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국민연금 개혁, 기존의 논쟁 구도 넘어서야
황세권 (연금연구자·경영학박사)
지난 1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박주민 위원장)는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된 공청회를 열어 연금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모수 개혁부터 여야가 합의한 후 시간을 두고 기초연금 등의 구조개혁을 두고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대체율’은 연금 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말한다. ‘모수(母數, parameter) 개혁’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관련 숫자의 변경을 말한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 운용 및 지급방식의 변경을 말한다.
이렇듯 개념도 생소해, 일반인들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개선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부족하다는 의미다. 국민 대부분은 '단순히 은퇴 이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한 세금'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언론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이라는 이슈를 담아 제도 자체에 대한 불안감을 확대하고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부담, 수급액은 부족’
2024년 7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4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연금보험료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72.2%로 나타났다. 이어서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의무가입 상한, 연금수급 개시 연령 등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되는 질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응답이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즉,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보험료는 부담스럽지만, 수급액은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을 개선하는 논의를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제도는 국민에게 약속한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제도인가?'
만약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까?' 또한, 만들어진 개선방안에 대해서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가능하도록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와 같은 논의가 준비 단계에서부터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기금고갈 문제 해결에만 몰입하여 방안을 만들어 내어왔던 지금까지의 개혁사례를 살펴보면 여당과 야당의 정쟁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예를 들면, 지난 27년간 동결된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과 같은 문제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88년 3%, 1993년 6%, 1998년 9%로 인상된 후 지금까지 유지됐다.
국민연금은 비판받아 마땅한가?
최근 언론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국민연금의 ‘기금고갈론’과 ‘용돈연금론’과 같은 의견들이 힘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인해 국민연금 가입자 감소가 연금 재원의 고갈로 이어져 결국 국민연금 제도가 붕괴된다는 것이 비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널리 퍼지며 '젊은 세대는 국민연금을 내기만 하고 은퇴 후에는 고갈되어 받지 못한다'라는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비판 1. ‘기금고갈’
첫 번째 비판은 1988년 시행된 국민연금 구조적인 기금고갈 문제다. 가입자들이 낸 연금보험료보다 은퇴 이후 더 많이 돌려받는 제도가 유지되는 이상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특히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2023년 0.72%)과 평균수명의 연장(2024년 남 86세, 여 90세)이 더해져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어 은퇴 이후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가 구상되고 만들어진 시기에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금고갈로 인한 국민연금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법으로 지급하도록 운영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은 제3조의2 ‘국가의 책무’ 조항에서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가 안정적ᆞ·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ᆞ·시행하여야 한다(본조신설 2014. 1. 14)”고 규정한다.
비판 2. ‘기초연금 문제’
두 번째 비판은 기초연금과의 불공정성이다. 국민연금의 가입 여부와 별개로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2025년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은 342,510원으로 수급자는 약 736만 명이며, 이를 위해 연간 약 26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기초연금은 국가에서 세금으로 제공하는 혜택이지만, 국민연금에 가입해 보험료를 낸 사람들에게는 박탈감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성실히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사람과 내지 않은 사람 모두 65세 이상 일정 자격의 소득수준을 갖추면 연금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대상자 중 만 65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 국내 거주, 가구의 소득인정액 선정기준액 이하인 가구로 2025년 선정기준액은 단독가구 2,280,000원, 부부가구 3,648,000원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내며 은퇴한 사람들이 기초연금을 못 받거나,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수급액이 기초연금 기준액의 150%를 초과하면 기초연금이 감액되는 '연계 감액 제도'로 인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동시에 받는 수급자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열심히 국민연금을 낸 사람만 손해 보는 구조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100%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비판3. ‘낮은 소득대체율’
세 번째 문제는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이다. 2024년 기준 전국 국민연금 급여 지급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월지급액 평균은 597,948원으로 나타났다. 실제 소득대체율이 낮은 첫 번째 이유로 2007년 연금개혁 시 소득대체율의 하향과 가입자들의 짧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지적할 수 있다. 소득대체율은 1988년 도입 시 70%였다가 1990년 60%로 인하되었고, 2007년 50%를 거처 2009년~2028년까지 40%까지 인하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최초 소득대체율은 총 40년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경우를 가정하여 만들어졌다. 국민의 소득 활동을 통해 전(全) 기간을 가입하더라도 40년 가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2023년 12월을 기준으로 국민연금 수급자 545만7천 명 중 20년 이상 가입하고 연금을 받는 사람은 43만 1천 명으로 전체 수급자의 7.9%에 불과하다. 가입 기간이 짧아서 소득대체율 자체가 낮을 수밖에 없고,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에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서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출산 크레딧, 군(軍)크레딧 같은 제도들로 보완되어 왔다.
여야 합의 결렬과 정부의 일방 발표
지난 21대 국회 막바지에 가동된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에서 500명의 시민대표단은 세 번의 토론 끝에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현행 40%인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하는 안(소득안정론)을 선택했다. 이를 토대로 국회 보건복지위의 국민연금 제도 개선논의에서 여야는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4%로 정하는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합의 결렬을 선언했고, 이후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42%로 조정하는 개혁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최근 정부안에는 수명이나 가입자 수와 연계하여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조정 장치' 도입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연금의 수급 시기가 늦어지거나 연금액 자체가 줄어들어 미래 세대에게 높은 부담을 주면서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국민연금 제도의 개선 방향
국민연금은 호혜적인 제도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제도가 시작된 1988년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변화를 맞이했다.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연금 제도는 노후보장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기금고갈이라는 가시적인 위험으로 인해 국민연금 제도 자체의 존립을 위협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국민연금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국민과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은퇴 준비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에서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도를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연금의 필요성에 대하여 사회적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떤 개혁안이 나오더라도 세대 간·계층 간 대립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마치 국민연금 제도 하나면 은퇴 이후의 삶을 모두 준비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는 가입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사실 국민연금은 노후를 준비하는 여러 보장제도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국민연금 이외의 또 다른 은퇴자금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소득재분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금융상품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를 준비하는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로서 행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제도가 같은 세대 고소득계층에서 저소득계층으로 소득이 재분배되는 '세대 내 소득재분배' 기능과 미래 세대가 현재의 노인 세대를 지원하는 '세대 간 소득재분배'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어 소득재분배를 통해 사회통합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또한 민간기업이 제공하는 연금과의 차이점(보험료, 보장범위, 지속가능성)을 비교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셋째, 운영 주체인 국가의 주도적 참여가 중요하다. 국민연금 제도가 가진 연금기금 고갈 문제와 낮은 소득대체율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전문가 집단의 판단으로 결정되거나 정치적 문제로 가져와 타협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사용자와 노동자들의 연금보험료율을 결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연금 개혁의 또 다른 당사자로서 모수(parameter)의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노사를 넘어 국가도 보험료 납부해야
정부는 필요하다면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금보험료율이 13%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이는 개별 주체, 즉 기업과 근로자의 입장에서 각각 2% 추가 부담을 의미한다. 여기에 국가가 점진적으로 연금보험료 1~2%를 지원하는 안을 제시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5%로 인상하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국민연금 기금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한편 노후보장 정책에 대한 효능감을 높여주어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단순히 ‘구조개혁 vs 모수개혁’의 논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또한 ‘기금고갈론 vs 소득보장론’으로 편을 갈라 논쟁하는 식으로 진행되어서도 안 된다. 올바른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국민이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일부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펼치는 공포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불신이 온 사회를 휩쓸어버리는 미래가 찾아올 것이며, 국민연금 제도를 무너트리려는 시도에 굴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