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어제는 내가 고객의 질책을 받고 뺨까지 맞았는데, 오늘은 또 바로 앞 매장 직원이 고객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죄송합니다, 고객님”을 되풀이한다. 고객의 화가 풀릴 때까지 주위에서 아무런 도움을 줄 처지도 아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더 큰 일이 벌어질 테니까. 나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점장 나오라고 할 땐, 이미 시말서를 써야 할 상황이다. 사태가 심각해지거나 찍히면 다음 매장 개편 때 매장이 빠지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 바로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일터 현실이다.
재벌이 운영하는 유통기업일수록 인권침해는 더 심각하다. 대표적으로 롯데와 이마트는 ‘서비스라인’과 ‘스마일 존’을 설치해놓고 노동자들에게 로봇처럼 인사를 시킨다. 동화면세점은 “직원의 불친절한 행동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보상해드리지는 못하니 5만원의 상품권을 지급하겠다”는 고객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매출 달성 압박부터 반복되는 미스터리 쇼퍼(암행감찰)까지 수많은 요구에 감정노동자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 유통업 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 폭언·폭행이나 성희롱을 경험한 비율은 10명 가운데 4명이나 됨에도 해소 프로그램을 적용받은 노동자는 거의 없다. 이런 현실을 참고 일하다 보니 고도우울증(26.4%) 비율이 일반 시민에 비해 두배는 높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유통기업은 1년에 4차례 이상 친절교육을 시킨다. 이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집중영업시간’에는 휴게실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제품을 팔아야 할 시간이니 쉬지 말고 일하라는 것이다. 그나마 한두개 마련해놓은 휴게실은 비좁고 불편해 제대로 쉴 수도 없다. 그래서 서비스 노동자들은 계단이나 창고에 상자를 깔아놓고 잠시 쪼그리고 앉아 눈을 붙인다. 최근 새로 면세점 특허권을 획득한 신라면세점의 경우 영업을 시작한 지 한달가량 되었어도 직원 휴게실조차 없다.
과연 우리는 누구 편인가. 주 1회였던 대형유통업체 정기휴점은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월 1~2회로 축소되었고, 그것도 일요일이 아닌 주중으로 옮겨지고 있다. 설과 추석에도 ‘정상영업’이라는 팻말을 내거니 1년 365일 영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심지어 ‘두타’는 “야근하는 당신을 위해 새벽까지 연장 영업한다”는 광고 문구까지 내걸기도 했다. 2015년 대법원은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며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규제가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축소, 소비자 권리를 내세우며 헌법소원까지 고려했던 재벌 유통기업의 이윤추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법률이나 조례로 일요일 영업을 못 하게 하고 있다. 서비스 노동자들도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고 쉴 권리가 있다는 취지가 반영된 결과다.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스웨덴 ‘이케아’ 매장에 가보니 휴게공간은 국내 유통 매장보다 10배는 넓고 인간중심적이었다. 우리나라 대형유통업 휴게실 수용률은 100명당 1명도 안 된다. 건물을 지어놓고 보니 직원 휴게공간이 필요해서 대충 지하 한귀퉁이에 창고처럼 휴게실을 만든 기업. 전세계 어느 곳, 어떤 매장을 가도 크기, 디자인 등 휴게실을 동일하게 설계한 기업. 어떻게 봐야 할까. 노동자들의 삶과 쉴 권리조차 빼앗은 재벌 유통기업의 항변을 듣고 싶다.
* 이 글은 2016년 1월 21일자 한겨레 신문 '왜냐면'에 기고한 필자의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