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성화고 10년, 차별 아닌 평등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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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특성화고 10년, 차별 아닌 평등권을

김종진 0 3,444 2018.09.02 11:58
* 이 글은 경향신문 매월 1회 연재(세상읽기) 칼럼 원고(2018.8.31)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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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특성화고 10년, 차별 아닌 평등권 보장을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기존 상고·공고라는 명칭이 ‘특성화고’로 변경된 지 10년이다. 구시대적인 어감을 걷어내고 취업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는 전체의 4분의 1로 600여개나 된다. 전국에 3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졸업 후 직장생활은 인권침해와 차별만이 존재한다. 2016년 5월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곳, 2017년 1월 전주 대기업 콜센터 전화상담을 받던 곳, 2017년 11월 제주도 한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작업을 하던 곳. 바로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던 곳들이다.

모두 10대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조기취업의 굴레에서 일하다 산재 사고가 난 곳이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학생들은 안전교육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터에 내몰렸다. 결국 교육부는 올해 안전한 현장실습 제공이 가능한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 정보를 학교에 제공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교육 문제에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현장실습만이 아니다. 바로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들이 일터에서 비인권적 대우나 차별·침해를 더 많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실태 토론회를 개최했다. “넌 커피색 스타킹보다는 검은색 스타킹이 잘 어울려” “난 여자를 볼 때 허벅지랑 엉덩이를 제일 먼저 봐”와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연장근로수당이나 최저임금 미지급 등 임금체불이 37%나 되었다. 또한 “경력조차 없는 특성화고 졸업생” “너희 특성화고 애들 뽑기 싫다” 같은 발언에서는 차별의 심각성(23%)도 확인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평등권의 침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성화고 현장실습 공간이나 졸업생의 노동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교육청 취업진로부서는 노동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지자체는 학교 내 교육 문제에는 권한이 없다. 노동청은 청소년 문제는 학교의 몫으로 생각하는 눈치다.
오래된 습관은 반복된다. 그건 개인과 조직은 물론 사회도 비슷한 것 같다. 그나마 개인과 조직은 변화와 혁신에 민감하기에 시대의 흐름에 조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는 청소년과 청년노동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노동청은 ‘특성화고 현장실습 안전노동인권협약’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노동인권보호와 취업지원 그리고 보호대책이다. 공공행정조직 간 상호협력을 도출한 첫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가운 것은 ‘노동의 가치 인식과 노동인권 존중 사회’가 조례에 명시된 것이다. 모든 학교에서 노동교육이 의무화되기 위한 지역 차원의 첫 시작이다. 또한 당사자인 특성화고 노동조합과 시·교육청이 정례적인 논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실습과 졸업 후 직장의 첫 일터의 안전과 교육훈련 여부 등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은 청소년 노동 규정을 법에 명시했다. 우리는 연소근로자 문제가 헌법 32조 5항에 적시되어 있음에도 무시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청소년과 청년을 포괄하는 노동보호법 제정이 논의될 시점이다. 매년 수만명의 특성화고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하지만, 일부 산재 사고만 언론에 드러난 것이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초기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과 성희롱 등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왜 산재 사고를 유독 많이 겪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자본의 이윤창출 밑바탕에 끊임없이 배출되는 공급처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노동의 가치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차별 없는 일터는 그 시작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30205103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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