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40 대 60’에서 ‘60 대 40’으로
2000년대 초중반에는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지식인과 노동운동가 사이에서 제법 호응을 얻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을 강타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계기로 상당수 기업노동조합이 결합하여 몇몇 산업노동조합이 만들어졌는데, 이 조직들이 설립 시 내세웠던 ‘보편적인 노동 기준 설정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게 그러한 주장의 근거였다. 이를테면 현실의 조직들이 미조직 노동자가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도록 할 만한 초기업노조로서 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당시 일부 논자는 그러한 판단을 근거로 ‘이기적’ 성향의 대기업노조가 추동하는 원심력으로 인해 조만간에 초기업노조들이 해체되어 기업노조 중심의 질서로 회귀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기하기도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 전망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하여 발표하는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으로 전체 233만 2천 명의 한국 조합원 중 기업노조에 속한 이들은 42.1%(98만 2천 명)이고, 지역노조, 업종노조, 산업노조 등 초기업노조에 속한 이들은 57.9%(134만 9천 명)이다. 2006년에는 기업노조 대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의 비율이 거꾸로 60%와 40%였다. 어찌 됐든 간에 지난 20년 동안 초기업노조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한 추세는 특히 최근에 두드러진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조합원은 그 전 해보다 11.6%(24만 3천 명) 증가했다. 1989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 비율이다. 기업노조는 8.3%(7만 5천 명), 초기업노조는 14.2%(16만 8천 명) 조합원이 증가했다. 초기업노조가 최근 노동운동의 양적 성장을 주도하며 기업노조와 규모 간극을 더욱 벌려 놓은 것이다.
초기업노조는 조직화 성공률을 높인다
21세기 한국에서 초기업노조가 기업노조보다 더 확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업노조를 선호하는 노동운동 활동가의 의도로 이를 설명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또한, 노동법제도 변화 때문도 아닌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추진할 당시 초기업교섭을 제도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입법된 내용이 기업노조보다 초기업노조에 친화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제한 등은 기업노조에게 상대적으로 타격이 컸지만, 초기업노조에게도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가속화되고 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이 논의되는 등 친노동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했지만, 그 중심에 노조 형태와 관련된 담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호적인 정치사회적 분위기는 조직 형태와 상관없이 노조를 감쌌다.
초기업노조가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원인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다. 요컨대 정규직 중심의 기업 내부 노동시장이 축소되고 비정규직 중심의 외부 노동시장이 확대되면서, 노동조합도 이에 맞춰 외부 노동시장을 포괄하는 초기업노조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해석을 제시할 수 있다. 기업들이 시장경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치사슬을 네트워크형으로 재편하고 사무의 아웃소싱을 일반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오늘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수준은 단일 기업 사용자의 판단이 아니라 다수 이해관계의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된다. 노동조건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노동자 측에게는, 단일 기업 사용자의 영향력이 크다면 기업노조가 적합한 조직 형태겠지만, 자신이 속한 기업 외부 이해관계자의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초기업노조가 더 효과적인 형태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 초기업노조의 발전은 이러한 구조 변화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기능적 인과관계 설명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공허하게 들리기 쉽다. ‘어떻게’로 시작하는 질문에 대한 해명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초기업노조는 어떻게 기업노조보다 더 많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유인할 수 있었을까? 최근 노조 설립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이에 대해서 하나의 가설을 갖게 됐다. 사실은 활동가 대부분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얘기다. 요컨대, 초기업노조가 기업노조연맹보다 신규 단위조직 설립, 즉 노조 조직화의 성공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조직화를 시도하는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초기업노조를 선택하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노조 설립과 가입은 법제도로 보장된 기본권이다. 기업노조건 초기업노조건 당사자들이 원하고 합법한 절차를 거친다면 무조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강행적인 규칙을 통해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그 권리 확대와 상충하는 구조적 힘이나 장해물 또한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노조로 인한 추가 비용을 원치 않는 사용자의 반대, 노동법제도와 관련된 전문적 정보 소통의 불균등 등이 그것이다.
초기업노조는 기업노조연맹보다 장해물이나 반대를 뚫고 노조 조직화 과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여러모로 유리한 조건이다. 이를테면 조직화 과정을 함께 주도하는 상급조직 활동가와 노동현장 초동주체들이 상대적으로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상호관계에서의 신뢰를 더욱 쉽게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초기업노조라는 맥락에서 조직활동가와 초동주체는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지만, 기업노조연맹의 맥락에서 조직활동가와 초동주체는 지원세력과 당사자의 관계다. 전자의 조건에서는 기업단위 노사교섭에 상급조직 활동가가 당사자로서 초동주체와 함께 참여할 수 있지만, 후자의 조건에서는 현재 노동법제도의 제약으로 인해 그렇지 못하다. 전자의 조건에서는 조직활동가에게 조직화 과정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성장시키는 과정으로 인식되므로 상대적으로 능동적인 태도와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후자의 조건에서 조직활동가는 자신이 속한 연맹 임원의 지시에 따라 기업노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위치이므로, 상급조직과 노동현장의 요구가 충돌할 시 상대적으로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또한, 초기업노조는 기업노조연맹보다 상대적으로 유사한 조건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자원을 상부로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초기업노조 소속의 조직활동가는 기업노조연맹 소속의 조직활동가에 비해 가용한 자원과 심층적인 정보가 더 풍부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조직화 성공 가능성의 차이가 미조직 노동자들이 초기업노조를 선택할 가능성을 크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초기업노조는 사회적으로 유용한가
이렇듯 오늘날 초기업노조가 기업노조보다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이유를 어느 정도 해명할 수 있더라도, 초기업노조가 ‘보편적인 노동 기준 설정자’로서 실제 기능하고 있는가는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초기업노조들 사회적으로 어떠한 공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애초 내세운 대로 사회 안전망을 확대 및 강화하고, 노동의 보편적인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지금의 나로서는 명확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초기업노조는 태생부터 기업단위에서 제기되는 특수한 이해관계 요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더욱 보편적인 수준의 권리 보장 주장으로 상향시키고 공론화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한 역할에 원칙적으로 충실하다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혹한 생존경쟁을 강요하는 오늘날의 노동시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유의미한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이와 관련된 실천의 맹아들이 이미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직관한다. 초기업노조의 전성시대는 조직이 내세우는 방향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 실현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노동 기준 설정을 적극적으로 향할 때 비로소 열리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곳곳에서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