모두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다(橫江公美, 2004). 1964년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었던 배리 골드워터는 “극우의 트로츠키”로 묘사될 만큼 강한 호소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우파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걸고 선거에 임하였는데, 그 결과 공화당원들의 열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겨우 6개 주에서만 승리하고 39%의 지지를 얻는 데 불과하였다. 이런 참담한 패배 직후 미국의 보수파들은 자신들의 참패가 자유주의적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전국적 재단들, 일부 신문, 아이비리그 대학들, 뉴욕의 출판사들로 구성된, 소위 “자유주의적 기득세력(Liberal Establishment)”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항하는 “지적 하부구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 때 이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싱크탱크였다. 자유주의자들(혹은 좌파들)이 장악한 대학 바깥에 이념의 진지를 구축하고, 독자적인 언론매체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사회의 밑동을 공략해 나가겠다는 장기 전략이 채택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기업연구소와 후버연구소와 같이 기존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보수적 성격을 더욱 강화했고, 이후 미국 싱크탱크 세계 및 정가를 뒤흔들게 되는 헤리티지재단이나 케이토연구소의 창립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났다. 이제 미국 사회에는 과거 보수파들이 내뱉었던 불만과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여오는 상황으로까지 변해 있다. 

하지만 지난 30~40년 동안 헤리티지재단, 미국기업연구소, 케이토연구소 등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성장을 보수적 재단의 엄청난 재정 지원이나 회전문(revolving door)을 매개로 이루어진 공화당 정부와의 끈끈한 사적 연계로만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헤리티지재단을 필두로 한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미국 싱크탱크 세계의 혁명을 이끌었다. 또한 이들은 그저 워싱턴 정가 또는 재단 프로젝트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지난 수십 년간 적극적으로 풀뿌리 대중들에게 귀를 열고 손을 내밀었다. 헤리티지재단의 회원 숫자는 25만을 넘고, 케이토연구소 또한 1만 5천 명이 넘는 소액회원들이 단단히 받쳐 주고 있다.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기업 후원금이나 재단 조성금 지원을 위해 연구원들이 동분서주하지도 않는다. 또한 헤리티지재단은 지역의 사회운동조직과 싱크탱크, 언론들과의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해 가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대중들과의 직접 접촉 또한 다른 어떤 싱크탱크들보다 적극적이다. 

“진보판 헤리티지재단” 미국진보센터의 등장 

그러나 결코 깨질 것 같지 않던 “자유주의 기득권력”이 보수적 싱크탱크들에 의해 조금씩 깨져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헤리티지재단과 미국기업연구소, 케이토연구소 등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약 30년간 주도해 왔던 워싱턴 싱크탱크 세계에도 작지만 중요한 변화들이 발견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http://americanprogress.org)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미국진보센터는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수석보좌관을 지낸 존 포데스타(John Podesta)가 조지 소로스, 허버트와 매리언 샌들러 등 민주당 성향의 부호들로부터 막대한 씨앗자금을 투자 받아 2003년 출범한 싱크탱크이다. 미국진보센터는 창립 4년 만에 1년 예산으로 2,000만 달러를 넘는 돈을 쓰고 스태프의 숫자는 125명에 이르며, 언론 인용빈도 순위는 12위까지 올랐다(Michael Dolney, 2006). 미국진보센터에는 존 포데스타, 로렌스 코브(레이건 행정부 국방장관), 탐 대슐(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 많은 전직 고위관료들이 포진해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터넷 블로거들과 풀뿌리 사회운동조직, 젊은 대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는, 말 그대로 “억만장자와 블로거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Matt Bai, 2007). 

이들은 스스로를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으로 규정하며, 다른 어떠한 싱크탱크들보다 민주당과의 연관이 깊다. 또한 향후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많은 인물들이 ‘회전문’을 돌아 정부 부처로 자리를 옮겨갈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지난 30여 년간 진보적 싱크탱크들 대부분은 열악한 재정에 힘겨워하고, 여러 이슈보다는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보니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 케이토연구소 등이 쏟아 내는 엄청난 양의 연구물들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를 단번에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싱크탱크가 바로 미국진보센터이며, 최소한 현재까지 이들의 활약은 기대에 상응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탈당파, 창의적인 글쓰기… 새로운 미국재단의 ‘새로움’

미국진보센터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진보적 싱크탱크로 새로운 미국재단(The New America Foundation,http://www.newamerica.net)을 들 수 있다. 새로운 미국재단은 1999년 출범한 후 “미국에서 가장 명석한 40세 이하 사상가들로 구성된 싱크탱크”(『The Economist』), “다음 세대를 위한 싱크탱크”(『The Washington Post』) 등 수많은 언론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싣기 힘들다는 뉴욕 타임스의 기명칼럼(op-ed)란에 2006년 한 해 동안만 46회나 기고를 하는 등, 언론을 가장 잘 이용하는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과의 정책적 연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과 달리 새로운 미국재단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 구도를 넘어서는 연구 성과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흔히 다른 싱크탱크들이 말하는 비당파(nonpartisan)나 초당파(bipartisan)가 아니라 “탈당파(脫黨派, post partisan)”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독특한 정치적 입장은 그들의 행동반경을 넓히고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운 미국재단의 창립자인 테드 핼스테드(Ted Halsted)는 겨우 스물아홉 나이에 이 재단을 설립하였고, 창립 8년 만에 1년 예산이 1,000만 달러에 달하는 견실한 싱크탱크로 키워내는 데 성공하였다. 비단 창립자만이 아니라 새로운 미국재단에는 젊지만 역량 있는 연구자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이들은 “열정과 역량을 갖춘 젊은 세대의 연구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다른 싱크탱크들이 예측 가능한 안전한 글쓰기를 요구하는 것과 달리, 큰 질문에 입각한 창의적 글쓰기를 연구원들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부담은 조직이 떠안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주장들은 이러한 ‘조직적 배려’하에서 가능한 것이며,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지적 실험들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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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진보센터는 다른 어떤 싱크탱크보다도 민주당과의 관계가 깊다. 지난 6월에 미국진보센터 주최로 열린 ‘세계 속의 미국’ 컨퍼런스 모습 ]

