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박근혜 정부의 하락, 무기력한 야권/유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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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박근혜 정부의 하락, 무기력한 야권/유창선

구도희 5,382 2014.12.29 02:45
 
- 유창선 정치평론가
 
돌아보면 지난 2014년은 한국정치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은 역사적 퇴보의 한 해였다.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받던 진보정당이 강제적으로 해산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가 하면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받는 현실이 전개되었다. 정권은 소통을 통해 국민의 동의 위에서 국정을 운영해나가는 정치적 노력을 포기한 채 검찰과 경찰의 힘에만 의존하며 권력을 유지하려는 21세기판 ‘경찰국가’(police state)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민주주의와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대통령의 유아(唯我)적 리더십은 정치의 갈등을 확대재생산 해내는 근원이 되었다. 정치적 리더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갈등 사안들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과정에서 갈등은 증폭되었고, 대통령은 종종 대결을 부추기며 새로운 갈등을 유발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적어도 2014년 한 해에 대통령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지도자가 아니라 특정 이념의 편에 서서 분열과 대결을 부추기는 응원자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국가의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근본적 한계에 봉착한 박근혜 리더십
그러면 2015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새해 한국정치는 박근혜 대통령의 손에 열쇠가 쥐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변하면 정치도 변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질 것 없는, 아니 더 나빠지게 되어있는 현실에 우리는 서 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변곡점을 맞았다. 2014년은 집권 2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에게 있어서 뼈아픈 한 해였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는 박 대통령의 ‘생얼’을 세상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온 국민이 눈물 흘리는 아픔 속에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대통령의 모습은 공감능력의 부재라는 진단을 낳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이내 잊어버리고 유체이탈의 화법을 사용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성찰능력의 부재라는 진단으로 이어졌다. 공감 능력과 성찰능력의 부재라는 박 대통령의 치명적 문제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새해 정국의 앞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제까지 지켜보아 왔듯이, 박 대통령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기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세상과 떨어져 살았던 경험에서 형성된 박 대통령 특유의 캐릭터는 누가 뭐라 해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스타일에 그 자신을 가두어두고 있다. 이는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부분이다. 한 나라의 정치가 구조가 아닌 어느 개인의 인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새해 정치에 대한 기본 전망은 대단히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불통을 청산하여 소통에 나서고, 배제와 분열이 아닌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선회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고 격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민심의 점진적 이반 속에서 지지율을 잃어가는 집권자가 검찰과 경찰을 앞세운 힘의 통치에 의존했을 때의 불행한 상황들이다. 그 과정은 많은 피해자들을 낳을 것이고 결국에는 집권자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마도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의미하고, 박 대통령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상황이 될 것이다. 비선실세 논란을 거치면서 보수언론과 보수층에서까지도 이반 현상이 발견되는 것은 그같은 위험의 징조로 읽혀진다. 박 대통령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변화의 계기가 보이지 않는 새정치민주연합
그러나 문제는 야당이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콘크리트 지지층’에 이탈과 균열이 생겨난다면 이는 집권세력의 국정주도권 상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역대 정부들에서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식물 대통령’ 소리를 듣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정국의 주도권이 야권으로 넘어옴을 의미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묘하게 다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기대가 식어버리고 국정의 무능함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그래서 ‘조중동’조차도 ‘불통’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야당은 정국을 주도하지 못한 채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은 김한길-안철수 체제의 실패, 박영선 체제의 실패에 이어 존재감 없는 문희상 체제를 경험하고 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이라는 청와대의 자중지란이 발생해도, 진보정당에 대한 강제해산이라는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이 초래되어도, 야당은 이들 문제를 제대로 짚으며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야당의 무기력이 새해에도 크게 달라질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2월 전당대회에서는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전 대표대행의 선출이 유력시 된다. 그러나 당내 최대 계파의 당권 재탈환이 제1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대선 전후를 가리지 않고 문재인 의원이 보여준 정치 행보에서는 과감한 자기변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흐름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당권을 누가 잡든 간에, 계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싸우는 정당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러한 야당에 대해 국민이 지지를 보내줄 이유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장 다른 대안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때 잘나갔던 안철수 의원은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워낙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상처를 입었기에 재기를 모색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대선의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는 최소한 2016년 총선이 끝난 이후에야 향후 행보의 윤곽을 잡을 수 있는 처지이다. 결국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의 조건에서 앞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밥이 되기보다는 죽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현실이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 진행되고 민심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2016년 총선에 대한 야권의 전망이 밝기 어려운 이유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진보정치의 재편
그리고 새해에는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이후 진보정치세력의 재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진보정치세력은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외부적 충격에 의해 재편논의를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모든 진보정당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며, 그 부정적 여파는 특정 정당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진보정치세력의 재편에 대한 합의점을 진보세력 내에서 도출하기까지는 여러 어려움이 예상된다. 환경 자체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선 진보정당의 위축이 예상되는 환경에서 진보대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통합진보당 세력과 함께 하는데 대해 다른 정치세력이 큰 거부감이나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진보대통합 논의가 종북 논란에 휘말려버리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대통합 논의는 일단은 통합진보당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의 진보통합 논의로 전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갈래는 복잡하다. 우선 진보정당의 중심이 된 정의당의 선택이 어떻게 될지가 유동적이다. 정의당의 경우 대체로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 모델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진보통합의 구심이 되기에는 그 기반이 취약한 상태이다. 진보적 대중정당 추진에 나선 국민모임의 경우 정동영 전 의원의 합류까지 거론되는 등 세 규합이 진행되고 있지만 워낙 다양한 구성을 놓고 보았을 때 정치적 합의의 수준이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불확실해 보인다. 중심이 안정적으로 세워지지 않을 경우 진보정당의 재편 모색은 여러 가지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2015년 정국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만, 야권의 열악한 내부 환경으로 인해 막상 야권으로 정국주도권이 넘어오기도 어려운 교착국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해는 2016년 총선을 앞둔 해라는 점에서 이 한 해 동안 야권 정치세력은 성찰적 노력을 통해 자기 전열을 정비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상대가 설혹 무너진다 한들, 그것을 나의 성과로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이 지금 야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이 글은『노동사회』2015년 1.2월호(통권 180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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