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젊어지고, 더 뜨거워지고, 가끔 사고도 치길

노동사회

더 젊어지고, 더 뜨거워지고, 가끔 사고도 치길

편집국 0 2,698 2013.05.17 10:16

월간지 1백호 발행은 축하받을 만하다. 척박한 노동언론의 현실과 온라인 매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환경 속에서 10년을 ‘버텨온’ 것은, 그리고 새로운 10년을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축하 받을만한 일 아니겠나. 『노동사회』나 <노동사회연구소>만을 위한 축하라기보다, 노동전문 월간지를 이렇게 지켜봐 오고, 키워 온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축하할 만한 일이다. 축하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쓴소리도 그 중 하나일 터, 주제넘게 몇 마디 적어본다. 

이봐, 너무 점잖은 척 말라구 

우선 “네 정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연구소의 교육활동, 연구성과와 입장을 중심으로 만드는 연구소 기관지 성격으로 가져갈 것인지, 그것과는 독자적으로 시의성 있는 기획으로 대중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노동사회』는 후자 쪽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인데, 그렇다면 좀 약하다. 

아무튼 이런 기본적인 방침이 결정된 이후 독자 대상, 편집 중점 방향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가든 『노동사회』의 중심 가치는 ‘깊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월간지가 정보 제공으로 승부를 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론적인 소재든, 현장 취재든 깊은 천착이 있어야 된다. 이는 인터넷 매체 시대에 월간지 일반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갖춰야 될 대목이며,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이 가일층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동사회』는 너무 ‘점잖다.’ 물론 나대지 않고 차분해서 좋다는 의미의 긍정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맥락적으로 다소 불만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젊지 않은’ 인상을 말하는 것인데, 뜨거운 주제, 중요한 ‘노동? 사회’적 이슈에 머뭇거림 없이 뛰어들어서 가차없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다소 소극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연구소와 다른 입장도 지면에 소개하면서 치열한 이론 투쟁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노동사회』의 페이지가 사용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떤 입장과 견해는 다른 입장과 견해와 싸워가면서 훨씬 그 깊이를 더해갈 수 있다.   

연구소의 입장뿐 아니라, 노동운동을 둘러싼 여러 입장들이 만나고 소통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자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필자의 ‘욕심’이다. 이런 것을 통해서 연구소의 입장이 객관화되면서 오히려 더 명쾌해질 수 있다. 이러한 편집 전략은 결과적으로 매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높이고 매체 영향력을 더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별한 노동사회의 ‘특집’을 만들어라 

특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매체의 의제 설정 기능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노동사회가 이번 달 특집 주제는 무엇으로 할까” 하는 문제가 노동계의 관심이 될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깊이와 다양성이 모여지는 대표적인 형태가 특집이다. 소재는 많이 널려있다. 필자 개인적인 견해로는 ‘노동정치’ 쪽의 아이템을 많이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어느덧 민주노조의 출범 이유이자, 존재 이유였던 과거의 어용노조를 닮아버린 민주노조 ‘진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기아나 현대차에서 터져 나온 ‘채용비리’는 솔직히 상상이 불가능한 파렴치한 범죄 아닌가. 이거 도려내지 못하면 노조운동은 망한다. 『노동사회』의 분투를 기대해본다. 

“현장에서 『노동사회』가 예전처럼 읽히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여러 월간지 가운데 가장 많이 읽던 매체가 『노동사회』였는데 요즘은 안 보는 것 같다.” 
“책이 와도 잘 안 읽게 되고, 참고 자료 정도로만 가끔 뒤적이게 된다.” 
“특정 입장에 너무 치우쳐서 신뢰를 좀 잃은 것 같다.” 
“치열한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장에서는 그런 논쟁이 있음에도.” 
“도움되는 읽을거리 자체가 별로 없다.” 
원고 청탁을 받은 후 이 글을 쓰기 위해 현장 노조 간부 몇 명에게 모니터링해 본 결과다. 이 의견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적절한 비판인가의 여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사회』와 만날 기회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본다. 

쓴소리 깊고 달게 듣길 

잘은 모르지만 현재 『노동사회』를 만드는 상황 자체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도 돈도 충분히 지원 또는 집중이 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아주 적은 인원으로 고생하면서 책을 만드는 것은 정말 격려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평가에 면죄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사회』가 보다 젊어지고, 좀 더 뜨거워지고 가끔 사고도 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