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산별교섭 쟁점과 전망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이 근무하는 곳은 자신을 고용한 브랜드와 하청업체의 사업장이 아니라 백화점·면세점 사업주가 통제하는 매장이다. 일반적인 근로조건·환경은 조합원을 고용한 사용자인 브랜드 및 하청업체가 결정하는 반면에 조합원의 휴일·휴식과 위생·편의시설은 백화점·면세점이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는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단체교섭을 진행하려면 조합원을 고용한 원사업주와 더불어 백화점·면세점 사업주도 단체교섭장에 나와야 함을 말해준다.
2023 산별교섭 투쟁의 성과와 한계
2023년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고용한 원사업주인 샤넬과 로레알 등 브랜드에 더해 조합원이 일하는 매장을 통제하는 백화점·면세점 사업주를 상대로 처음 산업별 교섭을 시도했다. 산업별 단체교섭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초기업별 교섭 테이블로 사용자를 불러내지 못한 채, 대각선교섭과 지부교섭 등 기업별 교섭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원사업주인 브랜드·하청업체와의 협약서를 통해 백화점·면세점의 영업시간 변경과 위생·편의시설 개선은 백화점·면세점 사업주의 권한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성과를 비롯해 ⌜지부별 임금 합의서⌟, ⌜2023 산별공동 합의서⌟ , ⌜백화점면세점의 공동휴식문화 조성 및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협약서⌟를 만들어 냈다.
교섭과정을 통해 얻은 성과는 다양하다. 첫째, 기업별 의제를 넘어 산업별 의제로 만들어진 공동 요구를 가지고 공동 투쟁을 실천함으로써 산업별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인식과 소속감을 높였고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둘째,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서 하루 전면파업을 비롯해 기업 울타리를 넘어 단체교섭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와 기대를 배가시켰고,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서의 영향력과 인지도를 높였다.
셋째, 산별교섭 쟁취 투쟁을 통해 백화점·면세점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이익공동체’의 당사자로서 백화점·면세점 사업주가 갖는 ‘공동사용자’ 성격을 확인함으로써 이후 산업별 단체교섭의 대상과 요구를 정립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단체교섭을 마무리하면서 노동조합은 9월 2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롯데·신세계·현대 백화점 3개사와 롯데·신세계·신라·제주JDC 면세점 4개사를 상대로 교섭의무 사용자의 교섭 해태·거부를 이유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노동위원회의 구제신청의 목적은 휴일·휴식 등 영업시간 변경과 위생·편의시설 개선에서 사실상 지배력과 결정권을 행사하는 백화점·면세점 사업주가 단체교섭 의무를 지닌 사용자임을 법률로 확인 받고자 한 것이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노동조합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산업별 단체교섭의 내실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2024년 산별교섭의 과제
2023년 산업별 단체교섭의 경험을 통해 2024년 노동조합의 과제는 더욱 분명해졌다.
첫째, 산업별 단체교섭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전략 전술을 정립해야 한다. 조합원을 고용한 원사업주인 브랜드와 하청업체는 물론이거니와,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근로환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동사용자’인 백화점과 면세점을 단체교섭장으로 불러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둘째,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서의 조직 체계를 강화하고 노조 간부의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산업별 노동조합 조합원으로서의 의식을 높이고 노조활동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산업별 공동 사업, 공동 교육, 공동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일하는 무노조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단체행동 역량은 노동시장 장악력에 비례한다.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최소 15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은 3,000여명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은 2% 안팎이다. 전체 산업 노동조합 조직률 14%(2021년)와 비교할 때,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의 노동시장 장악력은 취약하다. 조직화 캠페인을 통한 조합원 확대는 산업별 단체교섭을 실현하는데서 필수적 과제다.
