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경제민주화의 실종과 경기부양의 한계/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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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경제민주화의 실종과 경기부양의 한계/유종일

구도희 5,309 2014.10.27 09:39
 
-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취임 100일을 계기로 언론에는 수많은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평가가 대부분 매우 박하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종인 박사의 일침이 뼈아프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말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딱 일본처럼 하고 있다.” 최경환표 경기부양정책 초기에 형성되었던 시장의 기대감도 이젠 시들해지고 우려의 목소리만 커져가는 것 같다.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적시에 실행하는 수요증대정책은 필요성과 효과성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하지만 수요증대정책이 불건전한 부채의 축적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소득의 흐름을 창출해내야 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소득 증대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내수 활성화만이 진정한 내수 활성화다. 대기업이 천문학적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부와 소득의 편중이 심화되는 상황을 방치하고 내수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도모할 수는 있겠으나 적자재정은 국가부채를 낳고 저금리정책은 민간부채를 증대시킨다. 비상시기에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특히 부동산 규제완화와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를 띄우겠다는 정책은 약효보다 부작용이 더 큰 잘못된 처방이 될 것이다.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빚을 내어 집을 사라”고 부추기며 투기수요를 조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일시적으로 투기 붐을 일으켜 약간의 경기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인구증가가 정체하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부동산 경기는 다시 올 리 만무하다. 오히려 가계부채를 더욱 증가시켜 거시경제적 위험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현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지닌 가장 근본적인 오류는 경기부양과 경제민주화를 상충관계로 설정한 것이다. 대기업들이 불편해한다고 경제민주화를 정권 초에 조금 하다말고 적당히 끝내버린 것이 잘못이다. 경제민주화가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는 재벌 대기업들의 비위를 맞추어 경기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은 착각이다. 지금도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투자율을 자랑한다. 특히 대기업들의 투자 비중은 갈수록 증가해 왔다. 문제는 중소기업 투자의 부진이고, 재벌 중심 투자의 비효율성이다. 재벌 대기업을 위해서 이명박 정부 이상으로 잘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경제성장이 매우 부진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작년에 정부가 경제민주화에서 경제 활성화로의 이행을 선언했을 때 필자는 “경제민주화 없이 진정한 경제 활성화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의 역주행은 갈수록 더 해서 금년에는 경제민주화와는 아예 정반대 방향인 규제혁파를 들고 나왔다.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저조한 까닭은 실질임금의 정체와 소득 불평등 확대에 따른 내수 부진인데, 이참에 소원수리 하고 싶은 재계의 속삭임에 넘어가 규제가 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예언한대로 규제완화가 그리 쉽사리 진전되지 않고 있다. 애초에 쓸데없는 규제라는 게 생각처럼 많지 않으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규제의 합리화가 필요한 부분은 많이 있다. 하지만 함부로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외환위기와 카드사태도 맞았고, 부동산 투기라는 망국병에 걸렸으며, 세월호 사건을 비롯 각종 안전사고와 환경 피해도 일어났다. 경제민주화를 잘하면 성장이 따라온다. 하지만 규제 완화를 잘못하면 성장이 아니라 위기가 온다.
 
경제민주화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 살리기의 초석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논리는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내수부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득을 아래로 내려 보내는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노동조합의 활성화다. 최근 미국의 연구를 보면 레이건 대통령의 반노조 정책 이래 노동조합이 급격하게 쇠퇴한 것이 소득불평등의 심화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얼마 전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세계 139개국의 노동권 현황을 조사해 세계노동권리지수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한국은 중국, 인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이집트 등과 함께 최하위 5등급으로 분류되었다. 미국은 4등급이었다. 부끄러운 일일 뿐더러 소득불평등 심화와 내수부진의 원인이다. 거의 모든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만들어버리는 노동법부터 고쳐야 하고, 산별교섭을 활성화하도록 해서 기업 간 임금격차를 줄여나가도록 해야 한다. 노동권의 보장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초석이다.
 
재분배정책도 중요하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일제히 지나친 소득의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위협하는 핵심요인이라는 연구결과와 정책입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 금년 초에 IMF는 재분배 정책이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으며, 따라서 재분배를 통하여 분배를 개선하면 오히려 성장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OECD 국가 중 재분배를 가장 조금 하는 나라인 한국은 당장 재분배 확대에 나서야 한다. 이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내수 활성화와 성장촉진을 위한 정책이다. 
 
경제민주화가 진정한 성장정책이라는 두 번째 논리는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갈수록 약화되어가는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착화된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여 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창출해야 한다. 한국의 거대기업 명단을 보면 새롭게 커 나오는 혁신적인 기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존재도 없던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쑥쑥 솟아나오는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싹수가 있는 혁신적 중소기업들은 재벌대기업들이 다 잡아먹기 때문이다. 재벌대기업들이 주도하는 혁신시스템은 과거 추격형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시스템으로서 창조적인 기술개발이 필요한 지금에 와서는 투자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이제 재벌의 불평이 늘더라도 중견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 없이 경기부양에만 매달리는 것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를 제1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의 인식을 되찾기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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