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향신문 <세상읽기>의 필자 칼럼(2022.6.1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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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화된 한계노동, ‘15시간’의 굴레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최근 몇년 사이 초단시간 노동자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 간 차이가 있으나 154만명에서 185만명이나 된다. 초단시간 노동자 대부분은 여성과 청년 및 고령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일자리 중 하나다. 서비스산업만이 아니라, 제조업과 건설업 그리고 농림수산업에도 적지 않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인들과 경제 관료들의 관심사는 경제대책이었고, 그 방안의 하나로 고용률과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두었다. 통계 속에 숨겨진 초단시간 노동은 관심 밖이었다. 국정과제 목표나 지표에서 고용의 질은 항상 부차적 취급을 받았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절반은 취업규칙도 부재한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1주일에 10시간 전후의 일을 하다 보니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득에도 못 미친다. 15시간과 14시간 혹은 14시간30분의 차이는 단지 30분의 차이가 아니다. 근로계약 미작성이나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60대 이상 고령자 일자리에서 15년 전에 비해 6배가량 증가한 것도 빈곤한 노동 현실을 보여준다. 언제부터인가 기준 이하의 최소 노동시간만 규정받고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민간은 물론 공공에서 유연성과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초단시간 일자리가 더 많아지고 있다. 통계 속에 숨겨진 주변화된 한계노동의 단면이다.
무엇보다 불안정한 고용에서 확인되는 안전과 건강권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고용기간이 짧아 질병이나 재해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0명 중 1명은 6개월 이상 질병이나 건강 문제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터에서의 권리나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아파도 나와서 일할 수밖에 없다. 몸이 아파도 적절한 휴가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일터에서 안전과 건강 관련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일하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위한 최저 기준은 아프면 쉴 권리의 보장에서 확인된다. 바로 유급병가와 질병·상병수당이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해야 할 이유다.
마침 사무금융 노사가 설립한 우분투재단에서 올해 하반기 초단시간 유급병가비 지원 사업을 한다. 자기돌봄이 필요한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 쉼과 회복을 돕자는 취지다. 국가와 기업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는 주변화된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한 의미 있는 공익사업이다. 올해 3주년을 맞아 ‘차별 없는 일터,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 같다. 불평등한 일터 개선을 위한 사업으로 기획되었다고 하니 다른 곳에서도 확대하면 좋겠다. 경기도에서도 초단시간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연구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전과 달리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희망이 되는 정책과 사업들이 활발하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는 제110차 총회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노동기본권에 포함했다. 고용과 직업상의 차별 철폐와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기본 요소로 선언한 것이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 보편적 권리로서 동등한 법률을 적용해야 할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이제우리 사회는 고용도 짧고 기준 이하의 임금을 받는 한계노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표준적 고용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생활노동시간제’와 같은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 학업이나 돌봄 및 건강 등 특정한 사유를 제외하고, 사업장에서 15시간 이상의 근로계약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자본과 기업이 더 많은 시장을 원한다면, 더 많은 사회정책에 책임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단지 재정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초단시간을 활용한다면 사회기금 성격의 부담금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쪼개기 계약을 막을 방법이 없다. 초단시간 일자리가 그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로 자리잡기 전에 ‘오래된 위험’에 우리 모두가 맞서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