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청년’이라는 키워드는 언제나 뜨겁다. 누군가는 MZ 세대로 호명하고, 누군가는 ‘공정’이 중요한 세대라고 정의한다. 특정 세대를 하나로 묶어 뚜렷하게 정의하는 진단 방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불평등 문제를 특정 세대 탓으로 돌리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 나에게 “현재 청년 세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일부’ 20대, 30대 청년에게서 두 가지 특성과 한 가지 경향성이 보인다고 하고 싶다. 첫째, 게임, 그중에서도 MMORPG1) 플레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둘째는 인터넷 밈(Meme)2)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사고한다. 그리고, 청년 세대에서의 우경화는 이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발현된다.
하나의 예로 지난 5월 있었던 GS25 행사 포스터 ‘집게손 모양’ 논란을 들고 싶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집게손 모양이 남성혐오를 하는 ‘메갈리아’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남성을 비하하고 혐오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그 결과, GS 리테일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포스터를 수정하며, 해당 포스터를 제작한 직원에게 징계를 내렸다. 사용자는 고객의 폭언이나 폭력으로부터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GS 리테일은 해당 포스터가 정말로 남성혐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조사‧검토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원칙은 잠재적 고객들의 항의 앞에서 손쉽게 무너졌다.
MMORPG에서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팀을 이루고, 특정한 퀘스트(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던전(미궁)에서 몬스터와 보스를 무찌르는 퀘스트다. 퀘스트 수행에 성공하면 경험치, 아이템 등의 보상을 얻는다. 일부 청년 네티즌들은, 팀을 이루어 미궁을 급습하듯 GS25 행사 포스터가 남성혐오적이라고 항의했다. 그리고 기업의 사과, 포스터의 수정, 그리고 직원에게 내려진 징계라는 보상을 받았다. 문제는, 이 세상은 미궁이 아니며 GS 리테일 직원은 퇴치해야 하는 몬스터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점이다.
‘집게손 모양’ 포스터를 생각해보자. 일부 청년 네티즌들이 주장하듯, ‘집게손’ 모양은 조직적으로 남성혐오를 하는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의 상징일까? ‘메갈리아’는 한국 사회에서 계속 이어져 온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인데, 이미 사라졌다. 다만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하는 불특정 다수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많이 사용하는 ‘집게손’ 모양이 정말로 남성을 비하하는 것이며, 반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나아가,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은 반사회적일까? 그것을 보는 남성들에게 어떤 피해를 미치는가?
마땅히 고민해볼 만한 문제들이나, 항의하는 네티즌들에게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집게손’ 모양이 ‘메갈리아’의 상징이라는 ‘밈’만 있을 뿐이다. 왜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이 나왔었는지, ‘집게손 모양’이 정말로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맞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왜 반사회적이며 왜 문제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집게손 모양은 ‘메갈리아’의 상징이고, ‘메갈리아’는 페미니즘 사상을 전파하므로 척결해야 마땅하다는 단순하고 거친 ‘당위’가 있을 뿐이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일부 청년 네티즌들은 GS25 사태와 같은 퀘스트를 수행한 바 있다. 바로 게임‧웹툰 등 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있었던 사상검증 사건이다. 노동자들은 ‘Girls can do anything’ 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혹은 SNS 상에서 페미니즘 이슈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유저들이 항의한 끝에 계약해지가 되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받았다.
퀘스트에 성공하고, 경험치가 쌓이면 게임 캐릭터는 강해진다. 여러 번 기업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메갈’에게 불이익을 줌으로써 처단에 성공한 이들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기업과 정부부처에 ‘집게손’ 모양에 대한 항의를 하고 있다. 맥도날드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한 기업 및 정부기관은 항의를 받은 후 ‘억울하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사과를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관련 종사자들의 말을 빌려 “사회적 물의를 빚을 수 있는 표현을 사전에 예방하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과제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안이한 진단이다. 인터넷 밈을 통한 인지, 사유, 그리고 발화는 논의를 빈곤하게 만든다. 일상적인 것이나 보편타당한 가치가 너무나 쉽게 조롱거리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예방은 불가능하다. 최근 올림픽 개회식 중계에서 아이티 소개에 시위 사진, 우크라이나 소개에 체르노빌 사진을 사용한 MBC를 떠올려보자. 금메달리스트 양궁 선수가 숏컷 머리의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다가 외신에 진출한 네티즌들도 함께 떠올려보자. 이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어딘가에서 조롱과 무분별한 공격(혹은 괴롭힘)을 자행해온 반사회적인 게임 플레이어들이다.
이런 반동(backlash)의 시대에서, “사회적 물의를 빚을 수 있는 표현을 사전에 예방하는 환경”을 고민하는 것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고민과 대처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기분 나쁘다고 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원칙, 그리고 성별‧사회적 신분‧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공적인 영역에서 불이익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공고히 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부‧기업‧노동자 모두가 끊임없이 위와 같은 원칙들을 상기하고 공고히 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상식과 선의, 그리고 인권의 가치를 재건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