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건 보수건 혁신 거부할 수 없다”

노동사회

“개혁이건 보수건 혁신 거부할 수 없다”

편집국 0 2,674 2013.05.17 10:22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됐습니다. 한국노총이 현재 맞이하고 있는 ‘위기’ 혹은 ‘문제’의 근본적인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yblee_01.jpg우선 요즘 상황은 현재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모습을 구조화한 소위 ‘87년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판단합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공장 남성 중심의 활력 있는 노동조합들이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던 것이 사실인데, 1997년 IMF사태 이후 노동시장이 양극화되고 비정규직들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대공장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운동을 이끌고 대표하는 힘이 약화된 것이죠. 이를 ‘위기’로 규정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떠나서 새로운 상황이 도래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이 밑바닥에 고인 물처럼 변화를 거부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었고, 이는 권력과 담합하는 비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뭐랄까, 사회 전체적으로 투명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다양한 요인이 겹쳐지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동조합 간부의 비리사건’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에까지 치명적인 문제가 제기된 것, 이것이 현재 위기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노총은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 권력과 관계에서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자주성의 문제들이 복지센터 건립 과정에서 노총 상층간부들이 이권문제에 개입하는 것으로, 결국 전직 위원장과 현직 사무총장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고 수배되는 상황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노총에게 노동계 일반이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위기감을 부여하는 것이었고, 혁신과 변화를 강제하는 것이었죠. 정말 절박한 심정 속에서 조직혁신기획단이 꾸려져서 움직였습니다. 

조직혁신기획단은 크게 도덕성, 투명성, 민주성, 자주성 이렇게 네 가지의 측면에서 혁신의 과제들을 준비했는데, 한국노총에는 이 네 가지 측면에서 모두 ‘위기’의 요소들이 내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상층 간부의 비리, 형식적인 회계감사와 불투명한 재정집행, “산별대표자들하고 내부정치만 잘하면 위원장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대표성 없는 선거제도, 국고보조금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 위기의 요소들은 그동안 쭉 누적된 것들이고, 되려 새로운 위기는 오래된 환부를 도려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직혁신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혁신의 과제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확정되었습니까?
 
저를 포함하여 노총 집행부와 산별연맹 성원 몇몇을 중심으로 조직혁신기획단이 꾸려져서 초안을 내고 다양한 내외부의 논의를 거쳐 지난 대의원대회를 통해 혁신안을 확정했습니다. 노동조합의 특성상 실천을 강제하는 방법은 규약이나 규정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모든 혁신의 내용들을 규정과 규약을 구체적으로 제정 또는 개정하여 명시하도록 하는데 논의를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워낙 긴박했기 때문에 대의원대회 날짜를 미리 6월1일로 다소 급박하게 잡아놓고 그것에 맞춰 거꾸로 계획을 짜고 실무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일정이 길어지면 자칫 논의가 공전될까 우려했던 것이죠.   

그리고 처음에는 도덕성과 재정투명성이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조직혁신안을 제출하려고 했는데 워크숍 등의 논의를 거치면서 특히 민주성과 관련한 과제들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선 위원장과 사무총장 러닝메이트 제도가 도입되었고, 부위원장들도, 예전에는 위원장이 지명하면 전형위원회에서 그냥 추인하는 형식이었는데, 일괄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뽑도록 했습니다. 특히 부위원장 5명 중에는 여성부위원장과 비정규 부위원장을 한명씩 두도록 했는데, 비정규직 부위원장을 두었다는 것은 민주노총보다도 더 앞선 개혁이라고 자부합니다. 또, 선거인단을 조합원 200명당 1명씩 두도록 하여, 기존의 700명당 1명인 대의원들이 한국노총 임원을 뽑았던 것에 비해, 선거참여자들을 약 3~4배 정도로 늘리는 등 선거제도를 대폭 민주화했습니다.      

그러한 토론과정에서 쟁점이 된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개선이 산하조직과 현장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입니까? 

선거인단 제도와 관련된 반발이 제일 컸습니다. 특히 선거인단 제도보다 한발 나가서 조합원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 직선제는 현장활동이 활발한 민주노총에서도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부분인데, 기업별 체제 하에서는 이른바 선거인명부, 즉 조합비 내는 조합원을 확정하는 것부터가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큰 무리 없이 합의가 모였고, 이는 노총 내 개혁파라고 하는 사람들도 일대 진전으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과제에 대해서는 크게 논쟁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재산공개와 관련해서 다소 이견이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이라는 게 무산자운동인데 노조간부가 재산을 공개하는 것이 원칙에 걸맞은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있기도 했고, 만약 공개한다면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최종적으로는 차기 선거에서부터 노총 상근임원 출마자들, 그리고 당선자는 매년 재산을 공개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습니다.        

