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마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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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마을풍경

윤정향 290 10.12 09:00

[연구소의 창]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마을풍경

 

작성자: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는 평일 오전 9시부터 6시 사이의 동네 풍경을 가까이서 오랜 시간 지켜볼 수 있도록 한다. 평일 오전 9시를 전후하여 동네를 순회하는 노란색 셔틀버스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데려간다. 이보다 숫자는 훨씬 적지만 택배차량들과 데이케어센터 차량들이 오전 시간을 간간이 오고 간다. 낮 12시가 넘어가면 초등학생들이 하교를 돕는 양육자나 돌보미와 함께 하교를 시작하면서 일순간 교문 근처인 동네가 조잘조잘 아이들의 말소리로 울린다. 다른 한켠으로 태권도 학원, 음악 학원, 학습지 학원 스티커를 단 노란 셔틀버스 여러 대가 몇십 분 단위로 아이들의 학원 순회를 돕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5시~6시까지 여러 학원의 셔틀버스들이 동네를 제각각 십여 차례 순회한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원을 가고, 다시 놀이터에서 놀고… 아이들은 저녁 시간 전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또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이들도 4시~6시 전후에 동네 놀이터에 가장 많이 모인다. 양육자와 돌보미도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담소를 나눈다. 왁자지껄한 동네에 간간이 오후 택배차량들이 택배물을 분류하고 배달하기 위해 오래 정차하고 있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요즘이다. 오늘도 무탈하게 하루 동안 자라 준 아이들을 보면서 돌봄에 일조한 이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해본다. 하나는 지역사회 학원들과 돌봄서비스(혹은 그 시간)를 사고파는 교환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비용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태권도 동작을 익히고, 연주 기법을 익히고,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암기하는 등)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부수적일 수 있다. ‘나인 투 식스의 동네 풍경’은 지역사회의 많은 ‘무엇’들이 아이들의 성장에 ‘계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장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에너지를 아이들이 쌓고 있다.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에너지들이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를 바라기에 오늘 하루 아이들의 시간을 함께 한 이들에게 감사한다. 상호 거래하기로 계약했던 서비스가 아닌 무형의 ‘돌봄’이 아이에게 스며들었기에 그것이 아이의 친구들과 학교를 통해 좀 더 나아진 사회를 만드는 자양분이 되기를 희망한다. 온통 시장논리로 작동하는 마을 돌봄 속에서도 공적인 돌봄의 가치들이 내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돌봄서비스 상품거래가 개인의 지불능력에 좌우되고 있어서 이마저도 차별을 일으키고 배척을 심어놓는다는 안타까움이다. 개인이 아닌 사회를 놓고 보면 기회조차 공정하지 못하다. 돌봄은 기다림이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투자한 만큼 확실하고 신속한 성과를 따지는 ‘조급증’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기다림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성과(결과)를 내는 돌봄은 정합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돌봄은 거대한 시장 속에서 성장했으며 사회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기다림을 통해 빛을 발하게 될 공적인 무형의 무수한 가치들이 변질되고 작아지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이 초래할 미래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의 마을의 주된 풍경을 바꿀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은 변화된 소비자에 맞춰 발 빠르게 새로운 상품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돌봄의 공적 가치를 지키고 확대하지 못해, 우리는 인간 자체로서 존중받고 배려할 줄 아는 모습을 잃을 수도 있다. 대우받고 싶다면 지불능력을 갖춰야 하는 사회는 돌봄의 공적 가치가 약화된 사회이다. 상상해 볼 일이다. 내 노후에 거주할 마을의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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