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향신문 <세상읽기> 2022년 5월 20일 칼럼 원고입니다.
- 아래 -
허구적 노동개혁보다 진보정치가 절실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갑자기 ‘자유시장경제’가 정치의 본질처럼 논의된다. 시대적 상황과 서로 다른 생각을 토론하고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자유’를 35회, 국회 연설에서 ‘경제’를 10회 언급했다. 취임식과 국회연설에서 불평등이나 차별 혹은 격차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나라 안팎의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주요 과제로 노동개혁을 외쳤을 뿐이다. 연설 전문을 보면 “세계적인 산업구조의 대변혁 과정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개혁이 필요합니다”라고 언급했다.
노동개혁이 무엇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정과제에서 밝힌 노동시장 진단과 해법에서 추론이 가능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경제와 기업 활성화를 위해 고용과 임금 그리고 노동시간의 유연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유연화는 기업에 해고 규제 완화, 계약직 및 파견직 범위 확대, 성과중심의 연봉제 도입을 의미한다. 더불어 주 52시간 초과근무 규제나 최저임금의 지역과 업종별 차등 적용은 일하는 사람들의 허리를 죄는 정책들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고,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 감소하여, 부유층과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불평등과 격차를 우려”한 바 있다. 노동개혁이라는 그럴싸한 표현을 했지만 사실은 기업과 조직의 구조조정이나 인력 감축을 의미한다. 오로지 비용편익의 관점뿐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대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 국정과제나 대통령 연설 등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시장경제의 주체인 자본과 기업의 개혁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SPC그룹 파리바게뜨와 같은 부당노동행위와 반인권적 행태는 왜 언급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파리바게뜨는 2017년 불법파견 문제로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된 바 있다. 되짚어 보면 불법파견이나 임금꺾기는 차지하더라도 인력부족으로 휴일휴가 및 점심시간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리바게뜨는 각종 노동법 위반의 종합상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사측은 제대로 된 합의 이행은 고사하고 노조 탈퇴 공작이나 차별적 인사·배치 등과 같은 부당노동행위(KBS <시사직격>, 5월13일)를 자행하고 있다.
임종린 지회장이 53일간의 단식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대화는 막혀 있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개혁은 바로 이런 부당노동행위 해결이 아닐까. 제빵제과기사의 꿈을 안고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선택하는 청년 노동자들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2017년 10월20일 <파리바게뜨, ‘프랜차이즈라는 괴물’>이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기고한 지 어느덧 4년6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변한 게 없다. 과연 파리바게뜨의 반노동인권적 행태와 끝은 어디까지일까.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는 2017년 6월27일 정의당의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노동부는 약 3개월 동안 6개 지방노동청 합동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정의당 때문에 프랜차이즈 형태의 원·하청 불법파견 사례는 물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차별금지법과 같은 의제가 부각된 것은 정의당이 필요한 존재 이유일지 모른다.
요즘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활동이 그리 녹록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10년 동안 노동과 청년문제를 고민한 후보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다양성과 공존이 빛나는 마포’(조성주), ‘서로를 함께 돌보는 동네’(박건도), ‘사각지대·차별없는 모두의 노동’(문정은)을 슬로건으로 한 청년노동 활동가들이다. 선배들에게 받은 것 하나 없이 시작한 진보 2세대들이 보수정부 시기 혹은 그 이후의 대안정치를 보여줄지 모른다. 독일은 10대부터 청년들이 정치활동을 노동과 함께한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청년’과 ‘노동’에 야박하다.
노동개혁,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파리바게뜨, 정의당, 진보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