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태광 티브로드 사태를 통해 본 '펌핑업 효과'/강수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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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태광 티브로드 사태를 통해 본 '펌핑업 효과'/강수돌

구도희 7,183 2014.07.17 09:46

 

- 강수돌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ksd@korea.ac.kr)

태광산업·흥국생명·흥국증권을 비롯한 태광그룹 계열사 총 34곳이 2013년에 올린 영업이익은 2,362억원이다. 2012년의 3,422억원에 비해 약 31%(1,060억원) 감소했지만 여전히 큰 규모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태광산업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가 실적 부진임에도 해마다 영업이익 가운데 약 80%를 총수 측이 출자한 비상장사의 매출을 올려주는 데 써왔다. 구체적으로, 이호진 전 회장을 비롯한 총수 친인척이 20% 이상 지분을 가진 비상장사 11개사가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 즉 내부거래로 인한 매출이 2012년엔 2,727억원, 2013년엔 1,870억원이었다. 그리하여 이 전 회장 쪽 비상장사가 내부거래로 올린 매출이 모든 계열사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2년 79.69%, 2013년 79.17%로 2년째 80% 가까이 유지됐다. 태광그룹 계열사가 해마다 수익에서 일정한 비율만큼 이 전 회장 측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 셈이다. 일례로, 정보기술(IT) 및 부동산업체인 ‘티시스’는 2013년 태광산업, 흥국생명, 티브로드홀딩스를 비롯한 계열사로부터 798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티시스는 이 전 회장(51.02%) 및 배우자 신유나(2.18%), 2세 현준(44.62%)ㆍ현나(2.18%) 등 한 가족에 의해 지분이 100% 소유되어 있다. 이 회사는 흥국생명(227억원), 흥국화재(192억원), 태광산업(46억원) 등으로부터 내부거래를 통해 손쉽게 매출을 올려 막대한 이윤을 거두었다.

한편 총수 측이 이처럼 떼돈을 버는 데 비해 태광그룹 계열 회사의 노동자들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일을 해야 했다. 일례로 태광그룹 계열의 유선방송사업자 ‘티브로드홀딩스’에 소속된 하청업체의 노조(2014년 3월에 결성된 ‘희망연대노조’의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 지부)는 노동자들이 적절한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작업에 내몰리면서 턱없이 낮은 임금,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노조 측은 2013년 9월에도 중앙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쟁의조정신청서에서 재계약 기간을 현행 1년에서 2년 이상으로 늘려 고용을 안정시켜줄 것, 하청업체 노사가 합의한 통상급에 대한 상생지원금을 지급할 것, 무리한 영업실적 요구를 금지할 것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티브로드 하도급업체 사용자들은 2014년 들어 2013년보다 후퇴한 임금 및 단체교섭 안을 제시했고, 교섭이 결렬되자 지난 6월 동시다발적 직장폐쇄까지 단행했다. 이에 노조와 노동자 400여 명은 7월 1일부터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태광그룹 본사 흥국생명 빌딩 앞에서 노숙 투쟁 중이다. 이들은 수당 인상, 가입자 서비스 개선, 하도급 구조개선, 노조 탄압 중지 등을 요구한다.
 
그런데 티브로드 협력사협의회(하도급업체 사용자조직)는 노숙농성 2일차에 몇 가지 개악적 제안을 했다. 그것은 영업수당을 현행 80%에서 40%로 내릴 것, 노조 활동과 관련한 근로시간면제를 현행 1만5천 시간에서 1만 시간으로 줄일 것, 노동조합 사무실 지원도 3개에서 1개로 줄일 것, 그리고 팀장급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음, 근로기준법 이상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희망연대노조는 노사 양측의 교섭 안을 비교한 뒤 “협력업체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지분을 노동자 임금에서 떼겠다는 것”이라 비판하며, “이것이 불법적인 중간착취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근로기준법 운운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다단계 하도급 또는 위장도급으로 인한 노사관계의 왜곡 문제는 티브로드만이 아니라, 최근 씨앤앰 비정규직 74명 집단해고 등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방송통신업계 전반, 나아가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투쟁(41일간의 노숙농성 끝에 ‘기준협약’ 체결에 합의),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유성기업, 공항항만 비정규직, 서울지역 시설관리 비정규직 노동자 등 한국 기업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희망연대노조는 “단체협약은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정한 범주를 넘어 피지배적 지위에 있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교섭 및 합법적 쟁의행위를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목적으로 체결하는 것”이라며 2013년 노동부 수시근로감독 결과, 임금 미지급 등이 대거 발견된 협력사들이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꼬집었다.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협력사협의회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사가 합의한 전임자 타임오프 9천 시간에 수렴하는 정도로 낮춘 셈이다. 노조는 결국, 원청 티브로드가 나서야 사태가 종결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티브로드는 지난 4월 원하청 간 위수탁 계약을 개정하면서 계약해지 항목 등을 원청에 유리하게 ‘개악’했다. 또 티브로드는 다른 하도급업체(또는 개인사업자)인 유통점을 기존 지역센터의 4~5배로 늘려 업무 공백을 메워 왔다. 노조와 업계에서는 하청업체의 동시다발 직장폐쇄도 티브로드가 배후에서 전략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 추측한다.
 
이 모든 사실들은 정치경제 기득권층과 그를 대변하는 학자나 언론이 말하는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가 거짓말임을 웅변한다. 트리클다운 효과란 대기업으로 상징되는 윗 그릇의 물이 차서 넘치면 이것이 자연스레 흘러 아래쪽의 지역사회, 중소기업, 노동자, 소비자 등도 고루 혜택을 본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위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현실의 실상은 정 반대다. 즉, 재벌급 대기업이나 총수들이 그 거대한 탐욕의 그릇을 채우기 위해 저 아래의 지역사회, 생태계,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소비자 등의 피와 땀과 눈물을 다단계 구조를 통해 체계적으로 뽑아가고 있다. 나는 이를 <한국 경제의 배신>이란 책에서 ‘펌핑업 효과(pumping-up effect)’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러한 펌핑업 효과로 말미암아 ‘국민행복’이라는 선전 구호와는 달리 사회 양극화와 생존경쟁이 격화하고 ‘빈익빈 부익부’ 사태가 개선될 줄 모른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갈수록 강자에 빌붙어 더 많은 떡고물을 얻고자 ‘강자 동일시’라는 심리 상태를 내면화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한다. 정리해고의 위협에 핍박받고 비정규직의 서러움에 조용히 눈물 흘리던 노동자들조차, 또 자본주의의 해악에 피를 토하며 성토하던 지식인들조차 그 대부분이 자녀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이런 배경 때문이다. 또 고교 서열화, 대학 서열화, 직장 서열화 문제가 수많은 이들의 선구적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배경과 연관된다.
아마도 이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직장, 노조, 정부,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것은 ‘나부터’ 시작해서 ‘더불어’ 공감하는 가운데 이런 문제의식과 대안적 미래상을 공유하는 ‘소통과 연대의 정치’가 없이는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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