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당신의 정의가 살아 숨쉬기에

노동사회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정의가 살아 숨쉬기에

편집국 0 3,401 2013.05.17 10:27

너무나도 어이없고 무참하게 생의 한가운데서 유명을 달리한 열사의 영전 앞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jsha_02.jpg경찰의 공조로 이뤄진 ‘살인’

지난 6월14일,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은 일반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조레미콘(대표 엄태철)의 몰상식하고 무지하기 그지없는 교섭행태와 노사관계 행태에 항의하기 위하여 충주지역노조 및 충주지역지부 조합원들과 함께 회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었다. 사조레미콘 정문 앞은 터널공사나 갱도굴진에 쓰이는 큼지막한 셔블로더(페이로더) 2대와 119차량으로 막혀 있었다. 게다가 회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깡패) 수십여명이 주위를 서성이고 있어 이곳이 정말 허가받은 집회장소인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편 집회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용용역 레미콘차량이 회사로 진입했다. 분명 집회장소 전후방에 걸쳐 경찰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고, 사내에서는 충주경찰서장이 직접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충주지역노조 레미콘지부 조합원의 투쟁을 완전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용역차량의 진입을 허용한 것이다. 당연히 김태환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경찰과 용역차량 직원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격한 상황이 연출되자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최소한의 안전조치인 전방확인조차 하지 않고 화급히 조합원에 의해 둘러싸인 차량을 출발시켰다. 가해차량 운전자 역시 분명 전방에 열사를 비롯한 몇명의 조합원이 있음을 확인하였음에도 가속페달을 계속 밟았다. 그리고 그 레미콘차량은 김태환 지부장을 밟고 지나갔다. 한창 일할 나이의 가슴 뜨거운 노조활동가가 경찰의 공조 속에서 무참히 살해된 것이다.

사고 직후 조합원들이 가해차량을 쫓으며 경찰에 현장검거를 요구했지만 경찰들은 수수방관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상당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가해차량을 검거할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검거 후 곧바로 언론사와 119 등에 연락했다. 그러나 경찰은 언론기자의 현장출입을 통제하여 정확한 사건진상규명을 초기부터 가로막았다. 구급차량 도착 후 열사의 시신은 충주의료원에 안치되었고, 한국노총은 즉각 사무총장을 위시한 총연맹 간부들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그리고 ‘김태환 열사 살인만행 규탄 및 특수고용직 노동3권 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한국노총 사무총장 백헌기)’를 구성하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유조배상, 레미콘교섭타결,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확정하여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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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열사 고 김태환동지  - 출처:한국노총 ]

노동자의 뜨거운 함성으로 되살아온 열사

사고 다음 날, 한국노총은 제1차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공식적으로 결의했다. 그리고 사건전모를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활동을 펼칠 것 등을 천명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한 회의직후 현장에서 곧바로 규탄집회를 개최, 충주시장과 경찰서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토요일이었던 6월18일에는 충주시청 광장에서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집회 후 조합원과 시민들은 경찰서까지 거리행진을 통해 거대한 추모와 규탄의 열기를 뿜어냈고, 한국노총은 곧바로 민주노총과의 공동투쟁본부 및 투쟁상황실 구성에 착수했다. 특히 한국노총은 이날 ‘정권퇴진투쟁 돌입’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민주노총 역시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투쟁에 동참할 것을 선언했고, 6월22일에는 서울 세실 레스토랑에서 전국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의 비상시국회의가 소집되어 김태환열사 투쟁에 적극 결합할 것이 결의되기도 했다. 또한 6월23일에는 서울 중소기업회관에서 ‘특수고용직 노동3권 실태와 보장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긴급히 조직되어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실태보고와 토론을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의 열기에도 청와대와 노동부는 제대로 대응을 보이지 않았고, 한국노총 지도부는 청와대 앞에서 삭발투쟁을 전개하여 투쟁의지를 천명하는 한편, 7월7일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를 굳게 다졌다. 그리고 6월25일에는 전국의 한국노총 소속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다시 한 번 충주시청 앞에서 집결해 총파업투쟁 승리와 열사정신 계승, 노동부장관 퇴진을 촉구하며 총력투쟁 집회를 가졌다.

한편, “나랑은 상관없다”는 노동부 장관의 망발이 있기도 했지만 이러한 노동계의 투쟁과 요구에 대해 점차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6월28일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제종길, 배일도, 김형주 의원이 충주현지를 방문하여 현안해결을 위한 관계자의 협의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노총, 충주지부, 충주시청, 대전지방 노동청 사이에 ‘매일 교섭’을 통해 지역현안을 해결할 것에 대해 합의가 모아졌다. 이후 매일 오후 2시 교섭이 개시되어 진행되어왔으나 사용자측은 매우 불성실한 태도를 계속해서 보였다. 

이러한 와중에도 투쟁은 계속됐다.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안해결을 요구했고 노동부장관 퇴진 서명운동을 전개할 것을 공식 선언했다. 또한 7월2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3천여명의 조합원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파업투쟁 결의 및 김태환 열사 추모문화제가 개최되었고, 다음날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양대 노총이 주관하여 ‘김태환 열사 정신 계승 및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쟁취를 위한 양대 노총 결의대회’가 열렸다. 마침내 7월7일, 한국노총은 주말이 아닌 평일, 서울 광화문에서만 3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참여한 속에서 총파업투쟁 집회를 가졌다. 

또한 이날 오후 충주에서는 6월29일에 다시 시작했던 교섭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회사의 레미콘 운반계약은 1년 계약을 원칙으로 하되, 중대한 과실이나 자발적인 퇴사를 제외하고는 계약을 임의로 해지할 수 없음. 둘째, 레미콘 운반단가는 1루베(㎥)에 5천200원, 1회전에 3만1천200원으로 현재보다 6%를 인상하며 기사들에 대한 중식 및 조출·야근 시 식사제공, 회사측이 유류 전량지급. 셋째, 사조레미콘측에서 1억원의 유족배상금 지급, 충주시가 충주시민사회단체연합회와 협조, 유족 돕기 모금운동을 성의껏 추진. 넷째, 한국노총은 시청 앞 천막 등 철거, 레미콘 회사는 휴업을 철회하고 업무 재개, 시청 앞 차도에 주차한 레미콘 차량 복귀, 관계기관이 불이익 조치를 하지 않을 것 등이다.  

의로운 곳에서 장렬히 쓰러진 동지여!

7월9일 열사는 숨진 지 26일만에 영결식을 갖고 영면에 들었다. 살아 생전, “의로운 곳에서 장렬히 쓰러진 동지여,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정신이 살아 숨쉬기에, 세상의 정의가 서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 곳에서, 모든 것을 묻으리라”라던 김태환 열사. 그의 안타깝지만 의로운 죽음은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꽃같은 투쟁으로, 한국노총 혁신의 거대한 걸음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시 한 번 김태환 열사가 온몸으로 남긴 유훈을 새기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