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적 조합주의에서 살릴 것과 죽일 것은 무엇인가

노동사회

전투적 조합주의에서 살릴 것과 죽일 것은 무엇인가

편집국 0 4,191 2013.05.17 10:03

최근 제기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주체들의 전략 선택이나 운동노선에 기인하기보다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구조로부터 발생한 것이었다. 비정규직 문제나 운동노선의 문제, 조직률의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도부가 운동노선을 바꾼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주어진 객관적 조건, 구조적 제약 속에서 주체들의 전략 선택이 쉽지 않도록 만든 ‘구조’가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의 ‘변동’에 대한 주체들의 서로 다른 전략적 대응을 추적해보아야 한다. 

여기서 1987년 체제의 민주노조 운동노선으로 일컬어지는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운동노선에 관한 한 ‘전투적 조합주의’는 현재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의 결정적인 준거이므로 운동의 위기를 해명할 수 있는 좋은 실마리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jgno_02.jpg종속적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등장

우리 사회 노동체제는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해서 급속하게 변화해왔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 자유화 확대와 노동사회에 대한 반민주적 억압이 교차했던 과도기 노동체제, 1987년 체제는 이제 결정적으로 해체되었다. 해체된 낡은 체제의 잔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종속적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체제의 모습은 분명해졌다. 

노동체제 변동을 야기한 구조적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기본적인 원인으로는 ‘정치적 민주화의 확대’를 들 수 있다. 1987년 체제가 형성된 것은 시민사회의 자유화, 민주화와 노동사회의 반민주적 억압의 지속이라는 모순구조에 기인하였다. 따라서 정치적 민주화의 확장은 민주화로부터 배제되어 있던 노동사회의 민주화를 확대하는 압박을 낳았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로의 권력 성격 변화는 그 자체가 체제 변동의 일차적 계기가 된다. 

이와 연관해서 체제 변동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민주노조운동의 일관된 투쟁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1997년 겨울 총파업의 정치적 의미는 바로 이 점과 연관된다. 10년에 걸친 치열한 투쟁에서 민주노조를 방어 유지했던 전체 운동역량이 투쟁 속에서 드러난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전투적 조합주의로 규정된 운동노선의 가능성과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 준거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같은 해 발생한 IMF 외환위기는 체제 변동을 급속히 진행시킨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것은 주변부 포드주의 축적체제의 심화된 위기가 폭발적인 형태로 나타난 사건이었다. 1998년 이후 가혹하게 진행된 노동시장 유연화, 구조조정은 기업별 정규직 조직노동자 중심의 노동체제를 근원으로부터 해체하였다. 1987년 체제가 대사업장, 기업별노조의 고용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면, 그 구조적 토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효과를 낳은 것이다.

요컨대 정치적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충격,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역량 강화와 제도화에 의해 낡은 체제는 급속하게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순한 외적 환경의 변화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민주노조운동 주체를 포함한 객관적 구조의 변동이었고, 필연적으로 구조 변동에 대한 운동주체의 능동적 대응을 요구하는 성격의 변화였다. 체제 변동이 노동운동에 미친 효과, 혹은 함의는 대체로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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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변동이 미친 세 가지 효과

먼저 1987년 체제 아래서 민주노조운동이 투쟁하고 성장하도록 ‘강제한’ 구조적 조건이 상당 부분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개별 투쟁에서 계속되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을 양적으로 질적으로 발전시켜온 기제가 약화된다는 점이다. 낡은 체제 아래서 노동사회의 비민주성, 국가의 억압성은 역설적으로 노동운동의 성장을 야기한 내적 요인이었다. 전노협 조직의 전투적 쟁의는 직접적으로는 조직 손실을 야기했으나 민주노조의 정신과 연대의식을 다수 미조직, 미가입노조에 확산시켰다. 이제 그 기제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합법화된 민주노조는 기존의 특수한 지위, 일종의 특권적 위상을 잃고 평범한 또 하나의 노조가 되었다. 이른바 ‘양대노총 체제’ 노동 정치의 일차적 함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에서 이는 곧 1987년 체제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목표가 일정하게 성취된 것을 말한다. 그것은 작업장 단위 민주노조 인정, 기업노조들 간의 연대활동의 인정, 곧 민주노총의 합법화라는 시민권 회복의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위기는 하나의 험난한 고개를 넘은 후 만난 더 큰 고개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인 셈이다.