다섯째, 백화점면세점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원하청이라는 수직적 관계와 ‘이익공동체’를 특징으로 하는 ‘공동사용자’로서의 수평적 관계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정책 사업의 강화를 통해 조합원을 고용한 원사업주인 브랜드·하청업체의 사용자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조합원이 일하는 시공간을 통제하는 백화점면세점 사업주의 (공동)사용자성을 입증할 수 있는 논리를 보다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2024 산별교섭 요구안
2024년 산별교섭은 2023년에 진행한 산별교섭의 성과를 이어가고, 교섭의무에 있어 원사업주인 브랜드 입점업체와 백화점·면세점의 공동사용자성 인정을 통해 백화점·면세점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산업 수준에서 근로조건의 기준을 형성하여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업별 노사관계 교섭구조의 1대1 교섭을 넘어 각 브랜드사가 함께하는 집단교섭을 통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각 지부의 노동조건을 상승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 입점업체와의 ‘이익공동체’를 특징으로 하는 백화점·면세점의 교섭의무 사용자성(공동사용자)을 확인하고 교섭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2024년 산별교섭의 요구안은 집단교섭 성사를 우선하여 마련되었다. 즉 산업별 요구에 기반하돼 원사업주인 브랜드사 모두가 산별교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안의 수위를 낮추었다. △감정노동 수당 및 휴가 지급 △산별노조 활동시간 보장 △‘백화점면세점고객응대노동자보호매뉴얼’ 실효성을 위한 백화점·면세점 사업주 조력 요구가 그것이다.
백화점·면세점 사업주를 상대로는 2023년 요구안인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백화점·면세점 책임 포함한 고객응대 노동자 보호매뉴얼 마련, 매장 내 직원 위생·편의시설 개선) △함께 쉬는 휴일·휴식(백화점의 연장영업 일괄 거부, 설·추석명절 당일 휴무, 월2회 정기 휴점, 면세점의 영업시간 변경 시 노동조합과 합의, 설·추석 명절 당일휴무, 월 1회 정기 휴점)을 가지고 교섭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또한 작년 노조의 수차례에 걸친 교섭요구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백화점·면세점 사업주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중심으로 법적 쟁송을 이어가려 한다.
2024년 산별노조 교섭 진행 상황
2024년 산별노조 교섭은 백화점·면세점 사업주를 상대로는 단체교섭 요구를 지속하며 원사업주인 브랜드 사와는 집단교섭 및 지부교섭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집단교섭은 원사업주인 브랜드·하청업체와 노동조합이 산업별 요구안을 가지고 교섭하고, 지부교섭은 사업장 요구안을 중심으로 산별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아 각 지부와 개별 사용자 사이에 진행된다.
2024년 단체교섭은 지난 2월 20일 9개 지부(부루벨코리아,로레알코리아, 록시땅코리아, 삼경무역, 샤넬코리아, 쏘메이, 하이코스, 한국시세이도, 클라랑스코리아)의 사용자 모두가 단체교섭 상견례를 참석하며 그 시작을 열었다. 작년에 집단교섭을 열기 위해 수개월 투쟁한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 한 셈이다. 1차 집단교섭에서는 교섭준칙을 정리하였고, 2차 교섭부터 공동요구안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각 지부별 교섭도 모두 시작하였다.
