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주거복지의 대중모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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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주거복지의 대중모델을 위하여

3,038 2019.08.05 09:01
작성자: 최경호 한국 사회주택협회 이사/정책위원장
EMAIL: kh@socialhousing.kr
 
 
최저임금이 아무리 오르고 기본소득이 도입된다고 한 들, 집주인이 임대료 올리면 다 무소용이다. “왜 가격을 올리느냐”는 항변에 위수지역의 모텔과 피씨방 주인들은 “군인 월급이 올랐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주택문제에 관한 우리의 처지가 이 위수지역 안의 군인과 다를까. 위수지역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가소유가 주된 해법일까. 한 때 전투적 노동운동에게는 분명 그랬던 것도 같다. “여보야~ 이번 임투에는 주택수당 따냅시다, 영원한 우리 집 만들어봅시다”는 민중가요 「달동네의 부푼 꿈」의 후렴구다. 진보정당도 ‘1가구 1주택’을 주요 정책구호로 내세워 왔다. 급진적 해법인 것처럼 우려와 환호를 동시에 받는 ‘분양가 원가 공개’ 처방 역시 결국 집을 살 사람을 위한 ‘상품으로서의 주택’을 활용한 해법이다. 
 
물론, 식민지, 전쟁, 급속한 도시화를 거치며 많은 이들이 겪은 ‘자기 집이 없는 서러움’은 실체로 존재하니, 자가 소유의 열망은 이론이나 구호만으로 잠재울 수 없다. 공공임대주택은 ‘아주 가난한 이들’ 내지는 소득 1-2분위 계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의 수단 정도로 인식되고, 민간임대 시장에서의 ‘갑질과 횡포’야 말 할 필요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최근까지도 ‘자기 집’을 가져야 하는 것은 개인에게나 노동조합에게나, 정당에게나 공공에게나, 주거문제 해법의 기본 틀이었다. 
 
그러나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모두가 자기 집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꿈일지 모른다. 도시의 토지가격이 반영된 주택가격은 근로소득으로 몇 년 저축해서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투기 거품을 걷어낸다 해도 마찬가지다. ‘반값’이 된다 한들, 한푼도 안쓰고 20년을 저축해야 하는 것이 10년으로 줄어들 뿐이다. 미리 돈을 당겨서 사는 금융시스템은 모습을 갖춘 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노동유연화의 흐름 속에서 ‘대출이 가능한 신용을 확보할 수 있는 계층’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양산이 고용불안 뿐만 아니라 주거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까지 자기 집을 사라고 무리하게 대출을 해준 결과는 십년전 미국발 금융위기였음을 우리는 목도한 바 있다. 추정하건대 금융제도가 뒷받침되어도 자가점유율이 대략 60%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를 넘는 경우들은 경제 이행의 과정에서 거주자들에게 저렴하게 집을 불하한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 외에는, 아주 특이한 경우들 밖에 없다. 이른바 ‘복지국가’들의 자가점유율을 보면 대개 55~60% 근방으로,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복지국가가 복지국가인 것은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입자들도 마음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세입자가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은 결국 투기를 방지하고 실수요자들이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투기는 너도 나도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욕망과, 집값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에 기초한 바벨탑이다.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 하지만, 거품은 터지기 전까지 거품인 줄 모르는 법이고, 터졌을 때 피해는 책임소재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다. 
 