둘째, 체제 변동으로 말미암아 민주노조운동의 중장기 전략과제, 산별노조의 건설과 정치세력화가 비로소 현실적인 과제로 되었다. 주지하듯이 이 과제들은 1987년 체제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그 시기에는 직접적 과제일 수 없었던 과제였다. 계급운동으로서 노동조합운동이 기업단위의 노조 활동, 정규노동자의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머무를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업단위 노조 자체를 불인정하고 억압하는 국가 자본과의 긴박한 투쟁 속에서 현실적인 과제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기업 단위의 민주노조가 용인된 이후 곧바로 기업노조의 한계, 경제주의 의식의 한계가 전면화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 이 과제가 현실화된 것이라는 판단은 계급적 연대조직 건설을 위한 최소한의 조직적 기반이 마련된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기업노조들 간의 느슨한 연대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80만 조직의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조직화를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이미 민주노조운동은 불완전하나마 산별조직화, 정치세력화를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등의 산별 형식을 갖춘 조직들은 많은 내적 한계에 직면해있다. 2004년 총선 이후 분명히 경험한 것처럼 갓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 조직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노력들은 큰 틀에서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서투른 몸부림으로, 그 첫 시도로 볼 수 있다. 그 한계를 과장하거나 그 의미를 과대평가하는 일은 모두 섣부른 인식이다.

셋째, 체제 변동에 따른 노동정치 지형 변화의 무게를 결정적으로 확대한 것은 역시 국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대공세였다. 비정규직 노동자, 압도적 다수의 미조직 노동대중의 문제는 IMF 외환위기 이전에도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만 할 큰 강이었다. 민주노총이 실질적으로 합법화된 바로 그 해에 외환위기가 닥쳐왔다는 것은 우리 노동정치의 특수한 조건일 것이다. 이 조건은 위기감을 크게 증폭시켰으나 반대로 새로운 운동 과제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 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1998년 이후 전면적 구조조정의 혼돈을 거치면서 민주노조 내부에서 ‘발전전략’의 성찰이 시작되거나 ‘비정규직’, ‘산별노조’, ‘경제주의’ 문제의 무게를 공감하게 된 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신자유주의 대공세가 체제 해체의 효과를 배가하게 되는 중요한 측면은 국가와 자본의 노동정치 전략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고용 문제는 국가와 자본의 전략적 기획에 의해 노동정치의 핵심 사안이 되었다. 그것은 이미 존재했던 노동계급 내부의 분절화와 이해 대립을 극적으로 확대, 부각시켰다. 그리고 국가 경쟁력과 노동유연화, 사회적 합의와 노사정위원회, 세계화와 지식정보화사회, (기업)노조의 이기주의와 경제주의 비난, 최근의 일자리 이데올로기까지,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와 새로운 통제방식의 시도는 가히 전면적인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정치적 형식적 민주화의 종결 국면에서 자유주의, 보수-수구분파를 망라하는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단일한 지배블록으로 구축된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대동맹’은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이라는 이념으로 자본 분파들이 해체, 재결집하는 헤게모니 이동을 뜻한다. 민주화 국면에서 민중진영과 함께 했던 다수의 시민운동 세력의 보수화도 그것의 한 단면이다. 곧 현재의 국면은 분절되고 분열하는 노동운동과 결집하고 있는 자본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1998년 이후 노동정치에서 세력관계는 크게 역전되었고 민주노조운동은 급속하게 수세적 국면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리하면 신자유주의 대공세와 함께 진행된 체제 변동은 노동운동의 위기를 구조화하였고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이 위기는 단순히 지도부 운동노선의 한계, 잘못된 실천과 분파적 행동, 특정 외부조건의 변동 등 부분적인 원인들로 환원할 수 없는 전방위적인 것이란 점에 그 특징이 있다. 또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돌파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위기이므로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민주노조운동의 대응에 있어 기존 전략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위기이다.