내부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민주노총 등 밖에서 얘기를 듣는 부분이, 노동조합이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총 내부에서는 노동조합 회계에 대해서 안팎의 불신이 누적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전문적인 외부 회계감사를 두어서 재정과 회계를 공개하는 것이 노조 재정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뿐더러, 정부 등의 강제적인 개입을 차단하는 방안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실제 한국노총이 외부 회계감사를 자율적으로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한 이후 정부의 개입이나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쑥 들어갔죠.        

그리고 이러한 제도개혁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만들기 위한 후속작업들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외부 회계감사와 관련해서, 지금 윤종훈 회계사와 하승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 3인을 위촉해서 한국노총 회계와 재정집행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앞으로는 거기에 기반해서 예산을 집행하고 또 연구를 진행한 분들에게 매년 2차례 회계감사를 의뢰할 계획입니다. 

또, 선거인단 제도 개혁과 관련한 지침이 각 산하조직에 이미 내려가 있는 상태이고, 조합원 정보청구권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정보의 등급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집행체계 정비를 위해 그동안 열리지 않았던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회계감사에 대한 외부진단이 끝나는 대로 재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의무금 인상과 지역본부 재정의 교부금 체제 전환 등을 논의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한국노총은 도덕성, 투명성, 민주성, 자주성 문제에 있어서 변화하고 있고 끊임없이 변화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중앙조직인 한국노총이 제도개혁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면 이는 산하 조직들에게도 강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 지금 조합원 200명당 1명씩 선거인단을 두고 총연맹 임원선거를 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각 연맹에서 자신들의 위원장을 뽑는 대의원들 수보다 선거인단 수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연맹에 총연맹 선거인단은 500명인데 대의원은 200명이다, 이런 상황을 연맹 리더십들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총연맹의 혁신은 산하조직들의 개혁을 강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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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혁신과 관련한 한국노총 임원과 집행부의 의지는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소위 내부 ‘보수세력’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조직혁신안은 대의원대회에서 압도적인 표결로 통과가 됐습니다. 그리고 혁신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의결되는 과정에서 충돌이라고 할만한 것들도 없었습니다. 이른바 ‘보수’건 ‘개혁’이건 노총이 변화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혁신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의결됐고 규약으로 강제됐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진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장의 실천의지를 구체화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지금은 당장 선거가 없지만 노총 차기 선거가 있는 2007년이 되어서 실제로 3, 4천명의 선거인단들이 꾸려지고, 위원장-사무총장 러닝메이트 후보들이 뛰어다니고, 다양한 부위원장 후보들이 유세를 하고 하는 상황이 되면, 조직 자체가 엄청나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노총의 전체적인 투쟁의지나 혁신의지와 관련하여 일부에서 여전히 불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은 이른바 보수파건 개혁파건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정부와의 ‘유착 여지’가 없어졌다는 점도 자극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김대중 정부까지만 해도 자기 국회의원을 한 명도 갖지 못했던 민주노총은 어쨌건 ‘민주노총당’으로 인식되는 민주노동당이 진출해 있어서 국회에 교두보를 마련했고, 행정부 내에도 노무현 정부 탄생과정에 역할을 한 민주노총 출신자들이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현재 국회와 행정부에는 한국노총 출신자들이 전혀 없습니다. 때문에 역대 어느 정부보다 정권과의 관계가 소원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 정부는 도덕적 순결주의, 이른바 ‘선악의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해 있어서 노총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입장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있고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한국노총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생긴 결과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혁신을 강제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구체적인 조건들이 한국노총이 노동조합으로서 원칙을 다잡으면서 노동조합답게 지내지 않는 한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구성원 모두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지금 한국노총의 혁신과 투쟁을 이용득 위원장 혼자서 드라이브 걸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데, 혁신에서도 김태환 열사 투쟁에서도 일체 조직내 갈등이나 잡음이 없습니다. 