그러나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의 근무조건과 근무환경에 일정 부분의 결정권한을 가진 백화점·면세점 사업자들은 여전히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작년 백화점·면세점을 상대로 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한 교섭 해태·거부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은 기각되었다. 노동조합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2021년 1월 개정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30조 제3항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따른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 조항은 단체교섭 구조에 관한 노사의 자율적 선택을 보장하면서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산업별 단체교섭 활성화를 위하여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개입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는 백화점·면세점 회사에게 단체교섭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거기에 더해 ‘수단의 적절성’ 측면에서 입점업체와 백화점·면세점 회사 간 협의나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계 법령의 정비를 통한 제도적 개선이 바람직하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지방노동위원회가 백화점·면세점을 단체교섭 업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입점업체는 백화점·면세점 회사와 하나의 사업체계에 구조적으로 편입된 종속관계에 있지 않다.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실질적인 지시권은 입점업체가 행사한다. △임금 등 주요 노동조건에 관한 결정 주체도 입점업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은 조합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과 맞닿아있는 요구안인 △함께 쉬는 휴일·휴일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고객응대노동자 보호매뉴얼 작성, 직원 시설물 개선 및 실질적 이용 보장) 등의 ‘주요 근로조건’에 대해 백화점·면세점이 실질적인 영향력과 결정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는 백화점·면세점 사업주가 실질적 결정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며, 입점업체는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연방노동위원회의 ‘공동사용자’ 개념
백화점·면세점이 갖는 ‘공동사용자’ 성격을 관련하여 우리 노조가 관심을 두는 사례는 미국연방노동위원회(NLRB)의 결정이다. 2023년 10월 27일 NLRB는 ‘공동사용자’(Joint Employer)의 지위에 관해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복수의 사용자가 어느 노동자와의 고용관계에 있고, 그 노동자의 필수적 근로조건 가운데 하나 이상을 공유하거나 공동으로 결정하는 경우, 복수의 사용자 모두는 그 노동자의 공동사용자로 간주된다는 게 NLRB 결정의 골자다.
NLRB가 공동사용자로 간주하는 근로조건으로는 (1)임금 및 기타 보상 (2)근로시간 및 작업일정 (3)수행해야 할 직무의 할당 (4)직무 수행에 대한 감독(Supervision) (5)직무 수행의 방식·수단·방법과 징계의 근거를 규율하는 작업규제 및 지침 (6)채용과 해고를 포함한 고용 기간 (7)근로자의 안전보건이 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더라도 공동사용자로 간주된다.
이 결정문을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단체교섭에 적용할 경우, 백화점·면세점 사업주는 ‘공동사용자’로서 교섭 의무를 지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된다. 백화점·면세점 사업주는 △휴일·휴식 등 근로시간, △위생·편의시설 등 안전보건에 관련된 근로환경의 결정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작업일정, 수행할 직무의 할당과 감독, △직무수행의 방식·수단·방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산별교섭 투쟁 전망
노동조합은 지난 2월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2024년 공동요구안과 산별교섭 방식을 확정하였다. 조합원 합동교육을 통해 올해 교섭투쟁의 방향을 알리고 결의를 다졌다. 조합원 교육은 전국의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게 광주, 대전, 제주, 부산, 인천, 서울 6개 지역에서 3월 5일부터 4월 5일까지 한달 간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난 2월 노사 상견례를 시작으로 산별교섭 성사를 위한 행동을 개시하였다.
조합원들이 일하는 백화점·면세점 현장에 가보면 백화점·면세점 사업주가 근로조건과 환경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공동사용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령은 현실의 다양한 모습을 무시한 채 사용자와 노동자의 개념을 낡은 시각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률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일어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는 부당한 근로조건과 환경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성공하여 현실을 바꾸어 놓으면, 그때서야 법제도가 바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2024년 산별교섭의 성공을 위해서 노동위원회나 법원을 통한 법률 대응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조합원의 의식 수준과 지도부의 역량을 끌어 올리고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또다시 다짐하게 된다. 결국 노동조합의 강력한 투쟁만이 현실을 법률에 반영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월 1일 노동절에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 서울청 앞에서 조합원 500명이 사전대회를 진행했다. “진짜 사용자가 책임지는 산별교섭 쟁취하자!” “공동사용자 교섭권 인정하라, 노조법 2·3조 개정하라”고 외쳤다. “회사는 달라도 우리는 하나“ 외침 속에 조합원들을 고용한 원사업주인 샤넬, 로레알 등 브랜드와의 집단교섭은 매달 한 차례 진행되고 있다. 조합원들이 일하는 현장을 통제하는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주와의 교섭은 아직 요원하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가 현실의 바탕 위에 서 있는 한,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주들이 낡은 법률의 장막 뒤로 숨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조합원들의 힘찬 단결과 투쟁은 그날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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