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전환기의 노동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
작성: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문재인 정부가 가고 윤석열 정부가 온다. 기존 정치 권력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권력의 등장이다. 양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노동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서로 크게 다르다. 노동운동 조직이 이러한 정치 권력 전환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전 시기를 평가하고 향후 시기를 전망하는 논의를 치열하게 전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운동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의 목표는 이러한 배경 인식 아래 다음 질문들에 답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시기 노동기본권은 실제로 신장했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는가? 또한, 이를 고려한다면 지금 윤석열 정부 아래 어떤 조직 전망과 활동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의견은 이렇다.
노동기본권의 가시적 신장
먼저, 문재인 정부 시기 노동기본권은 확실하게 신장했다.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노조 조합원 수와 조직률이 증가했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2016년 말과 2020년 말 기준 조합원은 196만 7천 명에서 280만 5천 명으로 약 83만 8천 명이 늘었고, 조직률은 10.3%에서 14.2%로 3.9%P가량 올랐다. 별로 큰 차이가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21세기에 노조 조직률이 몇 년 동안 오른 국가는 전 세계에 거의 없다. 아주 예외적인 사례다.
구성의 변화도 긍정적이다. 기업노조보다 초기업노조가 더 활성화됐다. 기업노조 조합원 비중과 초기업노조 조합원 비중이 2016년에는 대략 ‘45:55’였는데 2020년에는 ‘40:60’이 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기업노조는 소속 조합원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고, 초기업노조는 전체 노동자의 보편적 권익 향상을 목표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후자가 활성화되는 게 공익적 측면에서 낫다. 게다가 초기업노조는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처럼 법률적 사용자가 불명확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이들도 쉽게 가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발전을 가능케 했는가? 당연하게도 ‘주체의 실천’과 ‘제도의 변화’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해 상승효과를 낸 것일 터다. 예컨대 상당수 노조상급조직이 ‘전략 조직화’라는 이름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조력하고 지원하는 방침을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나아가 기존 조직의 경계를 허물고 가입 범위를 확대하거나 무노조 노동현장에 새로운 조직을 건설해 미조직 노동자의 가입을 유도했다. 정부는 ‘노동 존중’을 국정 프레임으로 내걸고 각종 정책 조치를 통해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행사해도 좋다는 시그널을 증폭했다. 이렇듯 노동운동의 전략적 실천 활성화와 이에 상응하는 제도권 내부의 변화, 이 둘의 결합이 노동기본권 활성화의 물결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 개정이 아니라, 해석 변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제도 변화 과정에 ‘법률 개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노동기본권과 직접 관련된 법률은 노동조합법이다. 이 법의 개정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진행됐지만, 실제적인 개정은 후반기인 2020년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요컨대 노동조합법 개정은 2017년부터 시작된 노동기본권 활성화의 물결이 만들어지는 데 이바지한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한 결과를 공고화하는 후속 조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노동기본권 활성화에 영향을 준 제도 변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기존 법률에 대한 ‘공적 해석’의 변화가 중요했다. 가장 가시적인 것은 대법원의 판단이 바뀐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대법원은 그 이전에 합법적이라 판단했던 삼성그룹과 창조컨설팅 등의 노조 반대 행동을 부당노동행위로 재해석해 단죄했고, 특수고용노동자가 놓인 상황을 새롭게 포착하는 기준을 제시해 이들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이 폭넓게 인정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러한 해석 변화의 흐름은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당국 내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다양한 노동조직의 합법성 획득 문턱이 낮아졌고 사용자의 탈법적 공격이 좀 더 꼼꼼하게 규제됐다. 이로써 노동운동이 추진한 조직화 전략의 효과가 더욱 커질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렇듯 서로 다른 해석들의 충돌과 변화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에 기초한 저항’이 만들어낸 균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 시기에 발생하여 몇 년에 걸쳐 진행됐으며,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회적 정당성을 되풀이해서 외친 투쟁들, 그 과정에서 매몰되거나 흩뿌려진 노동자와 시민, 운동가 등의 헌신이,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에 기존 경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끌어내고 ‘노동 존중’의 담론과 정책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투쟁을 바탕으로 발생한 상호작용이 친노동적 담론과 정책으로 발전하는 데는 노조상급조직의 활동과 지식인 및 전문가의 참여도 중요했다.
노동운동, 노동기본권과 표준근로기준의 의미 제시자가 돼야
어쨌거나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전 정부의 경험에 기초해서 볼 때, 현재 노동운동의 대응은 노동자 권리의 ‘사회적 의미구성’과 관련된 역동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전 정부 시기에 더욱 넓어지고 확장된 노동운동 생태계를 이후에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기본권’과 ‘표준근로기준’ 등의 의미를 둘러싸고 제도권과 일상생활을 가리지 않고 발생할 해석 투쟁에서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현 정부도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노동법제도 개정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에서 친자본적인 집단이 득세한다면, 기업의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자의 권익을 축소하는 법제도 개정을 위한 준비가 물밑에서 차근차근 진행될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기본권과 표준근로기준에 관한 기존의 사회적 합의를 기업 친화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를, 법원, 행정당국, 공론장, 어쩌면 학교나 교육기관 등 이곳저곳에서 조용히 진행할 것이다. 노동운동은 그러한 담론과정의 감시와 개입 주체로 활동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에는 아마도 ‘총파업 동원투쟁’이나 ‘국가 수준 협상’ 등 기존의 익숙한 전략은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이나 의사소통 채널과 결합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바로 지금 자신에게 묻고 답을 내놔야 한다. 노동기본권과 표준근로기준의 의미를 제시하는 주체로 공론장에서 활동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노동계로 결합한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통합하는 프레임과 담론을 마련하고 있는가? 다양한 영역에서 말과 실천으로 노동자 권익 의미를 포괄적으로 재구성할 때, 지난 몇 년간 확장된 조직적 기반을 유지 발전시키고 그에 걸맞은 활동 양식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이러한 도전에 능동적으로 응전하여 거듭나고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