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업공동화 논의와 노동의 대응

노동사회

일본의 산업공동화 논의와 노동의 대응

편집국 0 9,085 2013.05.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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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4년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된 결과의 요약이며 전체 내용은 『제조업공동화와 노동의 대응』(2004)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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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던 제조업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제조업)공동화론’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논의는 어느새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잘 표현하는 대표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투자심리가 위축되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깨진 호두(cracked nut)’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의 고임금, 노동시장의 경직성, 노동조합의 과보호, 투쟁적 노사문화 등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제조업공동화’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사용될 때부터 학술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현상의 일면을 강조하는 저널리즘 용어로 출발하였다. 용어의 애매함에서도 드러나듯이 한국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예단하였던 ‘제조업공동화론’은 현상에 대한 분석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정책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공동화’가 아닌 ‘해외이전’의 문제

한 국가의 제조업이 ‘공동화’ 되었는가를 판단하는 몇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의 제조업은 위기상황이 아닌 경제의 ‘버팀 몫’ 역할을 하고 있다. 제조업의 생산 추이, 국내생산 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 해외직접투자 확대로 인한 제조업 활성화 여부, 수요 대비 생산 대응능력 감퇴 여부 등 각종 지표를 준거로 할 때 한국의 제조업은 공동화되기 보다는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제조업은 급속한 해외투자 확대와 ‘생산시설 해외이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가? 문제는 ‘제조업공동화’라는 저널리즘의 개념으로 해명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이 급속한 생산시설 해외이전에 따라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제조업공동화론’으로 논의되었던 분석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이 드러내는 본질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최근 현대, 기아차가 부품업체에게 매출액의 40%에 해당하는 생산량을 중국 현지 공장 설립을 통해 공급하라는 ‘바이백 지침(역수입)’을 내린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 글은 산업공동화 논의가 가장 먼저 촉발되었던 일본의 사례를 살펴본다. 일본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제1의 경쟁력’을 갖춘 경제 모범국가로 이야기되었으나, 89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에는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라 불리는 장기 경제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성장 동력이 약화된 국가로 취급받고 있다. 이러한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성장 동력 약화 그리고 고실업 상황에서 제기된 것이 “산업공동화”론이었다. 이 글은 일본 산업공동화 논의를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봄으로써 ‘생산시설 해외이전’이 노동에 미친 영향과 대응전략을 규명하여 노동운동이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함의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 해외직접투자의 흐름과 전개

일본에서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에 따른 제조업 경쟁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시기는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였다. 물론 1985년 이전에도 생산시설의 해외이전과 해외직접투자가 진행되었지만 그 규모나 성격은 [그림1]에서 보는 것처럼 미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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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1985년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하였는데 그것은 1985년 9월의 플라자합의(Plaza Accord)에 따른 경제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의 결과였다. 일본 경제의 구조 전환을 몰고 온 플라자합의는 80년대 일본 경제의 최대 문제였던 대외불균형, 무역수지 흑자에 대한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의 압력 결과였다. 

플라자합의에 따른 급격한 엔고(244엔이 121엔으로 올라감)는 일본경제에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수출경쟁력의 원천이었던 제조업을 불황으로 몰아갔다. 외부 충격에 대응한 일본의 전략은 내부적으로는 경영 재구축 전략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해외진출 확대로 구체화되었다. 먼저 경영 재구축 전략의 주요 수단은 기업 합리화와 사업 다각화였다. 합리화전략이란 기존 경영자원의 재편성을 통해 생산효율을 향상시켜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인건비 및 설비투자의 억제, 인원 합리화’ 등으로 나타났다. 다각화 전략이란 생산 중점을 저부가가치 제품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이전시켜 생산단위당 이윤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엔고를 탈피하기 위한 해외진출 확대 전략으로 해외직접투자는 85년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게 된다. 85년 122억 달러를 기점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선 이후, 87년도에 334억 달러, 89년 675억 달러로 최고조에 달하였다. 85년 이후 5년간(86~90년)의 투자총액은 2,272억 달러로 이는 1951~85년의 35년간 투자누적액 836억 달러를 2.7배나 상회하는 것이었다. 86년 이후 90년까지의 해외직접투자의 특징을 보면 첫째, 제조업의 비중이 낮아진(30%에서 25%로) 반면 금융·보험·부동산 등 비제조업 투자 비중이 높아졌다. 둘째, 업종별 구성을 보면 노동집약적 산업은 축소되고 일반기계, 전기기기, 수송기기 등 가공조립산업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역 분포를 보면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비중은 축소된 반면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 비중이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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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던 해외투자는 1990년대 전반 버블경제의 붕괴에 따라 1991년부터 일시적인 하강국면을 거친 후 조정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제조업의 경우, 199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계속되는 엔고 현상을 탈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시아 지역으로의 생산거점 이전이 다시 가속화되어 1997~99년에는 제2의 피크를 맞이하게 된다. 그 후 아시아의 통화위기, 정보통신기술(IT)의 경기하락에 의해 주춤하였으나, 2001년 이후에는 다시 직접투자가 확대되고 유럽지역의 직접투자도 회복되면서 다시 해외투자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해외직접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제조업 해외현지법인의 매출액도 증가하였다. 2002년의 경우 해외현지법인의 매출액이 64.6조엔으로 증가하였고, 해외생산비율은 18.2%(해외진출기업을 기준으로 할 때는 8.7%에서 37.2%)로 높아졌다. 