최근 한국노총이 ‘노동부 장관 퇴진’을 내걸고 누가 봐도 놀랄 정도로 권력과 대립각을 분명히 세우면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노총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7월7일, 비록 실질적인 총파업은 아니었지만 주말도 아닌 평일에 서울 광화문에서만 3만여명 노동자들의 참여가 조직된 것을 보고 다들 놀랐을 겁니다. 게다가 노총은 최근 투쟁 과정에서 슬로건을 “현장과 함께 국민과 함께”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현장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리고 혁신이나 김태환 열사 투쟁에서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물론 아직 다양한 과제들이 남아있습니다만, 그 동안 한국노총이 시달려왔던 ‘어용 시비’의 멍에로부터는 이제 분명하게 벗어났다고 판단합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주체 몇몇의 의지가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과 조건으로 인해 한국노총은 확연하게 변화와 개혁의 길에 들어서 있습니다.       

노동부가 ‘30억원 발전기금’을 문제삼는 등 정말로 요즘 정부와 한국노총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정부는 ‘한국노총이 요즘 왜 이러냐’ 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에 앞서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싸움을 크게 벌여야 한다는 쪽이든 조금 다르게 가자는 쪽이든, 지금과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노총과 정부가 대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노총의 입장은 ‘비리’가 있으면 철저하게 수사해서 뿌리뽑고, 적절치 않은 국고보조가 있으면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활동에 필요한 자금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거부할 게 아니며 오히려 필요하다는 게 우리 입장입니다. 그런데 노동부가 지금 국회에서 심의·의결된 지원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돈이 자기 것이라도 되는냥 손에 쥐고서 노총의 기를 꺾으려고 하고 있고,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아주 분노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지원의 내역과 방식, 체계들을 문제삼아 수정한다면 한국노총은 뭐든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부가 30억 발전기금 환수하겠다면 환수해라, 하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30억 발전기금은 국회의 심의를 거친 것이고, ‘비리사건’ 수사 때도 검찰에서도 일체의 문제제기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돈줄을 통해 목줄을 쥐려는 행동이 확대돼서 앞으로 한국노총중앙연구원이나 상담소, 산업안전 사업 등에 지원되는 자금에 대해서까지 문제제기가 들어온다면 다양한 방식을 통해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노총이 돈 문제 때문에 권력에 순응하고 자주성을 훼손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점입니다.         
      
김태환 열사투쟁과 조직혁신을 통해 한국노총이 보다 젊어지고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되리란 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인 것 같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전략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어떤 방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던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사업장 투쟁은 이제 그 역할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전처럼 노동판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상실한 것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개별적인 사업장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비정규직, 빈곤 등의 문제가 노동운동이 대의로서 받아 안고 집중해야할 현장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총연맹의 기획투쟁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앞으로 노동운동 발전에 관건이 되지 않을까 판단합니다. 즉 총연맹이 조직이건 미조직이건 다양한 노동자들 아우를 수 있는 이슈를 발굴하여 전체적인 투쟁의 상을 기획하고, 이를 중심으로 연맹과 지역본부, 단위노조들이 결합하여 투쟁과 교섭을 벌이는 총체적인 싸움, 노동정치를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태환 열사투쟁에서 드러났듯이 대중들의 핵심을 관통하는 요구들을 받아 안아 이를 잘 기획한다면, 그 속에서 조합원들도 새롭게 조직될 것이고, 굳어있는 현장도 변화되고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획투쟁을 위해서는 총연맹 리더십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노총의 리더십과 의사결정구조는, 이게 어찌 보면 덜 민주화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매사 의결단위의 결정을 거쳐야 하고 정파구도의 공진 속에서 전술이 뭉뚱그려지기 쉬운 민주노총에 비해 집행부가 결단할 수 있는 영역이 좀 더 넓습니다. 때문에 의사결정과 집행이 상대적으로 신속하고 집행부가 정치적으로 예각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그 동안의 대정부 관계를 통해 ‘정치적 사고’가 발달해 있고, 요구를 구체적인 예산과 입법으로 제시하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반면 요구를 대중투쟁으로 기획하는 데는 민주노총에 비해 상당히 부족했죠. 

개인적으로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만, 민주노총은 “교섭 없는 투쟁”을 해왔고, 한국노총은 “투쟁 없는 교섭”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는 권력이 분할과 배제를 통해 노동좋바운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87년 체제’가 붕괴되고 그 속에서 양대 노총의 공조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정착된 지금은 이런 분할구도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습니다. 2005년 하반기 이후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 비정규직 관련 법안 문제, 노사관계 로드맵 문제, 그리고 2007년 복수노조 허용 문제 등 양대 노총이 공조와 기획으로 뚫어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한국 노총은 “투쟁 있는 교섭”으로, 민주노총은 “교섭 있는 투쟁”으로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열리리라 판단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