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어둠의 시대, 불꽃이 되어1)
작성자: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인간은 사실 태생적으로 결함을 지닌 생물입니다. 미완성인 채로 태어나, 전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생존할 수 없는 인간은 사회성을 지니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사회는 실상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분명 이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조금 더 따뜻해야 할 것 같은데, 가끔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엄혹합니다. 양극화 해소는 점점 더 요원해 보이고,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은 개별화되고 파편화되어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받는다’라는 능력주의를 맹신하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조차 점점 힘을 잃어가는 듯합니다.
『어둠의 시대 불꽃이 되어』는 최근 느끼고 있는 무력감과 고립감에 제동을 걸도록 도와준 책입니다. 제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는, 부당함에 항거하고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며 연대한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삶도 분명하게 녹아 들어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1970년대 민주적 노동조합운동을 했던 노동자들의 짤막한 생애사와 투쟁기록을 엮은 책입니다. ‘7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중심에는 여성노동자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 시대 노동자로서 투쟁하고 연대하며 살아간 분들의 생애사를 보노라면 저절로 ‘7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중심에는 여성노동자들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취업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조우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저임금과 초장시간노동, 임금체불, 고용불안정 뿐만이 아니라, 남성 관리자의 폭언과 성희롱, 그리고 관리자와 생산직 식탁을 구분하는 칸막이와 같은 야만적인 차별이었습니다. 이러한 불의는 노동조합 운동으로 이어졌고, 국가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노골적인 폭력을 가했습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겪은 폭력은 노골적인 국가폭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본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까지 합세해서 탄압했던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남성들이 던진 “시집이나 가라”는 멸시는 여성 노동자들이 반노동 정서뿐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부단히 싸워야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투쟁 기록에는 다층적인 폭력에 맞선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지들과 함께했던 따뜻한 순간들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모임을 조직하고, 교육을 듣고, 탈춤을 추거나 마당극을 하고, 힘겨운 순간 서로의 손을 잡으며 서로를 믿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노동운동이 ‘인생에서 빛이 나던 순간’으로 기억되고 기록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투쟁은 민주화운동으로, 여성운동 및 시민사회운동으로, 그리고 일상 속의 단단한 힘으로 이어져 나갔습니다.
노동자들의 증언록 사이사이에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설명은 개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600쪽이 훌쩍 넘는 기록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진솔한 기록이 주는 힘 덕분이 크겠지만 이러한 사려 깊은 구성 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유난히 무력하고 고립감이 느껴지는 연말, 따뜻한 선물처럼 다가오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