전투적 조합주의: 비판론과 옹호론 

1987년 체제 노동운동의 노선은 흔히 ‘전투적 조합주의’로 규정되어 왔다. 운동의 위기에 대한 주체적 대응은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평가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리고 있다. 

그 하나는 전투적 조합주의가 기업별 노조의 위장된 실리주의, 경제주의이자,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시대에 걸맞지 않는 최대강령주의라고 비판하는 관점이다. 위장된 실리주의, 경제주의는 흔히 ‘자판기노조’라고 불리는 대기업노조의 임단투 위주의 전투적 투쟁을 말한다. 과격한 언술, 투쟁 일변도의 전술 구사는 임금·노동조건의 개선이라는 경제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노동해방’, ‘사회주의’, ‘변혁’은 현재의 조건을 무시하고 변화된 상황에 눈감는 선동적 구호일 뿐이다. 실제로 이를 강령적 요구로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과거 운동의 관성이거나 이론적인 오류일 뿐이라고 본다. 결국 이 둘을 결합하면 전투적 조합주의는 대기업 노조 중심의 경제주의 노조운동에 불과한 것이므로 ‘대체로’ 전면적으로 파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논의의 실천적 결론 중 하나는 이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대통합이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절실해졌다는 주장이다. 전투적 노조주의라는 부정적 요소를 제거한 이후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위기 국면에서 통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비판론이라 할 수 있는 이 관점이 강조하는 것은 노동운동을 둘러싼 조건, 상황이 변하였으므로 전투적 조합주의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낡고 잘못된 노선이라는 지적이다. 좀 단순하게 말하면 ‘세상이 바뀌었는데 노동운동은 낡은 노래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인식일 수도 있다. 결국 ‘적응이든, 대응이든’ 바뀐 노동정치 환경에 따라 변화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 변화의 내용에는 ‘교섭과 투쟁의 결합’이라고 정당화되는 각종 참가 전략의 강화, 투쟁과 더불어 ‘합의·타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참가를 통해서 각종 제도적 개혁을 이루는 것이 주요한 목표가 되며, 그것은 ‘사회개혁투쟁’이 된다. 임금·노동조건 중심의 협소한 기업별 노조주의, 경제주의를 극복하고 나아가 노동계급 이외의 여타 계급 계층, 즉 국민 대중의 이해를 대표할 것을 주창한다. 이때 산별노조와 민주노동당은 전략 전환의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설정된다. 또 주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노동운동의 고립화’ 현상에 대한 인식이며 따라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은 대안이 된다.  

두 번째 시각은 ‘계급성’, ‘변혁성’, ‘현장성’, ‘전투성’을 강조하면서 기존 운동노선을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옹호론이다. 이들이 전투적 조합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천적으로 본다면 전투적 조합주의를 유지하거나 더 발전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옹호론의 주요한 문제의식은 자본주의적 모순과 착취에 있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없다는 인식이다. 반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과정에서 노동 대중의 상태는 극도로 악화되고 있으므로 보다 전투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고 본다.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지도부가 개량주의 노선으로 대중들로부터 괴리되는 현상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위기에 대한 일차적인 대안은 여전히 투쟁에 목마른 현장을 재조직하고 현장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업별노조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기업단위 노조운동의 의의를 여전히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옹호론자들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 참가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인식과 연관된다. 산별노조 건설의 과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왜냐하면 조직의 집중화는 현재 기업별노조 체제에서도 존재하는 관료주의 문제를 더 심화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겠으나 일부에서는 당의 이념적 한계, 조직 구성의 문제 등을 들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내보이기도 한다. 요컨대 옹호론은 비판론과 비교하면 전투적 조합주의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그 이유는 내부의 의견이 다양한 것에서 찾을 수도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운동노선이 여전히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대체적인’ 인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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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 조합주의는 폐기의 대상이 아니다

