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주노조 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의 경과
(1)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서 취업하여 일하고 있던 미등록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91명은 2005년 4월24일 지역별 노동조합의 형태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을 설립하고, 같은 해 5월3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노동조합 규약을 첨부한 노동조합설립신고서를 노동부장관(현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했다.
(2) 노동부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은 서울지방노동청장(현 서울고용노동청장)은 2005년 5월9일 이주노조에게 위 노동조합설립신고서에 대하여 (1) 제출되지 아니한 임원의 성명 및 주소, 또한 제출된 임원의 주소, (2) ①2개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라는 이유로 “조합원이 소속된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과 조합원 수 및 대표자의 성명(노조법 시행규칙 제2조 제4호)”, ②“소속 조합원들의 취업자격 유무 확인을 위한 조합원 명부(성명, 생년월일, 국적, 외국인등록번호 또는 여권번호 기재)”, (3) 임원선거, 규약제정 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총회회의록 등 관계서류 등을 2005년 5월31일까지 보완하여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3) 이주노조는 노조법 제10조 제1항에서 기재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임원의 성명 및 주소, 그리고 총회회의록은 제출했으나, 위 (2) ①, ② 항에 대해서는 현행 노조법상 이를 제출하여야 할 법적 근거가 없고, 그 제출 요구 자체가 헌법과 노동관계법, 국제조약에서 보장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평등대우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다.
(4) 2005년 6월3일 서울지방노동청장은 보완요구사항 중 위 (2) ①, ② 항에 대해서 이행을 거부하였다는 절차적 이유와 ‘이주노조의 임원이 현행법상 취업 및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고, 그 외 소속 조합원의 신분은 주로 불법체류자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 이주노조는 주로 노동조합에의 가입 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주체가 되어 조직된 단체로 봄이 타당하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보완자료 미제출 및 노조 가입 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을 주된 구성원으로 조직된 단체는 노조법 소정의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는 실체적 이유로 노동조합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5) 이에 이주노조는 2005년 6월14일 서울지방노동청장을 피고로 하여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고, 그 반려처분은 ‘불법체류’이주노동자라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차별하는 행정처분으로서 위법·무효이므로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06년 2월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이태종 판사)는 ‘출입국관리법상 취업이 금지된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들을 주된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를 노조법상의 노조로 볼 수 없다’며 서울지방노동청장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6) 이주노조는 2006년 2월24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2007년 2월1일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된다 할 것이므로 피고(서울지방노동청장)로서는 원고 노조(이주노조)의 조합원이 적법한 체류자격이 있는 자인지 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없음에도 이를 심사하기 위해 아무런 법령상 근거 없이 원고 노조에 대해 조합원 명부 제출을 요구하고 그 보완요구에 대한 거절을 반려처분 사유로 삼은 것은 위법하다’는 이유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이 2005년 6월3일 원고 이주노조에 대하여 한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7)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은 2007년 2월23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고, 대법원은 무려 8년 4개월하고도 2일이나 사건을 계류시켰다. 그 사이에 주심 대법관마저 2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대법원은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로 회부했고, 마침내 지난 6월25일에서야 ‘8(기각)대 1(반대)’의 다수의견으로 원심판결이 정당하므로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이주노조 설립반려처분 취소소송은 확정됐다. 이 사건은 아마도 대법원의 최장기 계류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2.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의
이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된 요지는 아래와 같다.
첫째, 서울지방노동청장이 ‘2개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므로 조합원이 소속된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과 조합원수 및 대표자의 성명’에 관한 서류를 설립신고서에 첨부하여 제출하도록 보완을 요구한 것은 구 노조법 시행규칙 제2조 제4호에 따른 것이긴 하나, 이 조항 자체가 상위 법령의 위임 없이 규정된 것이어서, 일반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법규명령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이주노조가 위 보완요구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설립신고서를 반려할 수는 없다. 위 보완요구의 미이행을 반려처분의 사유 중 하나로 삼은 이 사건 반려처분은 위법하다. 즉, 상위 법령의 위임 없는 시행규칙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며 이를 근거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노조법상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하므로,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조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인지 여부나 취업자격(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의 유무에 관계없이 노동3권을 향유한다. 따라서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함에도, 서울지방노동청장이 이와 다른 전제에서 단지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자격 유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이주노조가 그 보완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의는 8년 4개월 전 서울고등법원에서 한 판시 내용, 즉 법령의 위임 없는 행정청의 시행규칙으로 근로자의 단결권을 제한할 수 없으며, 체류자격 없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체류자격의 유무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과 단결권 등 노동3권의 주체성에 대해 달리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는 보편적인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판결문에서 사건의 판단 대상이 아닌 내용을 장황하게 적시했다. 소송에서 전혀 다투어지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 사족을 단 것이다.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개념에 포함된다고 하여, 노동조합의 조합원 지위에 있는 외국인이 출입국관리 법령상 취업자격을 취득하게 된다든가 또는 그 체류가 합법화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근로자들이 조직하려는 단체가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와 같이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각 목의 해당 여부가 문제된다고 볼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실질적인 심사를 거쳐 노조법 제12조 제3항 제1항 규정에 의하여 설립신고를 반려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민사소송법에서는 판결서의 작성과 관련하여 “판결서의 이유에는 주문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의 주장, 그 밖의 공격·방어방법에 관한 판단을 표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법 제208조 제2항). 이 사건 소송에서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다수 포함된 노동조합설립신고서의 반려처분에 대한 절차적·실체적 위법성 여부만을 다투었을 뿐 노동조합 설립에 따른 이주노동자의 취업자격 취득이나 체류자격 합법화 여부에 대해 주장하거나 이를 다툰 바가 전혀 없다. 더욱이 이주노조가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이 사건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당시부터 대법원 판결 선고 시까지 단 한 번도 언급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판결 주문의 정당성과도 무관하고, 당사자의 주장 및 그 밖의 공격·방어방법으로 거론된 바도 없는 사항’을 판결 이유로 적시했다.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당사자대등주의’ 소송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매우 오지랖이 넓은’ 판결문이 아닐 수 없다.
