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이 표출되었다.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는 그간의 정부 실정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변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의 표현이었다.
윤석렬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노동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아래에서는 세 가지로 나눠서 윤석렬 정부 노동정책의 문제점을 따져 본다. 첫째, 윤석렬 정부는 장시간 노동과 노동자 건강권을 침해할 것이 뻔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주 69시간 노동)을 강행 추진했다. 이는 주 52시간 상한제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장시간 노동은 과로사, 산업재해 등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유연근무제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연장노동시간 총량 규제완화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과 여론의 지탄 속에 개정안은 철회되었지만, 정부의 인식 수준과 정책 방향이 낡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장시간 노동 체제 개선 없이는 노동 ‘공정’ 사회로의 이행도, 일·생활 균형 실현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둘째, 취약노동자 보호 외면, 비정규직 차별 문제, 플랫폼 노동자 권익 보호 등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은 정부의 책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비정규직 고용보험 가입률은 매년 상승하고 있지만 윤석렬 정부의 증가율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5분의 1 수준이다.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상승세로 전환한 조직률은 윤석렬 정부 들어 다시 감소세로 전환하였다. 최저임금은 어떤가? 윤석렬 정부의 인상률은 심지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그것보다도 못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도 내놓지 않았다. 돌봄, 배달, 대리운전 등 취약 업종 종사자들은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여전히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있다. 윤석렬 정부 2년 노동.사회정책 평가 토론회에서 이시균 박사는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시장 주변부를 확대하고, 노동조건의 취약성을 약화시키고…파견업종 확대 시 비정규직이 늘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관련 보호 정책이 전무하니 오히려 노동시장을 왜곡하여 “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셋째, 노동이 존중받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과 사회적 대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을 통제와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특히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겨냥한 강경한 태도를 취하며 노동조합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안전운임제 무력화 등 모든 문제를 법과 원칙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려 했지만, 이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형식적 기준만 내세운 탁상행정에 불과했다. 노사관계 문제를 권위적, 일방적으로 대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켰다.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기반 마련에 정부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1년 9개월을 멈춘 노사정 대화 기구도 가동되었지만 정부가 추진하다 좌초된 연장근로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을 포함한 위원회는 노사간 갈등만 불러올 수 있다. 신뢰가 없는데 정부의 의지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있을까?
지난 21대 국회의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총 2,180건의 의안이 접수되었고, 이중에서 처리된 안건은 680건, 나머지 1,500건은 미처리(계류)되었다. 680건 중 법률안은 674건이고, 이중에서 정부 제출안이 50건, 의원 발의안이 624건이었다. 분류해보니 고용노동부 소관 법률의 제.개정안은 총 246건으로, 2020년 139건, 2021년 69건, 2022년 29건, 2023년 9건에 해당했다. 2022년 이전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고 2022년 이후는 윤석렬 정부에 해당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이러한 현상은 정책 결정과정에서 대통령의 정책 우선순위와 국회의 정치적 구성이 달라 나타나는 전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패배 후 노동약자 지원과 노동법원 설치 의지를 내비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공제회 등을 통한 취약노동자 지원책 마련은 시급한 과제인 만큼 환영할 일이다. 또 노동분쟁의 신속하고 전문적인 해결을 위해 노동법원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정부의 진정성이다. 그간 정부는 노동배제적 기조를 일관해 왔다. 취약계층 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이 단지 총선 참패에 따른 여론 무마용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노동법원이 노동이해대변의 통로로 작동할지 아니면 또 다른 통제 수단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약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정부의 인식과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꼼수'가 아닌 노사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통'이 필요하다. 취약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이들의 권리 증진에 방점을 둔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노동법원도 노사관계 전문성과 현장성이 담보될 때 비로소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관계의 미래를 좌우할 노동입법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더구나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일의 성격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자 등 비전형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노동법제를 정비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파업권 등 노동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고, ILO의 핵심협약을 비준하여 세계 사회에 노동권에 대한 보호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3권 보장, 복수노조 관련 법과 제도 후속 조치도 절실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강화 등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제도 강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노조법 2조와 제3조의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노동기본권 확대 및 강화, 비정규직 차별 해소, 노동자 안전 및 건강권 확보 등은 시대적 과제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사회 정의 실현의 첫걸음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 노동입법 과제 해결은 한순간에 이뤄지기 힘들다. 그러나 노사정 모두가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의 자세로 임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은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듯,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대책을 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상생의 노동정책을 펼칠 때,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도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노멀'은 가고 ‘뉴노멀'의 시대가 온다고 하더니 이제 ‘기후위기', ‘저출생', ‘고령화', ‘디지털 전환' 까지, 너무 혼란스럽다. 세상 이치를 부단히 읽으려는 학자들은 ‘다중위기'니 ‘복합위기'니 ‘문명대변혁'의 시대라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자극하고 있다.
새로운 국회는 그간 누적된 노동 현안들을 해결하고, 불확실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미래지향적 노동정책을 수립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