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태현 마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센터장
4·15총선애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과 합쳐 180석이라는 결과를 얻어 압승하였으며, 보수 미래통합당은 100석으로 참패했다. 진보정당은 정의당만 6석을 얻고 나머지는 1%대 이하로 존재가치가 위태로워졌다. 수구·보수의 패배야 환영할 노릇이지만 진보진영의 분열과 후퇴는 뼈아픈 상황이다.
집권 여당의 승리와 진보정치의 후퇴
이 결과에 대해 누구는 촛불항쟁의 여파라고 하고, 누구는 민주화 세대가 인구의 구성에서 압도하면서 개혁진영에 유리하게 정치지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주장은 아직 과도하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집권 여당은 경제실정과 이른바 ‘조국 사태’로 말미암은 민심의 이반에다, 미래통합당으로 수구·보수진영이 통합함으로 인해 정권심판의 기세가 심해지면서 거의 패배가 확실시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3월 이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전체로 확산하면서 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에 있어서 모범국이 되고, 전 세계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결국, 미래통합당과 조선·중앙·동아 수구언론이 주장했던 방역 실패나 정권심판론이 오히려 역풍을 가져오면서 오히려 야당 심판의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처럼 극단적으로 승패가 갈린 결과는 현재의 소선거구제와 누더기가 된 비례투표제도 때문이기도 하다. 지역구 득표율로 보면 여당이 49.9%, 미래통합당 41.1%로 8%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 비례정당 지지는 더불어민주당까지 합쳐 38.9% 대 33.8%로, 5%포인트밖에 안 난다. 원래 선거법 개혁이 목표로 한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면 몇십 석 차이밖에 나지 않았을 선거결과가 잘못된 제도로 인해 극단적으로 명암이 엇갈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수구·보수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거방침과 내부의 분열로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정당 지지 득표 9.63%로 비례대표제였다면 약 30석을 얻었어야 할 정의당은 6석밖에 얻지 못함으로써, 우리 정치에 제3의 지대가 사라지고 극단적 양당정치로 회귀하고 말았다.
노동과 진보정치
진보정치의 분열로 말미암아 민주노총은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등 진보다원주의를 수용하고 이 정당들에게 지역구 후보 단일화를 제기하였지만, 솔직히 민주노총의 역량과 통제 범위를 벗어난 제안이었고 결국 정파에 휘둘렸다. 여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결정했다고 녹색당 지지를 철회했지만, 민중당의 참여 결정은 여당이 반대하여 무효화되자 흐지부지되었다. 현재로는 정의당이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이지만 노동자 중심성은 취약하다. 한국노총은 여당을 지지하였으며 일부가 국회의원으로 진출에 성공했지만, 과연 여당이 노동 존중 정책을 얼마나 수용했는지는 의문이다.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올바른 비례대표제나 선거연합이 정착되도록 시민사회진영과 함께 선거법 개혁에 힘쓰는 게 나을 듯하다. 아울러 선거방침과 관련해서도 진보정당이라면 ‘묻지 마 지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정당지지도나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1%도 얻지 못한 정당이나 지역구에 3명밖에 출마하지 않은 정당도 지지한다고 선언한다면 이를 조합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부 정파의 눈치를 본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기준이 있어야 대중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선거가 끝난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대규모 실업과 구조조정에 대한 정책적 대응 강화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21대 국회가 열리면 가장 우선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노동의 입장에서는 민중시민사회진영과 연대하여 해고 금지와 일자리 나누기,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전망 대책 등과 관련된 제도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천 물류창고 참사에서 드러난 부실한 노동안전 관련 법제도의 정비도 시급하다.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집권 여당 내 노동자 출신 의원까지 포함한 개혁연대를 통해 노동 존중 사회를 실현해나가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은 스스로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여 사회적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와 불확실성은 전 세계적 불황의 그림자로 가시화되고 있다. 자유주의 개혁파인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가 원하는 정책을 그대로 수용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정부 탓만 하는 것은 노동조합 스스로 역할을 외면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범국민적 연대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고용위기를 극복해나갈 때다. 정규직 조합원부터 나서서 재난지원금 일부라도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고, 사용자에게도 단체협약을 통해 기금을 출연하도록 요구하면 어떨까? 나아가 사회적으로 해고 금지를 요구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함께 살자는 운동을 전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실업과 고용불안, 임금삭감 등에 시달리는 취약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하는 운동을 전개해나가야 한다. 경제대공황 시기에 미국의 산별노조세력이 대대적으로 노동조합 조직화에 성공하여 노조조직률을 대폭 상승시켰던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이하는 2020년 마증유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