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브리프 제2호_2018-02_이슈줌인]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주요 쟁점
박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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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1 01:22
글쓴이: 강태선(아주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특임교수)
1. 서론
지난 2월 9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개정안이 입법예고 되었다. 1981년 이 법이 제정된 이래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으로 1988년 원진레이온 노동자 직업병 문제가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직업병 피해자를 낳았다.
1990년 최초의 전부개정이 있고 나서 28년만이다. 고용노동부는 3월 27일 산안법 전부개정안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보다 앞서 3월 15일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양대 노총 등 주로 시민사회단체 공동주최로 ‘산업안전보건법, 제대로 바꾸자!’라는 제하의 산안법 전부개정안 토론회를 필두로 3월 20일에는 장석춘 의원실 주관으로 ‘위험의 외주화와 균열일터 산업안전 차별해소’ 제하의 산안법 개정안 토론이 이어졌다. 경총도 4월 18일 ‘산업안전보건정책 개선 토론회’라는 명칭으로 산안법 전부개정안에 관한 논의의 장을 만들었다. 이 글에서는 위 토론회 등에서 나타난 노동계, 경영계 등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차이를 주요 논점별로 간략히 정리했다. 복잡한 기술기준이 포함된 산안법의 내용을 요약하였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입법예고안, 토론회·공청회 자료집을 참고하기 바란다.
2. 본론
가. 전부개정 필요성과 절차
산안법 전부개정 입법예고안은 고용노동부 발의 법안인데 예고일 전까지 고용노동부가 ‘일부개정’이 아닌 ‘전부개정’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일반인은 거의 없었다. 입법예고 전 정책자문위원회 산재예방보상분과위원들만 관련 개정 요지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12월∼1월 사이였다. 입법예고 전문에 왜 ‘전부개정’ 방식을 택했는지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다만 정책자문위원들에게 고용노동부 실무 관계자가 법 개정 요지를 설명하면서 ‘이 법률의 가지조문이 지나치게 많아졌다’ 정도 언급이 전부개정 필요성에 관한 답변이었다. 1990년 전부개정 당시 이 법률은 총 72개의 조문이었는데 그 동안 필요에 따라 ‘제9조의2’, ‘제10조의2’ 등과 같은 가지조문이 제정돼 추가되면서 현재 125개에 이른다. 가지조문뿐만 아니라 각 조문의 내용도 많아졌는데 도급 사업주의 의무를 다루고 있는 제29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0년 제1차 전부개정 당시 제29조는 3항까지만 제정됐는데 현행 10항까지 늘었다.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가 지속적으로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28년만의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 당일에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노동계는 관료와 소수의 전문가가 전부개정을 주도했고 노동계는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며 비판했다. 노동계는 역사적인 전부개정인 만큼 여론을 수렴하고 더 많은 숙의과정을 거친 후에 입법예고를 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도 의견수렴 절차에 아쉬움을 표했으나 전부개정이라는 형식과 그 절차 보다는 법안의 내용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산안법 정책분야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일부 전문가는 전부개정은 그동안 축적된 관련 판례, 법리, 유권해석, 실무관행 등을 허물고 이해도를 떨어뜨릴 수 있어 법적 안정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신중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 법의 보호대상 ‘일하는 사람’
개정안 제1조 법의 목적에서는 보호대상을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변경했다. 고용노동부는 배달종사자 등 신종 플랫폼 노동유형을 보호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하여 노동계는 그 방향은 타당하나 ‘일하는 사람’의 정의가 없는 가운데 기존 ‘근로자’ 정의는 그대로인 점을 들어 실효성 없는 개정이라고 비판했다. 경영계는 특고종사자의 업무형태, 재해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신중히 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다. 회사 대표이사의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책임 강화
현행법에서는 안전보건관리의 궁극적 책임이 법인과 자연인인 공장장 또는 지점장 등 사업장을 관할하는 자에게 있고, 여러 사업장에 걸쳐 더 큰 권한을 행사하는 법인의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개정안에 따르면 회사의 대표이사 등이 매년 회사 전체의 안전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권한이 있는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근거규정을 마련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 노동계와 시민사회 단체는 대체로 환영하였고 경영계는 별도의 논평이 없었다.
라. 유해·위험작업 도급 제한
개정안에서는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ㆍ주입ㆍ가공ㆍ가열 작업 등 현행 도급인가 대상 작업의 도급을 아예 금지하였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했다. 노동계는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온 대로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찬성하면서도 외주화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급금지 확대에 대한 기준을 검토하는 기구를 만드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도급금지는 기업 간 계약체결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며 선진국에도 입법례가 없음을 들어 반대했다.
