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기념 특집좌담: 한국노동운동의 '위기'와 미래

노동사회

100호 기념 특집좌담: 한국노동운동의 '위기'와 미래

편집국 0 2,928 2013.05.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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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5월 16일 월요일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토론: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윤진호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정리: 『노동사회』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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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표: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노동사회 100호 기념 좌담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작년 말부터 터지고 있는 대공장의 채용비리나 기타 노조간부의 금품비리 사건 등에서 비롯된 이른바 ‘노동운동의 도덕성’ 논란부터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리사건들과 도덕성 논란의 뿌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노동운동은 어떤 대응원칙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불거진 내부비리, 그 뿌리가 닿아 있는 곳

김종각: 먼저 최근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검찰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고, 그럼에도 잠적을 해서 국민들로부터 노동운동진영 전체가 비도덕한 집단으로 몰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한국노총에 몸을 담고 있는 간부로서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오늘 아침(5월16일) 한국노총 산별대표자·지역본부대표자 연석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우선 한국노총 지도부가 대국민 사과를 공식적으로 하고, 최대한 빨리 조합원들의 요구를 모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직혁신 과제를 내고 이를 6월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제도화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원래 제도라는 것이 잘 만들어놓아도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면 악용되고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여하튼 할 수 있는 만큼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작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은 그 스스로의 운동기반으로 자주성과 도덕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를 스스로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부족했습니다. 특히 재정과 관련해서도 대의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알리는 데 머물고 공개성이 부족해 비리가 잉태되기 쉬운 구조이죠. 지도부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그럼에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부족하고 지도부의 재량권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거기에다가 일상적인 결정과 활동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우리나라 기업별 노조체제의 폐쇄적 성격까지 더하여 노조 안에 부정과 비리 똬리를 틀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과거 권력이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기제로서 ‘채찍과 당근’을 썼는데, 노동조합이 ‘당근’을 스스로 떨쳐내지 못하고 관행화시키고 체질화시킨 결과가 이러한 비리 사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노동운동의 위기’에는 여러 측면 있을 텐데, 이번 사태를 맞이하여 노동조합운동의 근간인 도덕성, 자주성,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노동운동은 국민 뿐 아니라 조합원들로부터도 고립되고 외면 받을 것입니다.    

김태현: 대공장 채용비리가 지난해 말 기아자동차 사태에 이어 현대자동차에서도 터졌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이 외에도 더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민주노총은 자주성을 큰 원칙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을 대표하는 입장으로서 정말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관련하여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우리 노동조합운동이 1997년 이후 환경이 구조적으로 바뀌었음에도 그 이전의 운동들의 성과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무차별적인 탄압의 대상이었던 민주노조운동이 점점 힘을 얻으면서 이제 정권과 자본에게도 일방적인 배제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러면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기존의 체제에 안주하니까, ‘매수’와 같은 역학구도가 발생할 있었다는 것이죠. 즉, 자주성을 가장 큰 원칙으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이 제도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 노동운동 내부의 분파적 갈등에 대해서 원칙을 세우지 못한 점 또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금 대공장들에는 다양한 경향을 가진 현장조직들이 있는데, 이들이 건강한 노선과 입장으로 분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권력을 중심으로 이합집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운동의 대의보다는 자기 현장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목적을 위해서는 절차나 대의까지도 무시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기아차 사태를 보면 현장조직 대부분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있었거든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분파적 생각이, 이렇게 실리적 부분에 안주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윤진호: 두 분 말씀을 들으면서 사실 놀라운 게, 그 동안 두 조직은 운동의 역사와 논리가 매우 달랐는데 이번 비리사태와 관련해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진단과 처방이 거의 똑같다는 점입니다. 물론 사건이 터져 나온 양상도 비슷했고요. 어쨌거나 저는 오늘 좌담 제목이 <노동운동의 ‘위기’와 미래>라고 되어 있으니까, 우선 이 ‘위기’라는 단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위기’의 정확한 의미 규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최근 노동운동의 위기를 주제로 한동안 논쟁이 있었지요. 물론 그 때 이야기된 것 중에서 하나도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만, 노동운동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습니다. 그러한 논쟁에서 노동운동이 위기상태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근거로서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합니다. 하나는 하락하고 있는 조직률 등 객관적 지표의 위기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최근 불거진 비리문제나 최소한의 내부규율조차 지켜지지 못한 민주노총대의원대회사태가 보여준, 노동운동 내부의 도덕성, 민주성의 위기입니다.    

