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실장(bulnavi@gmail.com)
2016년 적용 최저임금이 시급 6,030원·월급 1,260,270원(월 209시간 기준, 유급주휴수당 포함)으로 결정됐다. 대폭 인상을 요구했던 노동자들의 호소는 짓밟혔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한 소득양극화 완화와 서민경제 활성화라는 국민적 기대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최경환 부총리를 포함한 정부 관계 장관들이 언급한 ‘빠른 속도의 인상’은 결국 8.1%, 시급 450원 인상이라는 초라한 결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성 위원장은 이번 8.1% 인상의 근거로 △ 2015년 6월 기준 협약임금 인상률 4.5%와 2015년 임금인상 전망치 4.3%의 중간값인 4.4%, △ 소득분배 개선분 2.1%를 반영하고, 여기에 △ 협상증가분 1.6%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몇 가지 지표를 짜 맞춘 ‘끼어 맞추기’식의 옹색한 변명이다. 과연 최저임금위원회의 설명을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위원회는 8.1% 인상, 시급 450원 인상이 위와 같은 결정기준들을 어떻게 고려하였는지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의 설명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결여했다.
최저임금 시간당 6천30원·월 126만270원은 2014년 기준 미혼단신생계비(1,553,390원)와 비교해도, 81% 수준밖에 안 된다. 만약 상당수 최저임금노동자들이 본인의 월급만으로 2∼4인의 가족 생계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현재 최저임금은 저임금노동자들의 ‘생계’ 보장이 아니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은 2014년 기준 2인 가구생계비 대비 45%, 3인 가구대비 37% 수준에 불과하다.
소득분배개선분으로 반영되었다는 2.1%도 근거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2014년(2.5%), 2013년(2.7%)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반영률이다. 전년도에 비해 소득분배개선분을 하향조정하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더구나 소득분배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득분배개선분이 전년도에 비해 하향조정된 점도 납득하기 힘들다. 상위 10%내 노동자들과 하위 10%내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가 2007년 8.2배에서 2013년 10.2배로 증가했다.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실질GDP/취업자)과 실질임금 증가율 간의 격차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되고 있다. 2007∼2014년 사이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2.2%인 반면, 실질임금 인상률은 4.3%에 불과해, 양자 간 격차가 7.9%포인트에 달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소득분배개선분이 축소되기보다는 상향되어야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최저임금을 임금인상전망치 등 몇몇 지표만을 가지고 숫자놀음 하듯이 결정해서는 안 된다. 2015년 적용 최저임금을 정할 때도, 협약임금 인상률 4.6%에 소득분배개선분 2.5%를 반영하여 7.1%로 정한 바 있다. 올해도 비슷한 방식으로 8.1%로 정해졌다. 만약 이런 식의 결정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최저임금인상률은 잘해야 7∼8%대이거나 하회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결국 전 사회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최저임금 대폭인상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법이 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제도의 근본 취지와 목적, 특히 ‘근로자의 생활안정’이라는 목적에 대한 사회적 환기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근로자 생계비’를 최저임금의 주요 결정기준으로 복원시켜야 한다. 또한 전 세계적인 저성장·구조불황 국면에서 최저임금제도가 갖는 사회·경제적 효과에 대한 진전된 논의도 필요하다. OECD, IMF, ILO 등 대다수 국제기구들이 소득불평등 개선이 위기에 빠진 세계 경제를 살리는 유력한 방안임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소득불평등개선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 중의 하나이다. 2016년 적용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고 최저임금투쟁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 투쟁의 정점에는 “최저임금제도의 근본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