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등 노동시장 근본적 변화 … 노동계 "제살 도려내야 판 흔들 수 있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1일 법안심사에서 '노동4법'을 제외하면서 박근혜정권의 노동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하지만 노동개혁의 공은 오히려 노동계에게 넘어왔다. 변화된 산업환경과 노동시장에 맞춰 노동조합 스스로를 바꾸지 못하면 여전히 개혁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여전히 높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평균임금 상위 20%에 속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먼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며서 "양대노총이 제 살을 도려내는 양보를 해야 판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금격차 5배, 급격하게 벌어져 = 전문가들은 우리사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벌 대기업, 공공기관, 정부기관 등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중소하청·알바노동자와 영세상인 사이의 임금, 고용, 노동조건의 격차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평균임금 실태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연봉은 9700만원인데 사내하청은 5000만원이었다. 1차 협력사의 정규직은 4700만원, 비정규직은 3000만원이었다. 2차 협력사의 경우 정규직은 2800만원, 비정규직은 2200만원에 불과했다. 원청 정규직과 2차 하청 비정규직의 격차가 무려 5배나 벌어졌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KLSI) 선임연구위원이 6월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수준 하위 10%의 월 임금총액은 2013년 3월 이후로 80만원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반면 상위 10%의 월 임금총액은 같은 기간 40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증가했다. 또한 상위 10%와 하위 10% 임금격차는 2014년 5배에서 지난해 5.25배, 올해 5.63배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 사회연대위원장은 "격차가 10배까지 벌어져 노동자끼리 전쟁을 벌이는 암담한 상황을 맞을 지도 모른다"면서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률 중 1%만이라도 내놔 비정규직·하청·알바 노동자와 청년실업자, 영세상인을 위한 사회적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재벌에게 곳간을 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정부에게 실효성 있는 정책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준영 한국노총 대변인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과 법인세 정상화를 넘어 재벌 대기업의 실효세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면서도 "직장 노동자들이 내는 근로소득세의 고소득자 과표구간을 신설해 늘어난 재원으로 사회적 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임금체계 개편에도 적극 나서야 = 4차 산업혁명 등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도 노동조합을 먼저 변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아시아에서 100만명 노동자를 고용해 온 아디다스가 내년 미국 아틀란타 공장에 로봇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 공장은 연간 1800만 켤레의 신발을 만드는데 노동자는 160명밖에 필요 없다. 한국산업 현장에도 로봇이 투입될 날이 머지않았다.
노동전문가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만들어진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 개편에 노조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현 임금체계로는 변화된 산업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가속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아래를 끌어 올리지 않고 위만 줄이겠다고 하다가 저항을 받았다"며 "양대노총은 아래를 끌어올리고 위를 직무에 따른 차등을 주는 공정한 방향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임금인상 액수 올리기는 지속적이지도 않고 사회적 지탄만 받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도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노조활동에 반대만 위한 반대, 기득권 유지에만 골몰한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며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대안을 마련해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