이상의 두 가지 입장은 현재 접점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사회적 합의, 노사정위 참가, 산별노조와 민주노동당 등 당면한 실천적 쟁점에서 대립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투적 조합주의 문제 그 자체에 대해 양측이 한 번도 진지한 상호비판을 제기하지 못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을 제안하며 이 문제를 보다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문제제기 하고자 한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1987년 체제, 10년의 투쟁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을 성장시킨 전투적 조합주의를 수명을 다한 폐기물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고 본다. 반대로 변화된 구조적 지형 위에서, 새롭고 거대한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으로 주체 전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먼저 제기할 것은 1987년 체제 10년 동안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제약된 정치지형 속에서 최선의 운동적 대응을 요구하는 일은 어렵고 심지어는 불가능한 요구일 것이다. 따라서 그 기간동안에도 여러 가지 지점에서 한계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1987년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전투적 조합주의는 큰 틀에서 정확한 계급적 운동노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체제의 구조적 제약, 주체의 제한된 역량으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여러 측면이 내포되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1987년 체제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를 준거로 해서 전투적 조합주의를 완전히 폐기하자는 입장 즉, ‘180도 전환’은 큰 오류이다.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의 과거 역사, 정체성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판론의 일부에서 이런 방향의 문제제기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금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투적 조합주의는 그 합리적 핵심과 한계를 명확히 구분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크게 네 가지 점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① 계급적 적대의 원칙은 살려야 한다
국가 자본에 대한 비타협적 계급적 대립의 측면이다. 주지하듯이 1987년 체제 아래에서 민주노조운동은 국가·자본과 명료한 전선을 긋고 대립하였다. 이는 계급운동으로서의 민주노조운동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 발전시켜야 할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1987년 체제에서 계급적 대립의 정신은 실상 민주노조운동의 주체적 선택만의 결과는 아니었다. 즉 체제적 조건과 국가·자본의 배제전략이 강제한 측면이 강했다. 가혹한 억압의 조건에서 단위 민주노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한적인 대립 외에는 여타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한편에서 계급성의 강조, 혁명주의적 언사, 전투적 행동방식이 있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성과가 정규직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 실현으로 귀착되는 한계도 존재하였다.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계급적 적대성은 현실에 있어 경제주의적 실천으로 고착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또 국가·자본의 이데올로기공세와 함께 이런 조건은 ‘전투성’을 과장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 효과를 과대평가하여 계급적 적대의 원칙마저 포기하려는 경향이 최근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즉 이를 교섭과 투쟁의 결합문제, 전투성의 문제로 환치시켜 사고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전투성은 계급적 대립의 하나의 현상적 표현인데 이를 전부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그리하여 전투적 경제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계급타협주의로 나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전투성이라는 투쟁방식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 합의주의나 ‘참여’ 일변도의 전환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② 기업에 갇힌 현장이 아닌 전국적, 계급적 현장 동력을 형성해야 한다
둘째, 현장성의 문제이다. 1987년 체제의 노동운동은 기업별노조 체제의 조직적 기반 위의 운동이었다. 개별 사업장의 임단협 교섭이나 일상 활동이 곧 전체 자본, 국가권력과의 대립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투쟁력은 운동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현장 조합원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참가와 요구, 그리고 투쟁이 민주노총을 만든 것임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현장 동력은 근본적으로 제약된 것이었다. 대사업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에 의존했던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구의 측면에서 민주노조 사수와 함께 경제적 이익의 끊임없는 확대라는 경제주의 요소를 핵심으로 하는 투쟁이었다. 그 현장 동력은 어용노조와 다른  ‘민주’노조를 만들었으나 그것은 기업노조에 제약된 성격의 ‘민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성 강조는 구조적 조건의 변동과 무관하게 항상 타당한 것이 아니다. 변화된 조건 속에서는 ‘어떤 현장성이냐’라는 문제, 현장의 동력을 전국적, 계급적으로 모아내는 집중성의 문제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변화된 조건에서 현장의 동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 없는 노선 전환의 논의도, 산별노조 건설도 한계가 뚜렷하다. 최근 민주노총 사태에서 현장노동자, 조직의 자발적 참가를 형식적 민주주의의 잣대로만 재단하는 지도부의 태도도 이 점과 연관된다.