첫째, 조직률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조직률 등 객관적 지표가 정체하거나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락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또한 조직률은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증명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같은 조직률이더라도 그 노동운동이 갖고 있는 동원능력, 제도적 자원과 언론능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각 국가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죠. 또한 선진국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는 것하고 우리나라 조직률의 정체는 조금 틀을 달리하는 문제입니다. 선진국이야 노동운동이 추구했던 많은 것들을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국가가 받아 안으면서 할 일을 잃고 활력을 잃은 것인데, 우리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노동운동은 아직 젊은 운동입니다. 우리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정체상태에 있는 것은 ‘노동운동의 성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비정규직의 증가, 기업별체제 등 노동운동을 옭아매고 있는 구조적인 제약과 한계에 상당부분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면 향후 반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산별전환, 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이 제도적으로 해결되면 조직률은 언제든지 올라 갈 수 있는 것이기에 이를 근거로 ‘위기’를 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노동운동의 도덕성, 민주성의 문제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노동운동 외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노동운동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런 모습을 외부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100% 완전무결하게 도덕적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어쨌거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노동운동의 무기는 도덕성과 민주성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무너졌을 때 국민과 노동자들이 느끼는 좌절과 실망감은 상당한 것이고, 노동운동은 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다만 이를 근거로 노동운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도덕주의’적인 함정에 빠진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벌을 비도덕적인 측면 때문에 비난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근거로 재벌의 위기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저는 지금 위기인지 아닌지, 노동운동이 처해 있는 위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당히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특수 지위를 헌법이나 노동관계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인정해주죠.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조직들에게는 법으로 금지된 독점이나 집단행동 같은 것들이 제한이 따르긴 하지만 노동조합에게는 허용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위를 보장하는 것은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이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목적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위기’를 판단할 때는 노동조합이 이러한 근본적인 존재목적에 맞도록 기능하고 있는 것인가를 근거로 하여야 하고,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노동운동의 상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1987년 체제’라고 하는 것, 즉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그 기초가 형성된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이 갖는 특징은 아시다시피 기업별노조 체계, 경제주의적 요구, 전투적 방식 등입니다. 이는 당시 산별교섭이나 경영참여, 정책참여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고 노동운동 내부적으로도 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형태로 형성된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87년 체제의 성공이 1997년의 전환기를 겪으면서 노동조합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사회 속에서 성장을 하면 권력을 갖기 마련이고 노동조합운동도 마찬가지인데, 그 권력이 87년 체제 속에서 기업별노조에게 집중되면서 변화에 대한 대응을 막고 있다는 것이죠. 

기업별체제 하에서 각 기업의 노사는 한편으로는 서로 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협조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노사담합의 권력구조가 형성되기 쉽습니다. 또 노동운동 내부적로도 각 기업별 노조에 집중된 권력자원을 서로 차지하려는 소모적인 싸움 속에 정파적인 권력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는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대변해서 전투적 동원을 통해 요구조건을 쟁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1997년 이후 광범하게 확산된 고용불안에 대한 대응과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요구를 대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한 기업별 노조 밖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나 그 구성원 대다수가 노동자인 이른바 ‘국민’들의 국민적 요구, 즉 재벌개혁, 사회보장제도개혁 같은 것들을 실질적으로 받아 안기가 어렵죠.  

말로야 이러한 기업을 넘어서는 사회적 요구들을 늘 주장하지만, 구조가 뒷받침이 되질 않으니 말 뿐으로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노동운동이 위기라고 한다면 이러한 ‘대표성’의 위기, ‘대변’의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 번 말로만 그치면서 노동운동이 이해관계자 집단활동으로 왜소화된 것, 즉 본래 소명을 다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위기라는 것입니다.   

