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쉴 곳 없는 일터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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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쉴 곳 없는 일터의 불평등

김종진 0 4,413 2018.06.09 05:36
* 이 글은 필자의 경향신문 고정 칼럼(세상읽기, 2018.6.8)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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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쉴 곳 없는 일터의 불평등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앉을 수 없는 노동자, 화장실에서 밥 먹는 노동자. 최근 언론에 기사화된 의자나 휴게실 관련 보도 내용이다. 언뜻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 제목은 ‘이번엔 정말 앉을 수 있을까요’, ‘화장실에서 밥 먹지 않아도 되나요?’였다. 우리 주위 쉴 곳 없는 노동자들의 몇몇 단면이 떠오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대학과 아파트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다. 판매 사원들은 서서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경비 노동자들은 비좁고 열악한 곳에서 쉬고 있다.

때마침 지난 4일 정부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와 운영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유통 판매직 노동자들의 건강보호 대책이다. 주요 내용에는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한 사업주와 고객 대상 홍보, 건강가이드 보급, 우수사례 공유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반기부터는 백화점·면세점을 중심으로 지도·점검 계획도 밝혔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노동부 발표 내용을 보면 10년 전 시민사회단체 캠페인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2008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판매·계산 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이었다. 당시 대형유통업체들은 전국 매장에 의자를 비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일터는 변했을까. 마트 의자는 계산대(POS)와 맞지 않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작업대와 조율되지 않은 의자는 오히려 불편함만 초래했다. 판매사원들은 매장 관리자 눈치 때문에 제대로 의자에 앉지도 못한다.

물론 정부의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에는 나름 구체성도 담겨 있다. 특히 사업장 휴게시설 참고 설치기준은 인상적이다. 휴게시설 설치 위치·규모, 공기·조명·소음 기준, 비품관리 같은 내용을 포함했다. 문제는 이런 가이드라인이 강제성을 갖지 못하는 권고라는 점이다. 구속력이 담보되지 않는 가이드라인은 의미가 없다.

아직도 건물 청소 노동자 휴게공간을 화장실 바로 옆에 둔 곳도 있다. 일부 병원이나 극장이 위치한 건물에 가보면 대걸레를 빨 수 있는 개수대가 설치된 곳에 휴게실이 있다. 건물 사무실 공간도 부족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 여성화장실 안에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만들어 언론에 뭇매를 맞은 공공기관이 대표적이다. 주위 아파트 경비노동자 휴게공간도 다르지 않다. 일부 입주민들이 리모델링을 하거나 냉난방 비품을 비치해주는 곳도 있지만 일부 사례다. 강남 주공아파트 한 곳을 가보니 경비 사무실이 3.3㎡(1평)도 되지 않았다. 20년도 넘게 일한 경비 노동자 사무실조차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판잣집’ 형태였다.

언제나 그렇듯 일회성 이벤트는 언론을 하려하게 장식했다. 그사이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국회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앉을 권리’와 ‘쉴 권리’를 논의하는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정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고 기업들은 그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다. 정부 발표 내용은 10년 전 그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현수막을 걸고,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가이드를 보급하겠다고 한다. 어디에서 많이 보았던 단골 메뉴들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규칙에는 휴게시설이나 의자 비치 관련 조항이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보니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 산업안전보건청(OSHA)에서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인간중심적으로 배치되어야 함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휴게시설은 작업공간과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의자는 ‘권력’(chairman)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여유를 갖는 안식처다. 권력이 아닌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자와 휴게실은 최소한의 노동조건이다. 쉴 곳 없는 일터의 불평등 해소는 배려가 아닌 제도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의사결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의자에 앉아 있습니까? 아니면 ‘서’ 있습니까?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07205903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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