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한낮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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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한낮의 어둠

윤자호 0 1,289 2022.12.12 09:00

[돋보기] 한낮의 어둠​1)



작성: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극단주의와 테러는 한국과 거리가 먼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아주 가까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날이 강해집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카카오톡, 그리고 유튜브를 통한 거짓 뉴스 확산은 이제 제도 영역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한낮의 어둠』은 그동안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여겨온 가치, 평등이나 노동권, 폭력에 대한 반대 등이 쉽게 허물어지는 현실에 막막한 기분이 들던 와중 찾아보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정치학자이자 반(反) 극단주의 활동가인 율리아 에브너가 2년 간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정체성을 택해서 최신 기술에 능한 열 개의 극단주의 집단에 합류해서 관찰하고 목격한 바를 정리한 책입니다. 


지하디스트, 백인 우월주의자, 과격한 여성혐오주의자, 음모론자 등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을 둘러본 저자는, 정치학자로서의 통찰을 통해 소셜미디어 범람의 시대 반 사회적인 극단주의가 ‘설득력’과 ‘파급력’을 갖추는 전략과 과정을 드러냅니다. 이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인종 전쟁을 준비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허위 정보를 모으며, 언론의 자유를 이용해 반대자를 침묵시키고, 국제적 커뮤니티를 형성해 반국제적 사상을 퍼뜨리며, 반사회적 행동을 장려하기 위해 사회적 유대감을 쌓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서늘하게 다가온 부분은, 페미니스트이자 활동가인 저자가 반페미니스트 집단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관계를 쌓으며, 스스로의 신념이 흔들린 경험을 토로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인터넷 창을 나옴으로써 그 대화를 끝낼 수 있었지만, 그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있던 누군가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극단주의적 이념은 불확실성이 심화된 현 사회 속에서, 파편화된 개인에게, 친밀성과 편리함의 언어로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빨간약을 손에 쥔 이 여성들은 먼저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든 다음 세계관을 철저하게 비틀어버린다. (중략) 이곳에서의 혐오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향했다. 이곳의 회원들을 연결하는 언어에는 이상하게 편안한 면이 있었다. 

집단적인 자기 최적화self-optimization에서 나오는 일종의 위안이었다(p. 85~86) 

동시에, 소셜미디어에서 극단주의가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확산된 상황 기저에는 “10만 개의 웹사이트가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고, “웹사이트의 진위성을 확인하는 인력은 수십 명 뿐”인 현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동원된 전술은 자동화 계정과 댓글부대, 온라인 타깃 광고 등입니다. 한국 네티즌 입장에서도 매우 익숙한 것들입니다. 


저자는 음울한 현실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짧게나마 이러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소개합니다. 바로 사회와 기술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지식과 데이터베이스, 기술의 공유 △기업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알고리즘 투명성 및 책무 요구 △혐오 발언 금지법 기준의 완화 △허위 정보 해체 운동 활성화와 같은 새로운 시민 운동 △극단주의가 아닌 중간지대에 존재하는 온건파의 목소리를 부각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극단주의에 맞서는 교육’ 꾸리기가 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인간 본연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온라인 세계에서의 정체성과 신뢰, 우정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 대 그들’이라는 극단적 사고방식을 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낮의 어둠』은 이전에는 도저히 공공연하게 꺼낼 수 없었던 언어들이 정당성을 얻고 횡행하는 요즘, 절망하기보다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마음가짐과 전략이 필요한지 말해주는 친절한 책입니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촉’을 세우고 감지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낮의 어둠』은 서늘하지만 따뜻한, 그야말로 연말과 잘 어울리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율리아 에브너 저·김하현 역. 2021,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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