10년마다 맞는 ‘전환기’와 노동운동의 관성

노광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의 토대가 되는 한국경제의 변화는 노동시장, 노사관계, 노동정치 등에도 구조적인 영향을 줬고, 이러한 변화에 대해 한국 노동운동은 아직 적절한 기조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른바 ‘노동운동 위기’ 논쟁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87년 체제’와 1997년 이후 노동운동을 둘러싼 변화된 상황에 대해서 우선 윤진호 교수님께서 의견을 정리해주시죠.  

윤진호: 한국 노동운동은 10년을 단위로 터닝 포인트, 역사적 전환점을 맞는 것 같습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성장과 한국노총 개혁의 결정적 계기를 이뤘고, 1997년의 외환위기는 그 전까지는 말로만 얘기되던 ‘세계화’라는 것을 우리에게 현실화했습니다. 외환위기의 충격은 경제상황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또한 흔들어놨고 노동운동에도 큰 영향을 줬죠. 노동조합들이 기업별로 이해를 대변하는 체제가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노사관계 로드맵이 현실화되는 2007년에는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이 예정되어 있어 새로운 전환기를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2007년의 정책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거칠게 정리하면, 노동조합들 사이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힘의 원천은 단결과 집중인데 이러한 경쟁체제 도입은 노동조합의 분산과 파편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을 했습니다만, 87년 체제를 특징짓는 것은 기업별 노조체제, 경제주의 전투주의 등이죠. 그리고 1997년 이후 노동운동과 관련된 변화라면 우선적으로 노동자 대중의 상황이 나빠졌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고용불안이 심각해졌고 전체 국민 소득에서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도 떨어졌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도 나타나기 시작해서 상위 9~10%의 노동자들은 이전의 자기 소득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득이 올라간 반면, 나머지 노동자들은 현격히 떨어졌습니다. 또한 노동운동의 사회적, 정치적 발언력이 약화됐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이제 더 이상 87년 패러다임에 기초한 노동운동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가 봐도 지금 이대로 관성적으로 가는 것으로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고용안정인데, 기업 자체가 흔들리는 세계화시대에 기업별 노조를 통해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킨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 강화, 사회보장체제 개선 등 사회적으로, 아니면 산업 안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노동운동의 사회적 발언력이 약화된 것도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노동운동은 관성적으로 기업 안에 머물면서 요구를 쟁취하는 수단으로서 주로 길거리 투쟁, 곧 집회, 시위에만 의존했던 것이 불러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집회, 시위 등은 중요한 투쟁수단입니다. 특히 임금 인상률을 가지고 노사간에 줄다리기를 할 경우에는 가장 유용한 수단일 수 있죠. 그러나 ‘고용안정의 구조를 사회적으로 만들어낸다’,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인다’ 하는 것들은 이러한 수단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시스템과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강행되는 것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을 뿐. 이처럼 변화된 상황 속에서 필요한 구조를 만드는 데는 무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장이 말에 그치게 됐고 조직노동자든 미조직노동자든, 특히 미조직노동자가 노동운동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이러한 상황이 노동운동의 사회적 발언력 약화와 조로(早老)로 나타난 것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우선 크게는 세계화의 확산과 빠른 속도의 기술혁신 등이 가져오는 경쟁체제의 전면화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세계 모든 국가에 동일한 조건이죠. 그리고 이러한 부분이 우리나라에 적용될 때 영향을 주는 중간 매개항으로는 양극화된 경제구조, 즉 중소기업과 재벌의 관계와 이에 영향을 받는 기업별노조체제를 들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는 전체적으로 변화했는데, 기업별 구조에 갇힌 노동운동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바꾸려고 하질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노조는 개혁의 속도가 늦고 변화에 상당히 수세적인 편인데, 거기다가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관성에는 양극화라는 경제구조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기업별체제 안에서 힘을 갖고 있는 대기업노조는 현재 체제에서 사실상 아쉬울 것도 없고 변화에 대한 요구가 급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즘 문제가 없는 곳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되어 있고, 임금도 사실상 생산성임금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죠. 게다가 일부 대기업노조의 사회적 발언력은 민주노총과 비교했을 때도 뒤지지 않습니다. 즉, 물론 대기업노조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부분적인 이익이 노동자 전체적인 이해와 충돌하는 것, 주체들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와 주체의 내부구조와 행태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 것이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 침체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광표: 노동운동이 위기냐 아니냐를 떠나서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음에도 노동운동의 대응은 지체되어 있고, 구조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는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를 양대 노총이 방관했던 것은 아닐텐데요.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대응계획을 갖고 있는지, 대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김태현 실장님부터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태현: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윤진호 선생님이 전반적으로 잘 짚어주셨고, 여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위기’의 외적 요인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추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전부터 신경영전략을 신호탄으로 새로운 통제방식이 대공장에 침투하면서 대공장 민주노조들이 현장 대응력을 점차 잃어갔던 과정에 대한 것이죠. 이렇게 자본의 논리가 야금야금 현장에 스며드는 과정이 있었고, 1997년 경제위기는 이러한 흐름에 탄력을 줘서 사회를 전체적으로 재편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 한 것이 민주노총으로서는 뼈아픈 부분입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에게도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객관화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와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는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총연맹의 구조가 차분하게 낡은 틀을 재편하는 조직적인 방안을 고민해서 만들고, 이를 가지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죠. 뭐랄까, 한시도 쉴 날이 없이 현장에서 올라오는 투쟁사안들에 그때그때 대응하기에도 바쁜 구조라는 겁니다. 단적으로 산별노조 전환과 관련된 상황을 봐도 예전에도 민주노총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각 연맹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역시 사업계획에는 들어있지만 작년 말부터 민주노총의 모든 역량이 투입된 비정규직입법안과 관련된 투쟁이 최근까지 이어졌고, 또 6월에도 계속될 예정이라 산별전환과 관련된 계획의 진전이 방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내부 혁신이든, 조직 재편이든 비정규직 조직화든, 투쟁 과제와 조직적 과제는 각각 자기 고유의 영역이 있는 것인데 그 관계에서 역량이 너무 투쟁의 과제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내부 혁신이나 변화에 대한 조직적 대응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시키지도 못하고, 계획서에는 있는데 추진하다가 실종되어 버리고 마는 일이 빈번했던 거죠.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민주노총의 선택은 10년이라는 진통시간을 겪었는데도 태어나지 못 했습니다. 총연맹이 제도개선 투쟁 및 교섭에서 가져야할 근본적인 원칙이 왜 10년이 넘도록 확립되지 못했는지 정말 의문스럽고 답답한 부분이 있습니다. 