마. 도급인의 산업재해예방 책임 확대
안전ㆍ보건조치를 하여야 하는 도급인의 범위를 도급인의 사업장,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에서 수급인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로 확대했다. 노동계는 현행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산업재해 발생위험이 있는’ 도급인 사업장의 일부 장소에 국한됨과 비교하여 진일보한 안으로 평가했다. 이에 대하여 경영계는 작업장소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적용대상 도급사업 범위 및 작업장소를 규정해야 하며 수급인 근로자 보호를 위한 도급인의 안전상 지시·명령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 중대재해 발생 시 조치강화
급박한 위험에서 근로자의 긴급대피에 대하여 사업주가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했을 때 벌칙을 신설했고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노동부장관의 작업중지 명령의 근거와 요건을 명확히 하고, 작업중지 해제와 관련하여 심의위원회 심사 등 절차를 마련했다. 노동계는 근로자의 긴급대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로자 대표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노동부장관의 작업중지에 관한 개정안에 대하여는 작업중지가 전면작업중지가 아니라 해당 작업, 같은 사업장내 동일 작업 등으로 제한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 발생 시라도 현행 ‘급박한 위험’이 아니라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고용노동부장관이 작업중지를 명할 수 있도록 개정한 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고 전면작업중지인 그 부작용을 고려하면 ‘비례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긴급대피한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한 처우 시 벌칙 신설에 대하여는 논평하지 않았다.
사.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제출
전부개정안에서는 물질안전보건자료 기재 대상을 현행 모든 화학물질에서 국제기준과 같이 유해·위험한 화학물질로 한정하였고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자가 양도·제공하는 경우 작성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물질안전보건자료란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을 함유한 제제의 구성성분, 안전·보건상의 취급주의 사항 등을 기재한 문서인데 현행법에서는 대상화학물질을 양도하거나 제공하는 자, 사업주가 양수인이나 근로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만 하면 되는데 개정안은 이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할 의무를 신설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개정 취지에 대하여 유럽 등에서 통용되는 국제기준의 물질안전보건자료와 호환성 제고, 제조·수입자로 책임소재 명확화를 기하고자 한 것이며 제출의무를 신설한 것은 화학제품의 현황을 정부가 쉽게 파악하여 관련 정책을 합리적으로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개정안에서 현행법에서 대상화학물질에 포함된 모든 구성성분 화학물질을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기재하도록 한 것에서 유해·위험한 화학물질로 한정한 것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고 장관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출토록 한 변경에는 별도의 논평이 없었다. 경영계는 고용노동부장관이 제출받은 물질안전보건자료 정보 중 구성성분 등 일부를 공개하는 안에 대하여 ‘경쟁사에 회사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화학물질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개정은 물질안전보건자료 중 구성성분의 명칭 및 함유량을 비공개하려는 경우 고용노동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 점이다. 이에 대하여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전반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이고 경영계는 영업비밀 승인에 소용되는 시간 등의 문제를 들어 낭비적일 수 있다고 반대했다.
아. 건설공사 발주자 책임 강화
건설업 발주자 등의 책임 강화 등을 위하여 “건설공사에 관한 특례”의 장을 신설하고, 건설공사의 계획ㆍ설계ㆍ시공 단계별로 ‘발주자의 안전·보건조치’를 신설하였다. 노동계는 발주자 책임 강화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발주자가 시공단계별로 유해·위험 감소대책 수립 등의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벌칙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건설업에서는 건설기계와 관련된 사망사고가 많은 점을 들어 ‘임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적용범위 확대가 도급분야 조문이나 건설공사 특례 조문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건설공사에 관한 특례에 대하여 별도의 논평을 하지 않았다. 관련 전문가들은 건설공사에 관한 특례가 신설되면서 화학공장, 제철소, 발전소 등 건설업 이외 발주자에 의한 ‘유지보수공사, 교체·증축공사’ 등이 건설특례 조문만 적용됨에 따라 도급인의 의무주체가 대폭 축소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3. 결론
늘 그렇듯 이번 법률 개정안에 대하여도 노동계와 경영계의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이번에는 전부개정이라는 점에서 그 필요성과 절차 측면에서 노사 양측의 비판을 받고 있다. 원청 안전보건 책임강화 등 최근 몇 년간 안전보건에서 제기된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고 표면적으로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여론을 적지 않게 수용했음에도 일방통보는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전부개정은 법률 전체를 흔드는 일로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일선 근로감독관의 집행 효율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내부적인 고려도 부족해 보인다.
사실 이 전부개정안은 지난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과 산재예방정책과장의 유물로 보인다. 늘 그렇듯 잘 해야 욕만 먹는 안전보건정책 책임직에서 그들은 전부개정안이라는 대형 ‘폭탄’을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평균 임기 ‘1년 미만’의 행정직 국장이 첨단 반도체 공정의 백혈병 문제부터 타워크레인 붕괴까지 그 원인과 대책을 놓고 씨름했을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최근 그 자리에 처음으로 민간 전문가가 왔다. 이제 우리나라 안전보건계는 최소 3년 길게는 5년을 일할 수 있는 정책 책임자를 맞이했고 그는 이제 이 전부개정안을 화두삼아 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디 몇 년 뒤 최초의 민간 전문가 출신의 국장이 전부개정안이 ‘폭탄’이 아니라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