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저성과자 해고 지침,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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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저성과자 해고 지침,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구도희 3,238 2016.02.01 03:19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klsiyskim@hanmail.net)
 
 
가뜩이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데 
OECD 회원국 중 근속년수 1년 미만의 단기근속자는 터키(34.9%)가 가장 많고, 한국(31.9%)과 칠레(31.9%)가 다음으로 많다. 이들 나라에선 매년 노동자 세 명 중 한 명꼴로 직장을 옮긴다. 근속년수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는 칠레(19.5%)가 가장 적고 한국(20.1%)이 다음으로 적다. 한국은 근속년수가 짧은 초단기 근속의 나라로,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나라다.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 했다며 국내 정치인들이 본받자는 독일은 단기근속자 13.8% 장기근속자 41.1%로, 고용이 매우 안정된 나라다.
노동부 고용보험통계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2013년 한 해 동안 고용보험 가입자(1,157만명) 중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 절반(562만명)이다. 비자발적 이직자는 222만명(39.5%)으로, 회사 경영사정 112만명(20.0%), 계약기간 만료 98만명(17.4%), 정년퇴직 3만명(0.6%) 순이다. 대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직자 114만명 중 비자발적 이직자가 44만명(35.4%)으로, 계약기간 만료 28만명(24.1%), 회사 경영사정 13만명(10.9%), 정년퇴직 1만명(1.2%) 순이다. 대기업일수록 기간제 등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여야 후보 모두, 상시·지속적 일자리 정규직 직접고용과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공약했다.
 
성과가 낮으면 해고해도 된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 한다”라 하고 있다. 대법원은 해고가 정당한 이유가 있으려면, ①노동자에게 책임이 있어야 하고(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으면 예외), ②그 정도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야 하며, ③그 정도는 “당해 사용자의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하여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해야 한다”라 하고 있다. 실적부진이나 업무능력 부족만으로 해고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취지이고, 법원도 마찬가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22일 노동부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전격 발표했다. 성과가 낮은 사람은 해고해도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적 등에 의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업무는 극소수고, 대부분의 평가지표가 상급자에 의한 주관적 평가여서, 평가기준과 평가결과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다투는 것이 실무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로기준법의 핵심인 해고제한 조항과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제도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가 일개 행정지침으로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것으로,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물론 법원에서는 노동부 지침과 달리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침을 강행하는 것은 ‘성과가 나쁘면 해고해도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해고자가 근로감독관을 찾아 가면 ‘지침은 이러하니, 억울하면 법원 가라’ 할 것이고, ‘법원 가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데 버틸 수 있겠느냐’ 할 것이다. 그만큼 현장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은 커지고, 부당해고는 늘고 노사갈등은 커질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전에도 정리해고는 대법원 판례로 가능했다. 하지만 ‘불가피한 사유가 없으면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가 법제화되자, 요건만 갖추면 얼마든지 정리해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었다. 저성과자 해고 지침도 마찬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노동정책 컨트롤 타워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혁은 ①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②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관리전문직, 뿌리산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③주52시간 상한제를 주60시간 상한제로 연장하고, ④저성과자 해고제도를 도입하고, ⑤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건 노동시장 개혁(改革)이 아니다.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조건을 쉽게 깎는’ 노동시장 개악(改惡)이며,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이란 슬로건으로 집약되는 또 하나의 ‘재벌 퍼주기’일 뿐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나 청년 일자리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해답은 “쉬운 해고 노동개혁안, 전경련 민원사항이었다”는 미디어오늘(2015년 9월 15일)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7월 전경련은 ‘2014 규제개혁 종합건의’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고, 11월에는 전경련 등 8개 경영자단체가 ‘규제기요틴과제’ 153건을 정부에 제출했다. 12월 28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열린 ‘규제기요틴 민관합동회의’에서는 153건 가운데 수용 114건, 수용곤란 16건이었고, 문제의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은 ‘추가논의 필요’ 사항으로 분류되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추진키로 결정됐다. 
‘추가논의 필요사항’에 포함된 소관부처 노동부 관련 항목들을 살펴보면 ①기간제 사용기간 규제 완화, ②파견 업종 및 기간 규제 완화, ③근로시간 단축 규제 유연화, ④업무성과 부진자에 대한 해고 요건 확대, ⑤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⑥통상임금 부담 완화 등으로 그 주요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다. 
믿기 힘든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기간제법을 장기과제로 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주무부처인 노동부나 집권 여당도 사전에 몰랐다고 한다. 저성과자 해고지침을 발표한 22일 노동부 장관은 울산을 방문해 양대 지침 의견 수렴을 위한 노사 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일 갑자기 울산 간담회를 취소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양대 지침 발표를 강행했다. 이는 주요 노동정책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일정마저 주무부처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결정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도대체 누가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 칼럼은 지난 1월 26일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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