시급하게 결정되어야 할 중요한 원칙들이 대중의 민주적 결정보다는 ‘과거의 관성’, 즉 정파적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실종되거나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것이 누적되면서 변화에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금 조합원들은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 ‘간부와 조합원들의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총연맹이 얘기하는 전반적인 조직 개편 문제보다 더 가깝고 중요하게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노동운동의 밑받침 역할을 하는 기본적인 토대가 많이 무너졌다는 것인데, 이러한 부분이 역으로 변화에 대한 대응의 발목을 잡는 부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노광표: 한국노총은 최근 노동운동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김종각: 윤진호 교수님께서 조직률 하락은 절대적인 지표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한국노총 내에서는 조직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노동운동이 자기 힘의 근거로 삼았던 것은 연대와 단결에 기반한 ‘사람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조직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자기 역량이 훼손되고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고, 이는 더 나아가 노동운동 정당성의 ‘위기’와도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1987년 이전 한국의 노동조합은 엄혹한 탄압 속에 있기는 했습니다만, 노동조합이 하는 활동이나 사업들은 그 자체로 외부적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죠. 그러나 아시다시피 최근에는 노동조합의 활동이 과거처럼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부분이 ‘위기’의 현상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이 발생한 데에는, 현실은 극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노동운동은 과거의 안정적이고 관성적인 구조 속에서 기존의 사업방식만을 고집하고 매달렸다는 데 원인이 있다는 생각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유연화가 확대되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현실 변화에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 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변화에 대한 둔감함이 자기 살을 파먹은 것으로 기업들의 숙련형성 전략 변화에 대한 대응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 내부 노동시장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죠. 외환위기 이전에는 노동자들의 숙련형성이 기업 내부에서 이뤄졌는데 최근에는 기업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이미 숙련된 노동력을 선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기업별 노조들에서는 이러한 내부 노동시장을 통한 숙련형성 과정이 조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변화 앞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다가 이젠 그마저도 가능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변화상황을 적극적으로 따라가거나 개입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노동조합은 역량을 축적하지 못 하는 구조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권력은 여전히 지도부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세상의 변화를 못 따라가더라도 기업별노조체제를 온존시키면서 불편함 없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죠.   
     