3. 대법원 판결 후 서울지방노동청장이 한 보완요구의 위법성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후 이주노조에게 설립신고증을 교부하는 대신 이주노조 규약의 목적과 사업에 ‘고용허가제 반대(노동허가제 쟁취),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등을 규정하고 있는 바 이는 “법률 개정 및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활동이 노조설립의 주목적임을 명시한 것”으로 노조법 제2조 제4호 마목(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 7월 2회에 걸쳐 노동조합 설립신고사항에 대한 보완을 요구했다. 물론 기한 내에 보완을 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설립신고서를 반려하게 된다는 안내문과 함께 말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남긴 사족(蛇足)은 현실에서 톡톡히 위력을 발휘했다. 물론 이주노조는 대승적으로 보완요구를 수용해 규약을 개정함으로써 지난 8월20일 서울지방노동청으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아냈다. 하지만 설립신고증의 교부와 관계없이 서울지방노동청장이 대법원 판결 후 재차 한 보완요구 또한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절차적 문제이다. 지난 6월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이 2005년 6월3일 이주노조에 대하여 한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을 취소한다’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취소의 효력은 반려처분을 한 때로 소급한다. 즉, 서울지방노동청장이 이주노조에 대하여 한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의 효력은 2005년 6월3일로 소급하여 소멸하게 된다. 2005년 5월9일 서울지방노동청장이 이주노조에게 보완을 요구한 사항 중 법적 근거가 없는 2가지 사항(조합원이 소속된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 등, 조합원 명부)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항(임원의 주소와 성명, 총회회의록)은 설립신고 당시 이미 이행되었고 핵심적인 보완요구사항과 관련되었던, 체류자격 없는 이주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도 인정되었으므로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상의 노동조합 결격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이 사건 노동조합설립신고 당시의 보완요구사항은 모두 충족되었다.
따라서 서울지방노동청장은 이 사건 대법원 판결 후 노조법 제12조 2항 후문(보완된 설립신고서 또는 규약을 접수한 때에는 3일 이내에 신고증을 교부하여야 한다)에 따라 이주노조에게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즉시 교부해야 했다. 노동조합 설립신고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설립신고증의 교부는 행정관청의 재량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지방노동청장은 10년에 걸친 소송에서의 패소 후 또 다른 사유로 트집을 잡고 보완을 요구한 것이다. 승패를 가리는 대국에서 상대에게 패하자 바둑판을 뒤집어엎고 다시 두자는 격이다. 참으로 비열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실체적 문제이다. 서울지방노동청장은 이주노조 규약의 목적과 사업에 ‘고용허가제 반대(노동허가제 쟁취),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등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 이는 “법률 개정 및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활동이 노조설립의 주목적임을 명시한 것”으로 노조법 제2조 제4호 단서 마목(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보완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 보완요구사유 자체가 자의적인 것으로서 위법하다. 노조법에서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노동조합 결격 사유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의 실질적 요건으로서의 목적성(노동조합이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함)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의 실질적 요건인 목적성을 충족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부수적으로 정치운동을 하는 것은 이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 구노동조합법에서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으나, 1996년 노동조합법과 노동관계조정법을 통합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제정할 때 정치활동 제한규정을 모두 폐지함으로써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정치운동을 일반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 등의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 정당과 정책협의,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 및 반대, 선거와 관련한 공명선거 추진, 후보자 토론회 개최 등의 정치운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 더욱이 ‘고용허가제 반대(노동허가제 쟁취),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등의 요구 및 활동은 참정권 등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운동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경제적·사회적 요구 및 활동의 일환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서울지방노동청장이 이주노조 규약에 대해 정치운동을 이유로 보완을 요구하고 반려처분의 사유로 삼으려고 한 것은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의 허가제로의 변칙적 운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제는 위헌이기 때문이다.
4. 맺는 말
대법원 판결 당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발표한 논평으로 필자의 맺음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 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