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 꿈에 폐허로 변한 슬픈 농촌의 역사
이원보_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한미자유무역협상이 막을 내리고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분노와 두려움이 짙게 드리운 한편에 권력자들은 장밋빛 꿈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고 그토록 노무현 정부를 미워하던 수구 보수세력들은 극구 칭찬에 침이 마른다. 정부는 이번 협정이 자동차, 섬유 무역에서 이득을 얻고 농업, 문화, 금융, 제약, 서비스업 등 다른 분야에서는 선진 경영기법을 받아들여 경쟁력을 키워내게 될 것이라 강변한다. 제발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애당초 미국과의 무역협상이란 거대한 바다에 물 한 바가지로 비유되었거니와 합의안 곳곳에 도사린 위험한 독소조항들이 드러나면서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속에서 무엇보다 큰 두려움은 역시 농업분야다. 정부는 각종 지원대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농업을 되살리는 목적이 아닌 바에야 농민들의 울분을 헤쳐내는데는 한참이나 멀어 보인다.
농민 소외의 한은 어제 오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숙명처럼 우리 역사를 채워왔다. 봉건시대에 이은 일제와 지주의 잔혹한 착취 수탈은 그만두고라도 민족이 해방된 후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은 농지개혁의 염원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리고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밀려들어 농촌의 목을 조였다. 60년대 경제개발은 농업, 광업과 같은 기초 원료산업의 희생위에서 이루어진 불균형성장이었다. 미국 잉여농산물은 갈수록 더 많이 들어오고 농촌은 메말라 갔다. 자본에 의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농산물가격이 희생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곧 자본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과 함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생활자료의 가치를 낮추는 것 곧 농산물가격을 여지없이 눌러버리는 공식인 것이다.
70년대 한때 고미가정책, 이중곡가제로 농민들의 주름살이 피는 듯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수급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명분하에 도입된 ‘농산물 비축제’는 오히려 농산물 수입개방의 길을 텄다. 농업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전두환정권의 임금 억제정책에 이은 양곡수매가격 동결에서 극치를 이루었다. 전두환정권은 농가적자 해소라는 명분 하에 ‘복합영농정책’을 내세웠다. 각가지 남새와 과실수를 심으라 하고 소도 키우라 했다. 그러나 온갖 작물에 생산과잉이 일어나고 소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의 가슴은 또다시 시커멓게 타버렸다. 6, 70년대 뽕나무, 고구마 파동과 흡사한 것이었다. 농가부채는 수백만원씩 쌓이고 농민들은 땅을 팽개치고 도시로 뛰쳐나갈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자본은 농축산물 수입개방을 주장하고 나섰다. 공산품 수출 증대가 농축산물 투자 보다 경제성장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이유였다. 미국은 공산품 무역에 대한 보복조치를 무기로 한국에 농산물시장 개방을 요구하였다. 한국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면서 농축산물 수입개방을 대폭 확대하였다. 농축산물의 수입자유화율은 1989년초 71.9%에서 1990년엔 84.9%까지 높아졌고 최근에는 거의 100% 가까이에 이르렀다.
정부는 농축산물 시장개방이 어쩔 수 없는 대세이며 우리 농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업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그것만이 선진화의 길이라고도 했다. 이 논리는 2,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어느 선진국도 경쟁력을 내세워 농업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농업을 보호하고 환경투자를 늘리고 있다. 농업은 돈 놓고 돈 먹기의 시장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농업, 농촌의 역할은 다면적이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통한 식량 안보, 국토 및 환경의 보전, 지역사회의 유지, 전통 및 문화의 보존, 인간 교육의 장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권력자, 가진자들은 한사코 농업의 희생양을 역설한다. 거치른 노인네들의 손과 발에 의존하며 겨우겨우 연명해온 우리 농업은 이제 판을 접어야 하는가? 버려진 들판에 어김없이 봄은 왔지만 한 웅큼의 희망이라도 지닐 수 없는 농촌의 현실에 가슴이 막막해온다.
[진보정치 3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