한국노총은 많은 자정의 노력을 해왔음에도 과거로부터의 뿌리깊은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민주성과 관련된 부분이 그러합니다. 총파업 등과 같은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기획, 실행, 평가가 조합원의 광범위한 참여 속에 이뤄지지 못 하니까 사업이 힘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역량의 축적이나 조직 발전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권력이 행사되는 의사결정 구조가 지도부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데에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조합원 참여를 제도화하고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지금 한국노총이 맞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구두선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계획'이 필요하다”

노광표: 양대 노총 모두 변화된 상황에 대한 인식이 공감을 이루고 있고, 또 공유하고 있는 과제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별체제를 산별체제로 전환해야 하고, 작업장을 너머 사회개혁을, 그리고 정규직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운동을 만드는 것 등이겠죠. 양대 노총의 구체적인 대응전략에 대해 윤진호 교수님께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윤진호:  사실 거시적이고 거창한 이야기는 지금 상황에서 어쩌면 한가한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노동조합운동 내부와 외부에서 온도 차이를 많이 느낍니다. 어쩌면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 내부적인 부분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죠. 노동조합운동은 현재 문제의 심각성을 외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외부적인 목소리에 더 귀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최근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단기적이고 눈에 보이는 대응이 시급하게 제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양대 노총이 이와 관련해서 보여주는 행보는 문제의 외부적 파장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서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해서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계파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문제의 핵심은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이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서 의사진행을 하고 있는데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폭력적으로 이를 무력화시킨 것이고, 이러한 사태는 민주노총이 아니라 어떤 조직이더라도 그냥 넘어가면 조직의 존립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또한 한국노총의 경우도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사무총장의 금품비리사건에 대해 대응책을 발표했는데, 조금 미온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노총 전체 조직은 문제가 없는데 몇몇 말썽이 되는 것이 있으니 도려내겠다’ 대충 이런 이야기인데, ‘노동운동 전체가 문제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국민들이 볼 때는 그 정도로는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죠. ‘재정투명성을 강화하겠다’. ‘외부감사를 도입하겠다’ 이런 이야기들은 ‘조직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것들을 이제 하겠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고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양대 노총 모두 사건은 널리 알려졌는데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액션,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국민들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조금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충격적이리 만치 눈에 띄는 단기적인 대응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과감하게 선수를 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를 계기로 정규직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문제를 연동시키는 제안을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제출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구조적인 대응전략의 상과 관련해서는 문제진단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조합원들의 요구를 포괄적으로 대변 못 하고 있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변 못하고 있다’, ‘작업장을 넘어서는 사회적인 개혁요구를 대변 못하고 있다’ 등등의 진단에는 공감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대응전략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계속 지적되고, 평가를 하고 총연맹에서는 그에 합당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음에도, 그 계획들이 ‘구두선’에 그치고 제대로 실천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인즉슨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주체가 계획을 제출하는 양대 노총이 아니라 기업별 노조들, 특히 대기업노조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총연맹에서 갖가지 약속을 하더라도 노동운동 외부사람들에게는 ‘그냥 하는 얘기 아니냐’, ‘잠시 소나기 피해 가자고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구심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행동계획’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반드시 실제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업별노조들, 특히 대기업노조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산별노조로 전환이 완료되면 이런 식의 계획은 필요가 없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그것도 당장 여의치 않으니까, 일단 기업별로 묶여 있는 사업과 활동들을 업종으로든, 지역으로든 기업 밖으로 끄집어내서 구체적인 사업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역 및 업종을 중심으로 고용안정체제나 복지체제를 구성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고, 비정규직과 관련된 사업을 고민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노조를 도덕적으로 비난한다고 될 일은 아닐 테고, 유인동기를 줘야 합니다. 그리고 외환위기 후에는 대기업 노조들도 기업 안에서 해결 못 하는 문제들이 서서히 많아지고 있으므로 유인동기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을 끄집어내서 모범사례를 만들고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이러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파갈등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만약 지도부가 기업내부의 사업을 바깥으로 끌고 가려고 하더라도 다른 정파들이 틀어버리면 사업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죠. 사실 정파문제란 노동운동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이고, 또 조직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로서 서로 다른 쪽을 존중해주고 민주적인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한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저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문제에서는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중요한 문제를 선택함에 있어 자꾸 정파끼리의 정치에 매몰되어 버리고 일이 진행이 되질 않으면 조합원대중에게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파정치에 갇혀 해결이 잘 안 되는 이슈들은 조합원 전체투표를 통해서 해결하자는 것이죠. 

