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 효력확장에 관한 소고: 프랑스 사례를 중심으로-김상배

e노동사회

단체협약 효력확장에 관한 소고: 프랑스 사례를 중심으로-김상배

윤효원 83 01.06 09:51

단체협약 효력확장에 관한 소고: 프랑스 사례를 중심으로


김상배 전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


연구소는 노동운동의 이론과 역사와 쟁점을 공부하는 목적으로 '김금수 노동운동론 정책강좌'를 2024년 4월 1일부터 5월 13일까지 진행했다. 7명이 참여한 '김금수 노동운동론 정책강좌'는 수강생들의 열띤 호응 속에 노동운동에서 이념과 노선의 정립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끝났다. <e노동사회>는 수강생들이 정책강좌에서 배우고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고민한 내용을 '졸업논문' 형식으로 소개한다. - 편집자  


노사의 단체교섭은 사회적 대화의 한 형태이자 중심축이다(ILO, 2013). 단체교섭은 노동관계를 둘러싸고 이해를 달리하는 주요 경제 주체가 협상 또는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모색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것이 단체협약(collective agreement)이다. 이 글은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에 관해 근본적인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이 중요한 이유 


법은 최소한의 규범이다. 여타의 규정이 그러하듯, 노동에 관한 규범은 위계질서를 지닌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헌법이며, 그것의 하위가 법 제도(노동법, 시행령, 규칙 등)이다. 마지막으로 단체협약이 있다. 유럽연합에 가입된 국가는 최상위에 유럽법을 둔다.


단체협약에도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전국단위에서 체결되는 전직종 단체협약, 산업별(업종별) 단체협약, 그리고 기업 단위의 단체협약 순이다. 


이러한 위계질서가 중요한 이유는 하위규범은 상위규범을 위반하거나, 상위규범보다 (노동자 개인 또는 집단에) 불리한 조항을 삽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의 법정 연차휴가는 연 15일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노사는 이보다 적은 일수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 산업별 단체협약이 17일로 정했다면, 그 산업에 속한 기업은 17일보다 낮은 수준에서 연차에 관한 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 만약 이 기업이 단체교섭을 통해 연차 일수를 17일로 정한 이후 산업 수준에서 노사가 18일로 합의를 했다면, 기업의 직원은 18일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호혜원칙(principe de faveur)으로 부른다.


종합하면, 단체협약은 헌법이 보장하고, 법이 강제하는 다양한 노동 관련 규범 중 가장 친노동적이며, 현실에 가장 부합한다. 헌법과 법이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단체협약은 매년 또는 2-3년 주기로 체결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단체교섭 활성화를 위한 토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단체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그럼, 단체교섭의 활성화를 위한 토대는 무엇일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단체교섭의 의무화 조항이다. 프랑스 노동법전은 사안에 따라 최소 4년 또는 5년 주기의 산업별 단체교섭과 기업 내 단체교섭을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최소 기간이며, 임금과 남녀의 격차 문제(보수에 한정)에 관한 한 노사는 산업 수준에서 연 1회 이상 단체교섭을 시행해야 한다. 물가인상과 실질소득 그리고 법정 최저임금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반하면, 기업은 사회보험료 감면액의 최소 10%, 최대 10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담해야 한다.


둘째, 법적 강제조항이 없어도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거나 산업별 단체교섭이 정착했다면 단체교섭은 원활하게 진행된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과 북유럽 국가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 전국 수준의 산업별 협약을 통해 결정된 임금 수준은 지역 또는 개별 기업의 독자적인 임금 결정을 방지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규제보다는 산업별 단체협약을 통한 자율 규제가 현실적인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역할은 중요하게 남아있다. 90%에 달하는 단체협약 적용률과 최저임금 제도의 부재는 이를 증명한다(Kjellberg, 2023). 독일의 1산업-1노조 상황도 단체교섭의 주요 원동력이다. 


셋째, 노동조합 조직률이 미미하더라도 노동조합의 대표성을 국가가 인정하면, 단체교섭의 동력이 된다. 프랑스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남짓으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국 단위와 산업 수준에서 노동조합은 복수의 단체가 서로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개별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 단체교섭 제도의 특징  


프랑스 노동부는 4년에 한 번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에서 직장선거(Élections professionnelles)를 실시하고, 선거 결과를 토대로 전국 수준, 산업 수준, 기업 수준에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을 측정한다. 비례 대표 방식의 국회의원 선거와 유사하다.  


