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과 생활임금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참담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2025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역대급으로 낮은 1.7% 인상률에 시급으로는 10,030원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210만 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몇 년 전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곧 맞이할 거라고 들떴던 노동자들은 고개를 떨궜다.
우리나라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하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과 경제인은 이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지 다시 한번 의문이 들게 한다.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지만, 최저임금은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이며, 국가는 적정 임금 보장에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헌법 제32조). 그리고 그것에 근거하여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는 것이 최저임금법의 목적으로 규정되어 있다(최저임금법 제1조).
최저임금제의 효과
최근처럼 노동자의 삶이 어려운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임금인상률로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최저임금 영향률이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기준으로 15.4%,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기준으로 3.9%에 불과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 나가면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더라도 그것을 기준으로 임금인상 수준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특히나 30인 미만 사업장은 더욱 그렇고,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등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자마다 견해가 서로 다르지만, 최저임금의 소득효과는 대부분 학자가 인정하고 있으며, 고용효과 역시 다수의 학자가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특히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무시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며, 그것에 비해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과 그로 인한 경기의 선순환 효과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여러 노동자를 만나 보면, 노동자 생계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다운 처우로 인한 자존감과 동기부여 등이 상당히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나 미시적으로 보나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가 큰데도, 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로 힘없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 자영업자의 어려움,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은 보다 근본적인 다른 해법을 준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마치 최저임금 인상이 그것들의 근본 원인인 것처럼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요소로 부각하여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보수정부이고 신고전파 경제학이 주류로 군림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을 어렵게 극복한 다수의 노동자와 국민의 상황, 그리고 아직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실물경제를 볼 때, 지금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와 포드(Henry Ford) 등이 강조한 것처럼 노동자의 구매력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현 정부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다.
지자체의 생활임금제 시도
최저임금이 이러한 상황인 데 비해 그래도 약간 높은 임금을 보장해 주는 것이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생활임금제’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의 정체, 실질임금의 하락 등을 극복하기 위해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생활임금제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캐나다, 한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서울 노원구, 성북구, 경기 부천시를 필두로 현재 약 120개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다. 생활임금의 수준은 평균적으로 최저임금에 비해 15%가량 높은 정도이고, 월평균으로는 30만 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생활임금제는 초기에 우려했던 대로 적용범위의 문제, 산정방식 등의 문제가 여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임금 적용대상자의 생계 지원, 만족도 등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특히 인간다운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과 업무몰입도, 동기부여 등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활임금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는 현재 약 2만여 개의 기관과 기업에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생활임금을 최저임금제도에 포괄해 “국가최저임금 – 국가생활임금 – 국가단위 실질생활임금”체계를 구축해 국가생활임금과 국가단위 실질생활임금의 적용범위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임금수준도 높여가고 있다.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상관관계
이와 같이 생활임금은 활용 정도에 따라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과 만족도, 생산성 향상, 경제 활성화 등 측면에서 긍정적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극복해야 할 문제는 여전하지만, 노동조합에서 생활임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최저임금 논의에도 참고가 되면서 조그만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초기에 다수의 노조와 연구자들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은 대체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상호보완 관계에 있으며, 그 좋은 사례로 영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제도의 생성 배경은 조금 다르지만,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각각의 고유목적에 충실하면서 서로 보완적으로 작동한다면, 고달픈 현실을 살아가는 다수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고, 이중노동시장을 완화하면서, 국가 경제의 선순환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부 역시 말로만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다방면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