그런데 노동운동이 해결책을 내놓고 이렇게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하면서도 노조가 스스로 환경 변화에 알맞은 대응을 잘 진행시키지 못하면,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올 해 하반기에 예정되어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도 그러한 맥락 속에 있는 것일 터이고요. 노동조합이 스스로 혁신해 내지 못하면 외부의 압력을 통해 변화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부 압력을 통한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김태현: 아까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는데 민주노총의 대응계획과 관련하여 조금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윤진호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단기적인 대응과 관련하여, 지난 대의원대회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는 이미 끝냈고, 조사에 따른 대책을 공식적인 의결단위를 통해 결정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좀 더 빨리 대응하는 것이 필요했겠지만, 지난 해 말부터 비정규직입법안 관련 투쟁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그동안 공식적으로 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또한 대공장의 채용비리와 관련해서는 지난 번 기아차동차 사태 때는 금속연맹의 지도부가 공석이어서 적극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해당연맹이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노조 측에서도 비리와 연루된 사람이 누구이든 일벌백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실 채용비리는 자본이 현장의 관리통제를 위해서 정파구도를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노동조합만 재정투명성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지난 기아차 사태 이후 몇몇 대공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윤리강령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노력들을 더 적극적으로 모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조직혁신, 내부 민주주의, 재정안정 등을 강화하는 안을 내기 위해 민주노총은 조직혁신위원회를 가동하고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투쟁과제에 묻혀서 현장으로부터 의견수렴이 잘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주제별로 해당 현장이나 연맹 간부들이 모여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고, 올 해 7월경에는 이와 관련된 초안을 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을 거쳐 조직적 방침을 결정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하셨습니다만 현재 노조운동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증폭시키는 것은 노조운동이 대표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기업별체계 속에서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선도투쟁은 1987년 이후에는 중소사업장들의 임금·근로조건까지 같이 끌고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는데, 현재는 대기업과 중소업체 노동자들의 이해가 배치되는 상황에까지 와 있습니다. 현재의 조직적인 틀로는 노동운동이 대표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을 추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들의 조직화를 지원하고 이를 위한 활동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50억원 기금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데, 현재 판단으로는 목표치의 절반 정도를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실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기초해서 대책을 마련하여 실제 모금을 목표치의 80%까지 끌어올려 실질적인 비정규직 조직화에 박차가 가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서 빈곤과 차별이 전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요구로서 거칠게나마 ‘무상의료·무상교육’의 슬로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공공성 의제를 조합원 속에서 어떻게 교육, 훈련하여 대중투쟁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고민이 많습니다. 정책적 대안도 정교화해야 하고, 조합원들에 대한 선전도 강화해야 하는데,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복수노조문제는, 거칠게 얘기해서 비정규직 입법안이 노동시장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면, 이는 노사관계 틀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정책적 입장과 투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 집행부는 올 해, 내년, 이제껏 말씀드린 비정규직 문제, 사회공공성 의제, 노사관계 재편 등의 세 가지 의제들을 중심으로 총력투쟁, 조직화 사업, 조직혁신 등을 배치하고 매진하겠다는 방침과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고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7년 노동관계 재편 그리고 사회적 교섭 

