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1)
작성: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가끔 제가 발 딛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 힘겨워질 때 약 50년 후의 제 모습을 그립니다. 어린 자손들이, 혹은 제 생애사를 인터뷰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제 젊은 시절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경악합니다. 저는 “야만적이지요?”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건넵니다. 이것은 장래 희망이기도 합니다. 제 장래 희망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덜 비참해지는 과정을 응시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최근 눈을 감고 50년 후의 저를 그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뉴스를 볼 때 그렇습니다. 어떤 언론사는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의 책임이 주52시간제에 있다는 왜곡을 자행했습니다. 그 보도가 나온 후 며칠 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산업재해 발생 시 당장 경영자 처벌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고 “당장 처벌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위축돼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었고, 죽고 있는 사회에서 그 죽음에 대해 성찰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꺼내는 말입니다.
『2146, 529』는 2021년 한 해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의 부고를 모은 책입니다. 2,146은 2021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숫자고, 529는 그중 사고 및 과로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숫자입니다. 책의 서문에서 언급하듯 이는 산재보험으로 인정된 사망자 수만 집계한 결과로,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포함되지 않은 수입니다. 하루에 5~6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는 참담한 집계조차 현실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2021년 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전하는 언론보도가 아주 건조하고 간략하게 나열되어 있고, 책은 가볍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과정은 괴롭습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겪은 죽음인데 “끼여”, “깔려”, “떨어져”, “부딪쳐” 죽었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심지어 “또 죽었다” “또 숨진 채”와 같은 표현 역시 종종 보입니다. 짤막한 보도가 미처 다 말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미 산재로 인해 사망하는 노동자 중 다수가 하청, 혹은 하청의 하청 노동자이며 원청은 그들의 죽음을 방기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인 것은 아마도 수많은 노동자가 반복된 단어로 표현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편적인 부당함을 추상화할 때 구체적인 책임은 사라집니다. 보편적인 부당함은 이윤과 ‘효율성’ 뒤편에 놓이는 노동자의 안전이고 추상화는 이를 ‘누구나 겪는 사고’ 혹은 ‘개인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사고’라고 여기는 폭력적인 논리입니다.
2022년 1월 2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 등은 2년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점 등의 ‘구멍’이 있습니다. 기업은 막았어야 했던 죽음을 방기하다가 이제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골몰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원칙을 온전히 착륙시키기 위해 기울여야 할 힘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은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책임을 흩날리는 폭력적인 추상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확신이 듭니다. 『2146, 529』는 숫자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라도 기억하기 ‘시작’해야 하는 죽음에 대한 추모와 애도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