그러니 바벨탑을 끝없이 올리려는 욕망을 추수하기 보다는, 집을 사지 않아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오히려 실거주 목적으로 형편에 맞는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합리적인 가격의 집이 돌아가기 쉬워질 것이다. 개개인들에게야 자가소유가 유효한 전략이어도, 공공정책상으로는 세입자에 집중해야 자가소유도 수월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입자가 마음편히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입자가 살기 편해야 자가소유도 쉬워질 것이라는 위의 이야기의 역으로, 자가소유가 쉬워지면 세입자도 살기 편해진다고도 할 수 있을까? 그럴 법도 한데, 최소한 지난 시절의 자가소유 장려 정책으로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2005년과 2016년을 비교하면, 증감률 기준으로. 전체 주택소유자는 6% 줄었고. 세입자는 5.7%가 늘어났다. 자가소유를 장려하는 동안 세입자가 오히려 늘었고, 자가소유자는 감소하는 양극화가 진행된 것이다. 계층 내부의 양극화도 진행되었다. 소유 계층 내에서는 다주택자가 127% 증가하는 동안 1주택자는 23%가 감소했다. 세입자 계층 내에서도 월세나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사는 사람들은 37%나 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도 주거비 부담이 줄었다면 참을 만 할 텐데, 이 마저도 양극화 되었다. 월소득 대비 임대료(RIR)나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어려운 계층일수록 주거비 부담이 더 늘어났다. 
 
여기서 주거품질이라도 좋아졌다면 조금이라도 이해할 구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마저도 양극화다. ‘지옥고’, 즉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사는 1인가구는 늘어나고, 주거빈곤율(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 주택이외의 거처에 사는 가구)이 늘어났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감소했으나, 이는 ‘주택’에 살 경우에나 해당되는 통계다. 
 
정리하면, 지금까지의 자가소유 장려책은 소유, 주거비, 주거품질의 양극화로 귀결되었다. 이제는 세입자의 주거권 자체를 목표로 하는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크게 세 가지의 방법을 제시한다. 공급 측면에서 ‘착한 임대주택’이 늘어나고, 수요자에게 주거보조비가 지급되어야 하며, 규제 측면에서 민간임대시장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이 셋은 서로 엮여있다. 단시일 내에 공급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예산에서는 주택의 공급보다는 주거보조비를 지급하는 것이 형평성을 달성하기 용이하다. 집을 한 채 지으면 한 세대에게 혜택이 가지만 돈으로 나누어준다면 훨씬 많은 이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거보조비만 지급하면 (위수지역의 모텔비처럼) 임대료는 상승하기 때문에 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시장에서 영리목적의 공급은 위축되기 마련이니, 다시 ‘착한 임대주택’의 공급이 필요한 것이다. 세입자 주거권 확보를 위한 3단 사이클이다.  
 
물론 모든 주택에 대해서 규제를 할 필요는 없겠다. 네덜란드의 경우 월세 약 94만원 이하의 경우만 규제 대상이다. 고급 주택은 시장에서 개인 대 개인 간의 계약을 존중하고, 주거약자들을 위해서만 정부가 품질기준에 따른 점수에 연동된 임대료를 매년 고시하는 것이다. 집주인의 직접 이주 목적 또는 세입자의 심각한 귀책사유 외에는 무기계약이 유지된다. 사회주택이든 민간임대주택이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렇게 규제를 받는 주택의 비중은 전체 재고의 1/3 수준이다. 자가소유율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주택 역시 보건, 교육, 연금처럼, 일부 고급 서비스는 시장의 기능을 존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탈상품화’되어 있는 것이다. 주택 분야야 ‘보편 모델’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빈곤층만을 위한 ‘잔여 모델’이 아닌 ‘대중 모델’을 이룩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택이라 부를 만한 주택은 개념을 넓게 잡아도 4천호 밖에 안된다. 관련 법률은 소수 의원의 적극적인 반대로 법사위에서 3년째 계류중이어서 조례 위주로 제도화 되고 있다. 2015년 서울시의 조례 제정과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에서의 언급 이후, 전주, 부산, 시흥, 고양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주택 혹은 공동체주택을 공급하고 있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의 사회적 경제주체 같은 대안적인 공급주체들도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들이 공급하는 사회주택은 물량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위의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3단 사이클에서 공공주택과 함께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부상하는 ‘사회적 경제’의 역할이 주도적이지만, 유럽 사회주택의 초창기에 주택 공급에 나선 양대 세력은 종교단체와 노동운동 진영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세력들이 사회주택에 많이 참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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