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1)
작성: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최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렸을 때 재밌게 봤던 만화를 봤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캐릭터는 대체로 추악한 존재로 그려지고, 미성년자가 착취 당하는 것을 낭만화한 내용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런 내용을 보며 아무런 이상한 점도 느끼지 못했다니. 부끄러워졌습니다.
미디어 과잉 시대, 무언가에 열광했으나 그것이 부끄러워지는 경험은 상당히 보편적인 것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문제가 된 것들,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문제들, 그리고 이전에도 문제였지만 미처 문제라고 인식되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것들은 대체로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노력들 덕분에 생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이야기 한 만화 작가는 여전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데, 최신 연재작에서는 제가 부끄러움을 느꼈던 요소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아닐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역사가이자 방송인인 핼리 루벤홀드의 『The Five』는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눈부신 노력 중 하나입니다. 루벤홀드는 촘촘한 자료 조사와 사려 깊은 상상력을 결합해 유명한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것으로 여겨지는) 다섯 명의 여성의 삶을 조망합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들 중 3명은 ‘매춘부’라고 할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러 기록과 증언을 종합했을 때, 이들은 그저 경제난에서 탈출할 방도가 없던 노동계급 여성이었습니다.
대장장이의 딸이었던 앤 폴리는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고, 결국 거리로 나와 구빈원과 임시 거처를 전전했습니다. 하녀로 일하며 안정적인 거주지를 찾았으나 스스로에게 닥친 여러 불운을 어찌하지 못해 술을 마시다 일을 그만두고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벌이가 괜찮은 군인 출신 마부의 아내였던 애니 채프먼은 전염병으로 자식들을 잃은 슬픔을 술로 달랬습니다. 배우자까지 병으로 사망하자 애니는 거리를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술은 만병통치약처럼 도처에 있었고, 노동계급은 펍에서 술을 마시며 이웃과 어울리곤 했습니다. 강도 높은 노동과 늘 곁에 있는 빈곤의 위험을 위로해주는 것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그 술이었습니다.
스웨덴 농가 출신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는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으나 배우자의 사업실패와 죽음으로 순식간에 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청소부, 하인, 커피하우스 주인, 때로는 성판매자였으나 언론은 엘리자베스를 ‘매춘부’로 고정시켰습니다. 학교를 다녀 글을 쓸 줄 알았던 케이트 에도스는 배우자와 함께 방랑생활을 하며 발라드를 창작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의 폭력으로 방랑생활이 끝나고, 혼자서 자녀와 거리를 유랑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 중 유일하게 확고한 성판매 여성이었던 메리 제인은 조직적인 인신매매로 인해 삶이 헝클어지고 늘 위험을 피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메리는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우리는 그들을 ‘매춘부’로 알고 있을까요? 황색언론의 역할이 큽니다. 당시 언론들은 피해자들의 다채로운 삶과 이를 증명하는 기록, 주변인들의 증언에서 자극적인 것만을 끄집어내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황색언론은 왜 그러한 보도를 했을까요? 노동계급 여성이 극심한 빈곤과 위험으로 빠지기 너무나 쉬웠던 당시 사회적 구조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외도는 그럭저럭 용인됐지만 여성의 외도는 그렇지 못한 인식과 제도,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 감염, ‘벌이가 괜찮은’ 노동자라도 아이를 많이 낳거나 병에 걸리면 순식간에 주거지를 잃고 떠돌아다니게 되는 취약한 사회 안전망, 대체로 용인되었던 여성에 대한 남편의 폭력, 남성 노동자보다 훨씬 낮은 여성 노동자의 임금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빈곤으로 인해 거리를 떠도는 여성들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남성 애인을 사귀었는데, 당시 영국 사회는 이들과 매춘부를 구분할 능력도, 의지도 모자랐습니다.
결국 살인자 잭 더 리퍼는 "관습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집이나 가족이 없는 여자‧술을 많이 마시는 여자‧가난한 여자를 노린 것"입니다. 즉,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살해한 비열한 살인자에 불과합니다. 루벤홀드는 “오늘날 우리가 ‘매춘부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이유는 허구의 잭 더 리퍼를 토대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산업이 아직도 그걸로 먹고 살고 있어서”라는 점을 꼬집습니다. 이야기 산업은 피해자 삶의 존엄성을 밟고 걷어차며 유지되고 있습니다. ‘매춘부’라는 딱지는 “피해자인 여성들을 비방하고, 성애화하고, 비인간화”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루벤홀드가 지적하는 취약한 위치에 자리한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인식체계와 폭력성을 좇다보니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선언이 나온 오늘날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폭력과 차별 저번에 있는 구조를 ‘없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누군가는 부당한 일을 겪어 마땅하다는 사고방식이 작동됩니다. 문제를 문제로 만들지 않고자 하는 노력이 많은 현재,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노력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잭 더 리퍼 이야기에 열광했던 과거의 제가 부끄러워지는 것 이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