전통적인 진보 싱크탱크, 정책연구소와 경제정책연구소 

미국진보센터와 새로운 미국재단이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실험을 주도 해 나가고 있다면, 정책연구소와 경제정책연구소는 ‘연대를 통한 역량의 강화’라는 고전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1963년 설립되어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들 가운데 가장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http://www.ips-dc.org)는, “모든 사회변화는 사회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60년대 반전운동과 시민권운동, 1970년대 여성과 환경운동, 1980년대 반인종차별주의와 반개입주의 운동,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평화운동과 공정무역운동 등 정책연구소 40년은 미국 사회운동 40년과 궤를 같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워싱턴 정계의 정책결정자들보다 사회운동조직들이 더 중요한 청중이며,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아이디어, 만남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정책연구소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1,400개 정도의 운동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는 미국 최대의 반전운동연대체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고, <활동가를 위한 사회적 행동과 리더십 학교>(The Social Action and Leadership School for Activists)를 개설하여 사회운동가들에게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간 예산은 250만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며, 스태프와 연구원의 숫자는 29명에 불과하다. 40년 역사의 진보적 싱크탱크가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정책연구소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가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 http://www.epi.org)이다. 1986년 설립된 경제정책연구소는 자본가의 이해에 기초한 정책을 생산해내는 미국기업연구소에 대응하여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관점의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대부분 싱크탱크들이 기업 임원들이나 교수, 법률회사 대표, 전직 고관 등을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과 달리, 경제정책연구소는 이사회 이사의 절반(19명 중 9명)이 노동조합 간부들일 정도로 친노동자 성향이 분명하다. 현재 50명의 연구원과 스태프들이 근무하고 있고, 특히 17명의 연구부서 연구원들은 전원이 미국 주요대학 경제학 및 법학박사들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연구결과들은 미국 내에서도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정책연구소는 현재 경제분석과 연구 네트워크(EARN, Economic Analysis and Research Network)를 통해 지역 싱크탱크 및 사회운동들과 탄탄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글로벌 정책네트워크(Global Policy Network)를 꾸려 한국을 포함한 수십 개 국 싱크탱크들이 자유무역협정체결 반대, 민영화 문제점 비판,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포괄하는 노동기구의 창설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운영위원으로 이 연대 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에서 싱크탱크들의 ‘긴 싸움’은 가능한가?

권영길 후보를 내세운 민주노동당은 17대 대선에서 약 3%, 71만 표를 얻었다.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는 그보다 약 두 배에 가까운 137만 표를 얻었고,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는 617만 표를 얻은 것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이명박 당선자가 과반에 가까운 1,149만 표(48.7%), 뒤늦게 뛰어든 이회창 후보가 355만 표(15.1%)를 얻은 것과 비교한다면, 소위 개혁진보세력이라 불리는 이들의 17대 대선 성적표는 참담한 수준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포스트 노무현 프레임”을 만들어 내지 못한 진보의 패배이며 “신보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지적한다(『오마이뉴스』, “신보수시대 개막, 재벌-관료-조중동 연합전선의 승리”).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도 미국과 같이 싱크탱크를 매개로 한 ‘긴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은 있는가? 

미국과 같이 고착화된 두 정당 시스템에서는 새로운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의 재결집이 시도되기보다는 싱크탱크를 통해 지적 하부구조를 변혁하고 이를 매개로 특정 정당의 정치적 승리를 이끄는 전략이 추구되었다. 한국은 어떤가? 재단도 없고, 거액은커녕 소액을 싱크탱크에 기부할 개인도 많지 않다. 미국과 달리 거대한 국책연구기관과 관료조직이 정책생산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고, 재벌 계열의 경제연구소들 또한 담론과 정책 생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욱이 정당정치 자체가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적 결집을 새로운 정당을 통해 하려는 요구가 훨씬 강하다. 속된 말로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날카로운 정책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크지만, 막상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선 다들 허황한 설명뿐이다. 

정당부설 연구소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조건임에도 이들의 위상은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들의 그것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희망제작소, 생태지평 등 민간 싱크탱크들이 최근 만들어졌으나 아직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더 본질적으로 “정책이 정치다”라는 생각이 충분한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조건하에서  한국의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가 갖는 정책적 영향력이 최소한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들 수준으로까지 커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조차 쉽게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정책 대안의 생산이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미국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듯, 독립적 민간 싱크탱크는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임에는 틀림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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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