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개방 이면합의 뿌리를 들어낼 민주노동당 통상법

노동사회

쌀개방 이면합의 뿌리를 들어낼 민주노동당 통상법

편집국 0 2,771 2013.05.17 10:26

 


swlee_01.jpg지난 4월12일 정부가 쌀협상 이행계획서 최종안을 발표한 이후, 쌀협상 관련 ‘이면합의’ 의혹이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 확산되었다. 정부의 합의내용에 이해당사자인 농민은 물론 농민을 포함한 국민들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뒤통수를 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던 민주노동당은 이미 지난 해 12월30일 정부가 쌀협상 결과에 따른 이행계획서를 WTO사무국에 제출한 후부터 줄곧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이러한 국정조사 요구들은 이면합의 의혹이 증폭되면서 여야에 의해 수용되었고, 야4당 농촌지역 대표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난 5월12일부터 6월14일까지 약 한달간 ‘쌀협상 국정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면합의냐 부가합의냐’ 문제가 아니로다

사실, 우리나라가 각종 통상협정과정에서 보여줬던 이해관계 조정 및 국민적 합의도출의 빈번한 실패를 고려한다면, 이번 상황 역시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국회와 정부 사이 논쟁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쟁점은 정부가 숨긴 것이 ‘이면합의냐 부가합의냐’를 둘러싼 것이었다. 그러나 가타부타할 것 없이 어떤 것이 ‘협상’이라는 용어와 결합하든 간에, ‘이면’ 또는 ‘부가’라는 용어가 부각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한 용어가 부각되었다는 것은 협상을 주도한 외교통상부와 농림부는 협상의 ‘형식적’인 대표일 뿐이지 합의를 감독하고 합의내용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농민을 중심으로 한 국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라는 것을 이미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협상이라는 중대한 통상협상을 통상교섭본부를 앞세운 외교통상부와 농림부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 추진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검증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이들이 스스로 ‘이해 당사자’로서 협상에 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느 누구를 ‘대표’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분은 유야무야되었다. 결국 이번 쌀협상을 둘러싸고서도 이전의 통상협정들에서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손실이 발생했고 정부는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렸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이러한 갈등의 재발방지를 위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무방비 상태의 대처 속에서 ‘쌀협상 국회 비준동의안처리’는 9월 정기국회에서 가장 뜨거운 사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추수기를 맞이하는 농민들의 절규 어린 반대투쟁 역시 국회 앞에서, 전국 곳곳에서 불타오를 것이다. 대한민국 통상협정 체결과정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결국 이번 쌀협상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 역시 과거 진행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한·중 마늘협상, 한·미 쌍무투자협정(BIT)과 현재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 도하개발의제(WTO DDA) 서비스협정과 같은 각종 통상협정 협상과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서만이 찾을 수 있다.

선진통상국가라는 달콤한 꿈과 민중들의 쓰라린 기억 

우리는 지난 경험들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통상협정 체결과정이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갈등을 낳고 비용을 소모시켰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노무현 정부는 2005년을 “개방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포하면서, 통상·개방 드라이브를 본격화하고 있다. 2004년 한·칠레 FTA 발효, 한·싱가포르 FTA 체결, 한·일 FTA 협상 개시에 이어, 정부는 올 들어 벌써 미국, 인도, 중국,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지역국가연합(ASEAN),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Mercosur) 등 세계 도처와 동시다발적인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균형개발을 내세운 경제특구·기업도시 건설 등 성장 개발 정책도 강행할 전망이다. 

참여정부 출범 시 최고 국정의제로 제시했던 동북아경제중심국가 추진에 따른 이른바 ‘개방형 통상국가’, ‘선진통상국가’ 전략이 심상찮은 행보를 내딛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선진통상국가론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2~3년 내 최소한 30여개 국가와 FTA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같은 선진통상국가 전략은 FTA와 같은 양자간-지역간 협정뿐만이 아니라, DDA 등 다자간 협상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특히 WTO DDA 서비스 협상문제는 쌀협상 이후 가장 뜨거운 통상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또한 난항을 거듭했던 DDA 협상을 연내에 타결한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계획에 따라 농업, 비농산물, 서비스 등 DDA 각종 분야의 협상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협상이 거듭될수록 시장개방을 둘러싼 정부와 이해당사자간 갈등 역시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통상협정 체결절차와 관련한 법적 근거는 ‘자유무역협정체결의 절차규정에 대한 대통령 훈령(2004년 6월 발효)이 있을 뿐이다. 외교통상부는 절차규정이 FTA에만 한정되어있는 현실을 인식하여, 통상협정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절차규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사례들을 봤을 때 정부가 준비하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의원을 중심으로 지난해 국정감사 시기부터 가칭 ‘포괄적 통상법’의 제정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포괄적 통상법의 목적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방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저지하는 것이 목표다.  

