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향신문의 <세상읽기> 코너 필자의 칼럼(2020.9.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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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프리랜서와 플랫폼노동의 새로운 규칙 설정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바이럴 마케터, 의료 코디네이터, 펫 시터. 예전에는 없던 직업들이다. 얼핏 보기엔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들 모두 특정 기업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일하는 프리랜서이다. ‘프리랜서(freelancer)’라는 말이 그러하듯 사람들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다. 그 낱말이 주는 묘한 설렘이 그렇다. 큐레이터나 작곡처럼 일에 열정과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부터, IT개발자나 컨설턴트처럼 전문직이 많다. 업무시간과 공간 자유도가 높고, 결과물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높은 직업 만족도를 일을 선택한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다수의 프리랜서 당사자들은 일을 시작하면서 떠오르는 것이 ‘돈’과 ‘외로움’이라고 한다. 주위 몇몇은 자기 삶을 개척해가는 독립노동자,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불안정한 삶에 숨겨진 노동의 비애가 있다. 무엇보다 일감이 끊긴 후 통장 잔액이 바닥을 보일 때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불안감이 커진다. 특히 불안정한 소득이나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무리한 수정요구 등은 오래된 숙제들이다. ‘업계의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낮은 단가로 일감을 주는 것은 기본이다. 소위 ‘갑’의 제안 자체가 소득과 연결되기에 부당대우도 감수하고 일을 수행한다. 심지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그저 고마워해라!”와 같은 말을 접할 땐 자괴감마저 든다.
프리랜서는 개인사업자로서 고용상의 지위를 가진다. 이런 이유로 근로기준법과 같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노동 밖의 노동으로 지칭되는 플랫폼노동자와도 중첩된다. 코로나19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한 특수고용노동자나 프리랜서는 176만명이었다. 정부 통계에 쉽게 잡히지 않는 새로운 노동형태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국내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규모만도 469만명 정도 된다. 지난달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의 국세청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분석 결과 약 613만명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비임금노동자로 취업자의 25.1%(681만명)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4년 사이 경계가 모호한 노동이 212만6000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프리랜서를 선택하는 순간 일하는 사람이 보장받아야 할 모든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 사회구성원의 보편적 권리를 법률로 배제한 것인데, 차별이 법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예술 프리랜서에게 예술활동 성격에 따라 실업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의 프리랜서 보호법, 이탈리아 라치오주의 플랫폼노동자 보호조례 등은 새로운 노동형태를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다. 독일(옴부즈오피스)과 프랑스(우버관측소)에서는 플랫폼노동자들의 권익 침해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서울, 경기, 부산 등에서 최근 프리랜서 조례가 만들어졌다. 서울과 경기도는 플랫폼노동 지원 사업을 조례와 정책으로까지 준비 중이며, 성남시는 ‘일하는 시민을 위한 조례’를 준비 중이다. 이 모두 일하는 시민 누구나 일터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들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회원국에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플랫폼노동의 노동시장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어느 순간 산업·업종·직종별로 프리랜서 생계가 형성된 곳이 많다. 이제는 프리랜서를 위한 공정계약, 공정노동, 공정보수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야 한다. 표준단가나 고용보험 적용, 조기 계약 종료 시 소득 보전과 교육 프로그램은 그 첫출발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다르게 사고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프리랜서가 겪고 있는 차별의 퍼즐을 바꿀 새로운 규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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