노광표: 2007년 복수노조 금지,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 그리고 올 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추진될 노사관계 로드맵 등은 노사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비정규직 입법안 투쟁을 되돌아보며, 한국노총은 이러한 과제에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갖고 대응할 생각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김종각: 지난 4월 한달 간 비정규직입법안 처리를 위하여 노사정이 11차례 협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한국노총이 이 과정에서 목표로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쨌든 실질적으로 비정규직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안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 사회적 교섭, 혹은 사회적 대화의 틀을 재구축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비정규직입법안이 아직 통과되거나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두 가지 목표가 둘 다 미완인 상태로 큰 흐름이 지나갔다는 점에서 한국노총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연대와 공조의 틀을 끝까지 지켜나갔다는 것은 성과입니다. 또한 이번처럼 노사정이 하나의 의제를 가지고 서로 진지하게 경청하며 협상했던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합의는 안 됐지만, ‘결렬’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독자적인 성명을 내지 않은 것은 한국 노사정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제 공은 노사정대표자회의로 넘겨졌고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만일 6월 국회에서 이러한 성과를 무시하고 강행하려고 할 경우 한국노총으로서도 강력하게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좀 전에 김태현 실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복수노조 허용 등으로 대표되는 변화는 신자유주의적 노사관계 재편의 완성이고, 다양한 의제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노사관계로드맵을 꿰뚫고 있는 핵심기조는 이를 만든 사람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노동조합의 무력화, 약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업장 내에 노조와는 별도로 근로자대표를 두겠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대표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한편, 외환위기 이후 새롭게 나타났거나 강화된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들을 제도적으로 포괄하려고 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되는 데에는 노동조합과 해당 노동자들의 직접 개입과 요구 관철이 필요하겠죠.    

이렇듯 재편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적 노동관계에 있어서는 유연화와 불안정성의 강화로 나타난 새로운 고용형태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집단적 노동관계에서는 노동조합의 책임 강화라는 빌미로 부여되는 짐과 책임, 즉 복수노조 허용이 가져올 노동조합의 대표성 훼손에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복수노조가 허용이 되면 기존 노조가 잘못해서, 기존 노조와 생각이 달라서 새로 노조를 만들거나 혹은 자본이 껴들어서 노조가 만들어지는 등 정말 다양한 양태가 나타날 텐데, 이러한 변화를 노동조합이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조정하지 못하면 분열되고 파편화된 모습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양대 노총이 서로 조정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심각한 양극화와 비정규직문제에 역점을 두기 위해 한국노총에서도 몇 가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집행부 내에 비정규직부서를 별도로 독립시켰고, 한 사업장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이원화하여 비정규직이 훨씬 높게 책정되도록 지침을 정했고, 최저임금연대회의 활동을 통해 전체 노동자 정액임금의 50%를 최저임금으로 정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의 고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아시다시피 비정규직입법안과 관련해서는 민주노총과 양대 노총 공조를 이뤄냈고요. 

노사정위원회와 관련하여 사실 한국노총 내부의 평가도 다양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노사정위원회의 거부, 불참보다는 참여하여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있습니다. 현재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예정되어 있고, 이를 통해 노사정위원회의 재편과 참여 여부의 문제가 민주노총에게 던져져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쨌거나 요즘과 같은 분위기에서 양 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함께 들어간다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민주노총이 없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됩니다. ‘너희들은 반 쪽 대표 아니냐’ 하는 태도가 깔려있다는 것이죠. 

노광표: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