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제헌절 하루 전날인 7월 16일 개원했다. 역대 국회 중 가장 늦은 개원식이다. 임기가 시작된 지 벌써 50여일이 훌쩍 지났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무노동무임금’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언론들도 국회 권력 앞에서는 납작 엎드린다.
국회 의석은 여대야소로 바뀌었다. 집권여당에 177석을 몰아준 이유는 촛불혁명에서 표출된 사회개혁 과제를 당당하게 추진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주권자들의 단호한 민심은 정부여당의 어정쩡한 개혁으로 심하게 요동친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갈지자 행보와 지지부진한 불평등 해소, 연이은 권력형 성추문 사건은 지지층의 이반을 가져왔다.
21대 국회의 핵심 과제는 코로나19에 따른 민생위기 해결과 경제 민주화의 추진이다. 정책 담론을 재형성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거창한 노동개혁이 아니라 일자리를 유지하고 만들어야 한다. 노동조합 보호 밖에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의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적 대책과 재원 투입 논의는 활발하지만, 매년 2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매일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평균 3명인 대한민국의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는 노동인권의 으뜸 과제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성장 이면에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산업재해의 어두운 그림자가 똬리를 트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5년 통계에서도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영국이 0.4명으로 최저이고, 한국은 영국보다 20배 이상 많은 10.1명이었다. 한국은 1994년 이후 2016년까지 23년 동안 두 차례만 터키에 1위를 내줬을 뿐 OECD 산재사망률 1위 국가의 불명예를 벗은 적이 없다. OECD산재 통계를 보면 한국의 산재 발생률은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총 산재사고 발생률은 OECD평균의 25%정도로 낮지만 산재 사망률은 가장 높다. 사고가 많은 만큼 사망률도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거꾸로 한국은 사고는 많지 않지만 사망률은 높다. 사망에 이를 만큼 큰 사고가 아니면 산재 사고로 신고 되지 않는 고질적인 병폐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OECD회원국 평균과 비교하여 가장 취약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의 3대 분야에서 발생하는 사망을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선언하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재사고 사망자를 2016년 969명에서 2022년 500명으로 줄여 사고사망 만인율을 OECD 평균보다 낮은 0.27로 낮추기 위한 목표를 수립하였다. 발표이후 2년 6개월이 지났지만 산재 사망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9년 산재 사망자수가 855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16명이 감소했지만, 2020년 상반기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일시적인 규제와 감독 강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산업안전의 구조적 문제를 꼼꼼히 따져볼 시점이다. 산재 사망사고의 현황에 기초하여 법제도의 빈구석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정부의 안전보건 강화 정책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855명이다. 건설현장에서 428명, 제조업종에서 206명, 기타업종에서 221명이 숨졌다. 사고 원인은 추락이 347명으로 가장 많았고 끼임 106명, 부딪힘 84명 등이 뒤를 이었다. 안전교육과 관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작업자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피할 수 있는 사고들이 대부분이다. 산재사망 노동자의 현황은 사업장 규모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강은미 정의당의원의 최근 5년간 산재 현황 재분석 결과에 따르면 5년간 산재 사망자는 1만268명이었는데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10명 미만(33.9%), 10~29명(18.1%), 30~49명(8.1%), 50~99명(9.2%), 100명 이상(30.8%)이었다. 전체 사망자 중 60.1%(6천163명)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대·중소영세기업간 차이가 거의 10배 수준이다. 산재 위험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원청에서 하청으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옮겨가는 시스템을 차단해야 한다. 산재사고에 대한 약한 사업주 처벌은 산재에 대한 사용자의 관심과 투자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처벌의 상한 수준을 높였지만 하한선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이 그대로 이어진다. 실제로 2016년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32만 원이고, 지난 10년 동안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산업안전보건 전문행정조직인 산업안전보건청 설치가 절실하다. 현재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과 지방고용노동청 내 일부 부서가 산재 위험요소들에 대응하고 산재 조사, 관리감독을 하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처럼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도 독립적 규제기관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10번째 경제 대국, 산재는 1등 국가의 오명을 벗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