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직장 조직문화 조사 결과에 대하여
작성: 오정숙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직장갑질119>가 지난 10월 12일 「2023 조직진단지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9월 4일부터 11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휴식·평가·위계·소통, 조직에 대한 만족도,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사후 조치 등 7개 영역 총 25개 설문 문항을 5점 척도로 조사한 것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조직문화 만족도가 낮고, 조직 문제가 심각함을 뜻한다.
조사 결과 올해 조직 진단 점수는 60.7점으로 지난해 68.7점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지표 25개 중 전년보다 오른 지표는 한 개도 없으며, 8개 항목은 지난해보다 10점 이상 크게 점수가 떨어졌다. 가장 큰 폭으로 점수가 하락한 지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신고자의 신원이 노출될 것 같다’가 51.7점으로 지난해 62.2점보다 12.5점 하락했다.
<직장갑질119>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 기대 낮아져
하위점수를 받은 5개 문항 중 4개가 직장 내 괴롭힘 관련된 것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이후 복귀해서 정상적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66.5점 → 54.6점)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인정됐을 때 행위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66.3점 → 54.7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해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68.1점 → 55.7점)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징계, 따돌림 등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66.5점 → 55.7점) 등 문항에 대한 점수도 지난해보다 10점 이상 떨어졌다. 직장인 상당수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지난해보다 신고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것이다.
퇴근, 휴가, 병가와 같은 휴식 지표는 직장 규모가 작고 임금이 낮을수록 점수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으며, 5인 미만 기업의 경우 ‘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가기 힘들다(53.8점)’, ‘아파도 마음 편하게 쉬기 어렵다(53점)’ 등의 지표 점수는 300인 이상보다 10점가량 낮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에게 신체적 질환, 심신적 증상,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고통을 가져다주고, 이로 인한 노동자의 노동 의욕 감소 및 조직 분위기 저해로 이어져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3년 실태조사에서 괴롭힘 1건으로 기업에 발생하는 손실 비용은 최소 1,550만 원 수준(중견기업 기준)으로 추정됐고, 2016년 산업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인건비를 포함한 손실 비용이 4조 7,800억 원으로 추정됐다.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막대한 비용 부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일터 폭력 규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은 전 세계적인 사회운동과 언론 보도를 통해 최근 몇 년간 크게 확산했다. 해외에서는 괴롭힘에 대한 연구가 일찍부터 시작됐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율이 차별금지, 산업안전, 인적자원 측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2022년 5월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세계 121개국의 15세 이상 12만 5,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세계 노동자의 22.8%가 직장에서 신체적, 정신적 괴롭힘을 한 가지 이상을 경험했다. 2014년 영국 고용평등 단체인 <Opportunity Now>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2% 이상이 직장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미국 <직장괴롭힘연구소>의 2010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35%가 직장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2019년 6월 21일 제108차 ILO 총회에서는 ILO 협약 제190호인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을 근절함에 관한 협약」과 ILO 권고 제206호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을 근절함에 관한 권고」를 채택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직장 괴롭힘 방지 제도를 시행한 스웨덴은 1993년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제정했다. 프랑스는 노동법전의 개별적 근로관계 편, 산업안전보건 편에 ‘직장 괴롭힘 관련 규정’이 포함됐다. 또 형법에 괴롭힘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가해자와 사업주 모두에게 부여할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직장 괴롭힘 방지법으로 구분되고 있다. 2011년부터 시행된 호주의 직장 괴롭힘 방지법은 ‘브로디 법’의 시행과 함께 한층 더 처벌이 강화됐다. 아울러 직장 괴롭힘을 범죄로 분류하고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10년이 선고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제76조의 2)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를 마련하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원칙과 사용자의 조사·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사용자가 신고자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면 처벌받도록 하고 있다. 2021년에는 사용자에게 객관적인 조사 의무와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보완이 추진됐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대응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직장갑질119>는 “이번 설문 결과는 ‘지난 1년 사이 모든 부문에서 조직문화가 오히려 후퇴했으며,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대응 수준이 낮아졌고,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신고 단계부터 사후 조치까지 모든 단계의 지표 점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라고 분석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체계가 실효성 있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사업장 규모, 고용형태, 업종 등에서 모든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안전과 존엄을 위하여 산업안전보건법에 직장 괴롭힘 관련 예방 활동을 예시하고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할 사업주의 예방 조치 의무 등을 개정하여 예방 의무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피해자 보호를 가장 우선하면서 사안을 객관적으로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피해자가 원래의 노동 환경에서 일하도록 원상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사용자는 신속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조사를 위하여 외부 기관에 조사 의뢰 등 공정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참여와 혁신> 2023년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