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1)
작성자: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제목이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연상되는 제목에, 부제는 “콜센터 상담 노동 이야기”. 분명히 재미있는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 확신은 맞았지만 틀리기도 합니다. 이 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제가 지레짐작한 것과 달리 ‘황당하고 어이없는 콜센터 상담 사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서두에서 “콜센터라는 곳, 고객 상담이라는 직업, 상담사라는 사람들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얼마나 심한 진상이 있는지 까발리는 게 아니라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며 당신(독자)이 종종 전화를 걸고 받는 그 전화의 상대방을 떠올리길 바란다고 밝힙니다. 그래서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제외하고, 다른 상담사의 경험을 실으면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한 후, 완성된 글을 보여주며 다시 허락을 얻을 글만을 모았다고 합니다. 서문에서 드러나는 깊은 사려는 책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콜센터 상담 노동자로서 10여 년간 일해온 저자와 동료들의 경험을 통해 충실하게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입사에서부터 퇴사까지, 성과 평가와 임금체계, 복잡한 제조-유통 구조, 그리고 고용 불안정이 얽혀 혹독한 감정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담사의 노동과정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콜센터 상담 노동자는 하도급 및 성과평가 체계, 그리고 수많은 사례가 그물망처럼 얽혀 만들어진 매뉴얼 안에서 말해야 하고, 동시에 ‘문제가 될만한 말’을 피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뜩이나 화난 채로 전화한 고객은) 더욱 분노하는데, 상담사는 말로 얻어맞을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욕받이 무녀’가 되어야 합니다. 고객과 제조사, 그리고 택배 배달원 사이에 낀 상담원의 고충이 담담하지만 치밀하게 드러납니다.
콜센터 상담 노동자의 이야기를 톺아보노라면, 자연스럽게 콜센터 상담 노동을 둘러싼 우리 사회 문제도 둘러보게 됩니다. “비정규직이 하는 일은 쉬운 일이므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서는 안 된다.”는, 정규직이 일종의 ‘신분’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 이미지를 판매하는 광고와 이에 실망한 소비자,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누구나 독립된 공간에서 일에 집중할 수 없는 현실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목에서 보이는 유머 감각은 선물처럼 툭툭 튀어나와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신발 교환을 요청하는 내용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고객이 무령왕릉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일화, “최저임금이 올랐으니 식대를 없애겠다.”는 본사 직원의 제안을 듣고 관리자로서 상담사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을 때 3분 안에 맨주먹에 맞아 죽는 상상을 하고는 며칠 동안 싸워 식대를 지킨 일…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직장인’으로서의 동지 의식이 생겨납니다.
유감스러운 점은, 콜센터 상담 노동자로 하여금 극한의 감정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만드는 주체들(콜센터 상담 노동자에게 화를 푸는 고객, 콜센터 상담 노동자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고객, 가혹한 성과평가 체계를 고수하는 관리자 등)은 높은 확률로 이 책을 읽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읽어도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화기 너머에는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은 콜센터 상담 노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화풀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안되는 것은 아무리 우겨도 안 되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조금 더 확고하게, 더 널리 공유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