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향신문 <세상읽기>의 필자 칼럼(2022.4.22) 원고입니다.
- 아래 -
고령 노동자의 일할 권리
-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광고물 수거, 시설 유지, 주차 안내, 골목 지킴이…. 공공에서 창출하고 있는 고령 노동자 일자리 사업들이다. 대부분 단순 일자리다. 많은 사람들이 조기퇴직 이후 생산적 경제활동과 개인적으로 유용한 일을 찾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 이미 우리는 OECD 회원국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정년 퇴직자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취업 후 일자리를 유지하는 기간은 15년2개월에 불과하고, 일자리를 그만둔 시점은 49.3세다. 그만큼 노동시장은 유연할 만큼 유연하다.
2013년 ‘정년 60세’가 법제화되었지만 오히려 평균 근속기간은 10년 전보다 단축되었다. 중장년 시기 일자리 상실은 장기실업에 처할 위험이 높다. 정년 이전 퇴직자들은 대개 일하는 곳의 사업부진이나 휴·폐업, 권고사직 등의 형태로 직장을 떠난다. 고령자 계속고용 장려금 제도가 갖는 한계일지 모른다. 조기퇴직 이후 생계유지를 위해 다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아질 것 같다. 문제는 다수의 일자리가 저임금 비정규직이거나 자영업이다. 그나마 공식 일자리를 찾더라도 고용보험 가입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현실에서 제도 밖의 시민들만 넘쳐난다.
이런 이유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노동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고용유지나 정년연장과 같은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 과거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 시행한 정년연장은 ‘연금제도 변화’와 ‘점진적 은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추진되었다. 일본도 무려 20년 동안 정년연장(60, 65, 70세)을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이들 모두 이해당사자들과의 사회적 대화 속에서 고령화 문제에 대처했다. 우리도 이제는 노동시장의 새로운 정책을 모색할 시점이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매년 제공하는 기존의 고령 노동자 일자리 정책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정책 방향과 틀을 혁신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물론 법률, 연구, 커뮤니케이션 등 포괄적이고 실용적인 조치와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생활임금 수준의 라이트 풀타임 일자리와 유급훈련이 결합된 고령 노동자 이행 프로그램을 모색하면 어떨까. 특히 고령 노동자 일자리는 공급 중심에서 노동능력 유지 및 향상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더불어 고령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도 같이 고려되면 좋겠다. 대표적으로 상병수당이나 유급병가·휴가제도가 제공되어야 한다. 60대 이상 고령자는 노후 생계유지를 위해 다시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노동시장 이외의 다양한 정책수단이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그간 개인이 부담해야 할 의료, 돌봄, 주거 비용 등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공적이전소득 정책은 필수적이다.
앞으로 고령 노동자 일자리는 정부가 핵심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 현재 서울지역 25개 자치구에서는 직접 재정지원 일자리로 연간 약 2100개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개 자치구당 평균 6052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한 해에 1조4700억원을 투여해 15만1000개 남짓의 일자리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보람된 일자리’가 아닌 ‘그저 그런 일자리’들이 많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중 100분의 1이라도 참여소득형 일자리로 고민해보면 좋겠다. 지역에서 의미 있는 일자리 루트를 소개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고령화 문제와 맞물린 노동시장 정책은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 프로젝트로 모색할 시점이다.
앞으로 몇 살까지 일을 해야 할지, 19세부터 일을 시작한 사람은 언제까지 사회보험료를 지출해야 할지, 언제쯤 일을 그만둘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지…. 이 모두 고령화 문제와 정년연장, 연금개혁 등 험난한 과제들과 함께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이미 고령 노동자 규모는 147만명으로 적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