포괄적 통상법은 ‘통상절차에 관한 법’과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이라는 두개의 법을 포괄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통상절차에 관한 법률 초안을 완성하여 관련단체의 검토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상태이다.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의 경우, 이 법안이 필요로 하는 전문성과 이해당사들로부터의 의견수렴이 매우 중요한 만큼 신중히 안을 마련 중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포괄적 통상법 중 통상절차에 관한 법률(이하, 통상절차법)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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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0일 쌀협상 무효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전국 농민들의 총파업  - 출처 : 전국농민총연맹 ]

민주노동당 통상절차법의 핵심조항과 의의

통상절차법은 통상협정 체결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참여, 국회의 견제, 통상기구의 전문성 강화 등을 목적으로 하면서, 통상교섭의 절차적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법은 기존의 통상교섭본부를 통상교섭을 주관하는 주무부처로서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여러 부처의 전문성과 책임을 필요로 하는 통상교섭의 특성상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무총리 책임 아래 있는 ‘통상위원회’를 설정하고 있다. 

또한, 통상절차법은 지금까지 통상협정 협상과정에서 항상 문제시되었던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 및 협상내용에 대한 사전이해과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민간자문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민간자문위원회를 다양한 협상·업종으로 구분하여 세분화하고 있다. 그리고 민간자문위원회의 의견이 통상교섭 대표단에게 최대한 반영되고 이해당사자와 대표단 사이 원활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위원회의 권한과 통상교섭 절차과정 참여 폭을 확대했다. 

통상절차법은 국회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 내용은 통상협정에 대한 전문적이고 상호협력적인 전문감독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회가 ‘통상특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회의 통상특별위원회는 정부와 국내 이해당사자들 간의 합의과정을 조정하는 ‘대표’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국민을 대신해 각종 통상협정 체결과정에 대한 ‘사전감시’를 행할 수 있다. 현재 국회는 협상이 종결되어 체결된 후 대통령의 비준에 대해서 동의할 수 있는 권리만을 가지고 있다. 또한 통상협정 체결과정에 대한 국회의 자료제출요구권은 통상협정이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한편, 통상절차법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정부, 민간, 국회의 기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통상협정 체결의 모든 과정에 대한 ‘규정’이다. 체결과정은 ‘협상 전 과정’, ‘협상과정’, 그리고 ‘협상 후 과정’으로 나눠진다. 이 법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협상 전 과정이다. 통상문제는 언제나 ‘협상 후’에 발생하나, 문제의 원인은 항상 ‘협정 전’ 준비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 착목하여 통상절차법은 특정 통상협정의 협상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정부가 ‘산업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민간자문위원회와 국회의 심의 및 최종 인준을 받아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산업영향평가 등을 실시했을 때 예측되는, 특정 통상협정에 따른 예상피해에 대한 대비책 수립과 이에 대한 합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예상피해에 대한 대비책 수립은 앞에서 언급한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을 기반으로 세워져야 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통상협정 협상 시작 전에 대부분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이다. 또한 협상 진행 중 대표단이 제안된 관련 기구-특히 통상특별위원회 또는 국회 본회의-에 정기적으로 보고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통상절차법은 협상 후 과정에 대해서, 최소 국회 통상특별위원회의 사전심의를 전제로 해야 ‘가서명’이 가능하며 국회는 비준 전 사전 동의 및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통상교섭정책 및 교섭 전반에 대한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 법은 이 외에도, 쌀협상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조항 및 의무 불이행시의 처벌규정, 그리고 이미 집행 중인 통상협상에 관한 규정 등을 담고 있다.

‘이면합의’와 ‘극한대립’, 통상법으로 막는다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쌀협상 이면합의’와 같이 적절한 법령만 있었어도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들의 재발을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해당사자와 협상대표간의 심도 깊은 의견조율이 가능하여, 불미스런 오해나 불신의 수준을 낮춰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발생 사후에, 즉 뒤통수를 맞은 후에 벌어지는 극단적 대립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통상절차법은 갈등해소를 위해 국회가 책임 있는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확장시켜, 통상협정 체결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은 현재 각종 통상협정과 관련된 시민사회 내 이해집단들과의 협의를 통해 추진되고 있는 만큼, 그 필요성이 이미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룬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법이 통상협정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되려 이 법의 역할은 통상협정과 관련하여 국가가 국민경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가운데, 국민개개인의 이해가 국가전체의 이해로 조율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첫 걸음에 한정될 뿐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국내 경제 전반에 거대한 개방압력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통상법’은 정략적 이해를 넘어서 국민경제의 바람직한 질적 향상과 개방 피해 최소화를 위해 반드시 제정·시행되어야 할 사회적 과제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