③ 기업노조간의 연대를 버리고 계급적 연대를 재구성하자
셋째, 전투적 조합주의는 단위노조를 넘어서는 전국적 연대의 운동노선이었다. 곧 단결과 투쟁이라는 연대성의 원리를 생명으로 하였던 운동이었다. 전투적 조합주의는 투쟁을 매개로 해서 계급적 연대의 폭을 지역에서 전국으로, 그리고 제조업에서 사무직 공공부문으로 확장해온 운동이었다. 지노협에서 전노협으로, 또 전노협에서 업종회의와 대기업연대회의로, 그리고 공공부문과 한국노총 산하 대사업장으로 나아간 민주노조의 조직 확대 양상은 이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반면에 이런 전국적, 전산업적 연대의 확장은 조직된 기업노조의 정규직노동자들에 국한된 것이었던 것도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전투적 조합주의의 연대성은 구조적으로 매우 제약된 연대성이었다.

외양은 전투적이나 실제는 기업노조의 ‘느슨한’ 연대라는 한계를 내장한 것이 전투적 조합주의라면 이제는 그 연대의 질적 수준을 제고해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있다. ‘전투적 조합주의’ 개념에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만의 연대라는 한계와 함께 계급적 연대를 지향했던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개념을 버릴 것이 아니라 재구성해야 하는 그런 과제 앞에 서있다. 이 계급 내적 연대의 심화과제 앞에서는 비판론, 옹호론의 상호비판이 모두 일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노선 비판이 ‘투쟁을 통한 연대의 확장과 심화’라는 원리까지 한꺼번에 내다 버리는 일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옹호가 ‘기업 울타리에 묶인 연대’까지도 방어하는 것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④ ‘노동계급만’의 조합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넷째, 1987년 체제에서 전투적 조합주의는 말 그대로의 ‘조합주의’와는 다른 것이었다. 즉 매우 제한적인 활동만이 가능했으나 본질적으로 그것은 조합주의적 의식과 실천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는 운동이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래 민주노조운동은 정책적 지향과 노동자계급의 협소한 이해를 끊임없이 넘어서고자 하였다. 1989년의 통일운동, 1990년, 1991년의 3당 합당 반대투쟁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후의 시기에도 전투적 조합주의는 민중적, 시민적, 정치적 의제를 일관되게 자기의 과제로 지향해왔었다. 민주노동당의 건설은 이와 같은 노력의 일차적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정치적’ 지향성은 노동체제 조건의 제약성, 대중과 지도부의 취약한 정치의식 등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한계를 갖고 있었던 것도 분명한 일이다. 민주노조의 정치적 개입과 활동은 시민, 민중진영의 연대를 얻어내는 수단에 불과하였을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조합주의적 의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노동대중에 대한 정치교육과 정치적 조직화도 구색 갖추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상황은 현재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비판론의 비판은 과도하고 일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제기의 기본 시각이 정확한 것이었다 할지라라도 그것이 전투적 조합주의의 본질적인 측면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주의 비판이 타당하다고 해서 정책 참가 중심의 노동조합주의가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비판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민주노총=경제투쟁, 민주노동당=정치사업으로 연결짓는 ‘양 날개론’으로 나아가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옹호론의 경우에도 작업장에 국한된 정치, 노동계급에 국한된 정치, 또 직접 행동에 기초한 정치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정권과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적, 정치적) 투쟁만을 정치로 파악하는 협소한 정치개념으로서는 민주노조운동 앞에 놓인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