노동법이 정한 노동조합의 산업별 단체교섭권 확보 기준은 득표율 8%이다. 즉, 보유한 조합원의 수가 적고, 직장선거의 투표 참여율이 낮을지라도 8% 이상의 득표를 한 노동조합은 교섭에 참여할 권한을 갖게 된다(기업 단위 단체교섭권 확보 기준은 10%).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의결권 역시 득표율에 비례하여 분배된다. 단체협약 체결 조건은 30% 이상의 대표성을 지닌 단수 혹은 복수의 노동조합이 서명하고, 50% 이상의 대표성을 보유한 단수 혹은 복수의 노동조합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다.  


상징적인 사례가 플랫폼 종사자의 단체교섭이다. 프랑스 정부는 2022년 약 12만 명의 플랫폼 종사자(배달업, 우버와 같은 운송업 종사자)의 대표단체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를 했으나 투표 참여자는 4천 명 미만이었고, 2024년 선거에서도 투표자는 약 1만3천 명이었다(투표율은 각각 약 3%, 약 10%). 하지만 복수의 노동조합이 대표성을 인정받아 사용자 단체와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며, 노사는 최저소득(임금) 도입을 비롯한 다수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정리하자면, 미미한 노동조합 조직률과 국가가 인정한 노동조합의 대표성 제도가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으며, 이는 단체교섭의 동력을 형성한다. 


프랑스에서 단체협약이 비조합원에게 적용되는 원리 


사용자단체 또는 노동단체의 조직률이 높다면 이들 사이에서 체결되는 단체협약은 산업 전체 또는 해당 산업 노동자 대부분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조직률이 낮다면, 이를 보완할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프랑스 단체협약 적용률은 100%에 육박한다.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프랑스에서 노사가 기업 단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거나 산업 수준의 협약을 체결했을 때, 이를 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 이는 합의문에 기재된 용어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노동부가 이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며, 이는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전국 수준에서 모든 기업과 산업의 단체협약 정보가 수집되며, 그와 관련한 통계가 생산된다.  


산업별 단체협약의 경우, 교섭위원회가 효력확장을 요청하면 노동부는 해당 산업 내 노동자, 노동단체, 사용자 단체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거치고, ‘단체교섭 일자리 직업훈련 위원회(CNNCEFP)’의 의견서를 참조하여 노동부 장관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 대다수의 산업별 단체협약은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관보를 통한 공표로 이어져 효력이 확장된다. 


정리하자면, 노동조합의 낮은 조직률, 합의문에 서명한 노동조합의 낮은 대표성 문제가 있을지라도, 과반의 대표성을 지닌 노동단체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단체협약의 효력은 발생하고, 그 효력은 노동부의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를 통해 산업(업종)에 속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낮은 조직률의 문제를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가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대화의 중심축인 단체교섭  


다시 사회적 대화로 돌아가자. 노사관계에서 단체교섭은 그 자체로 대의 민주주의의 한 방식이다. 직접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면, 대표자를 통해 대화해야 한다. 특히, 법규범의 유연성을 고려할 때, 노사의 단체교섭과 이를 거쳐 체결된 단체협약은 가계의 실질임금, 구매력, 일과 생활의 균형의 현실화에 기여한다. 또한, 단체협약을 통해 직장 내 기후대응, 에너지 전환에 동참할 수도 있다.  


프랑스의 제도는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한국에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노동규범의 위계질서와 호혜원칙이 부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은 그 자체로 노동조합에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이자 한계이다.  


단체교섭 제도는 나라별 상황, 조건, 관습에 따라 다른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정부가 노사관계의 내생적 힘의 불균형을 제도 차원에서 보완하며,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모습을 우리 사회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전환과 위기를 말한다. 이에 대처할 행위의 주체가 소수의 행정관료나 엘리트 집단만이 아니라면, 이제는 경제와 산업의 이해관계자가 두루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대화의 중심축은 전국 또는 산업 수준의 노사 단체교섭이라는 점을 프랑스 사례는 보여준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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