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낡은 틀을 깨고 미래를 준비하자(노동과 세계, 2011년 1월 24일)
노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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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01:10
[칼럼] 낡은 틀을 깨고 미래를 준비하자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올 노사관계의 최대 관심사는 복수노조 실시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노동자의 자유로운 노동조합 선택권’이 올 7월1일부터 법으로 보장되었다.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에 대한 노동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국노총 지도부 선거에서는 ‘복수노조 허용 전면 반대론’이 쟁점이 되고 있으며, 민주노총 산하 일부 대기업노조에서도 긍정론보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때문이다. 정부는 국제노동 기준에 따라 복수노조를 허용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교창창구 단일화를 통해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현행 복수노조 법안의 위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법 제정 시 노동계가 우려했던 사항들이 노동부의『복수노조 매뉴얼』에서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 노조의 지부(분회)도 사용자와 교섭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별 노동조합과 동일하게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 노조’로 확정되어야 한다. 만약 교섭대표 노조가 못 된다면 초기업단위 노조의 지부(지회)는 사용자와 교섭을 할 수 없다.
또한 이 매뉴얼은 산별노조의 집단교섭 요구에 대해 사용자가 거부해도 부당노동해위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의 순기능은 배제한 채 ‘제2노조’의 탄생만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복수노조 허용이 노조 민주화와 조직 확대의 계기가 아닌, 사용자에 의한 노노갈등과 분열책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민주노조진영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현행 악법의 개정을 위한 헌법 소원, 노동기본권 확보 투쟁은 더 이상 강조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전임자 임금 금지 투쟁에서 확인된 것처럼, 장기적 전략과제와 단기 전술의 혼돈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를 새로운 경쟁 구도로 내몰고 있다. 노조 간 경쟁은 유익한 점도 손해나는 점도 있다. 경쟁에 처한 조직은 노조 효율성 향상, 노조활동의 다각화, 조직 민주주의의 향상 등을 통해 더 많은 신규 노동자를 노조에 유인함으로써 조직률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에 경쟁에는 그림자도 있다. 조직간 경쟁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협력을 억제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연대를 해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의 개입 여지가 늘어나고, 심지어는 노조 파괴와 사용자와의 담합 등의 현상이 노골화될 수 있다.
‘복수노조 시대’는 민주노조운동 진영에 새로운 도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도전을 피할 수도 없다. 복수노조 시대는 민주노조진영에게 진지한 성찰과 혁신을 요구한다. 무릇 상황의 돌파는 객관적인 조건의 성숙이 아니라 주체의 자각과 결집 여부에 달려 있다. 치밀한 계획과 대담한 발상으로 노동운동의 낡은 관성과 틀을 깨자.
복수노조 시대, 새로운 환경은 준비하는 사람의 몫이다. 조직 내부의 민주성을 높이고, 사업장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촉진하자. 더 나아가 삼성, 포스코 등 미노조 사업장의 노조 조직화를 위한 사회적 캠페인을 전개하자.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