이와 같은 해외생산의 확대에 따라, 해외현지법인에 의한 일본으로부터의 조달액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의 경우 15.1조엔으로 일본 총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1%에 이르고 있다. 조달액을 지역별로 보면 북미, 아시아, 유럽국가의 현지법인으로부터의 조달액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조달액은 1990년 1조엔에서 2001년에는 5조엔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조달액의 확대 배경은 현지법인의 설비투자에 따라 설비를 수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법인의 생산이 확대되면서 요구되는 고기능 반도체, 기능성 화학품 등 고기능부품소재는 현지조달이 어렵고 품질 성능 면에서 일본으로부터 조달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해외현지법인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이른바 역수입(逆輸入)도 1990년 이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2년의 역수입액은 6.4조엔으로 총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6.5%이다.  역수입액을 업종별로 보면 정보통신기계가 39.8%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전기기계가 10.1%, 운송기계가 9.8%, 일반기계가 7.4%, 정밀기계가 5.4%를 차지해 조립가공형 제조업에 속한 기업의 해외현지법인으로부터의 수입비중은 전체의 70%를 초과하고 있다. ([그림3]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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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이전에 대한 경제적 효과와 산업공동화 논란

제조업의 해외투자 확대는 일본 기업의 수익성 확대라는 긍정적 효과와 함께 국내 고용의 둔화라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해외투자법인은 국내제조업의 수익에 기여하고 있는데, 비제조업분야를 포함하여 일본해외투자의 수익은 2003년 기준으로 1조 5,279억엔에 이르고 있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북미가 8,673억엔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아시아가 5,691억엔, 유럽이 1,796억엔 순이다. 

다른 한편 엔고에 따른 지속적인 해외진출 증가는 산업공동화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90년대 해외직접투자는 80년대와 달리 고용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그 파급 효과는 더욱 확대되었다. 해외이전이 국내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산업공동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제조업의 해외이전에 의한 국내고용의 효과는 80년대까지는 정(正)의 효과였지만, 90년대 이후 부(負)의 효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95년 이후 10만명 이상의 고용감소”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關志雄(1997)은 “일본의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투자부진이나 실업률 증대의 원인을 해외직접투자의 급증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실제로 기업의 해외투자활동이 일본 경제 전체에 주는 마이너스 효과는 별로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적인 논란은 90년 이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90년대 이후 해외직접투자 지역이 북미로부터 아시아지역으로 이동하자, 일본의 무역구조, 특히 수입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국가에 대한 생산의 현지화는 일본에서 수출하였던 자동차와 반도체 제품이 중심이었다. 이들 제품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출대체기능 및 생산조절기능을 지닌 것이었고, 해외에서 현지 생산된 제품이 일본으로 역수입되거나, 일본의 제조 거점이 축소되는 이른바 공동화현상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90년대로 접어들면서 급증하기 시작한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제조업의 직접투자는 미국과 유럽지역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수출대체기능과 생산조정기능에 머물지 않고, 수평분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었다. 수평분업의 진전은 먼저, 공정간분업(工程間分業)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제품간 분업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공정간분업은 조립작업이 노동집약적인 공정을 해외로 이전하고, 저임금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 그 주된 목적이었다. 더욱이 진출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따른 국내시장의 확대는 완성품 제조업체에 결합된 부품 제조업체의 진출을 촉진하여 현지에서의 생산기반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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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무역구조 변화는 산업 고용구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에 따른 수입구조의 변화가 고용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산업구조가 되고 있다. 일본의 중소기업은 다른 국가의 중소기업과 비교하여 보면, 국가경쟁력이 약한 것이 특징이다. 즉, 독자부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대기업 완성품의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따라서 제품의 납품처인 대기업이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게 되면, 해외진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 결과 국내생산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 고용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져왔다. 

산업공동화와 노동의 대응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에 따른 국내 고용감소 및 제조업경쟁력 약화 문제에 대한 일본 노동운동의 대응은 민간대기업 중심의 내셔널센타인 렌고의 입장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렌고는 산업공동화를 경제발전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산업정책과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사의 참여적 협력관계가 중요함을 지적한다. 다음은 연합(렌고)의 대정부 및 사용자에 대한 산업정책 요구안 및 실현을 위한 세부 방안이다.  

연합(連合)의 산업정책 : 
주요 요구 항목

1. <노동을 중심으로 한 복지형사회>의 실현을 지향하면서, 국민생활에 기초한 장기간의 발전이 구해질 수 있는 분야에 신규산업·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구조개혁을 추진한다. 산업구조의 전환에 있어서는 산업의 활력을 강화하고 고용을 창출·확보하기 위해서 산업정책과 고용정책을 일체적으로 실시한다. 
2. 건전한 산업·기업체질을 구축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의사반영 시스템을 확립한다. 
3. 공정한 거래관계를 실현하기 위해서 독점적 위반에 대한 벌칙의 강화, 상거래에 있어서 우월적 지위에 남용을 방지한다. 또한, 입찰 제도를 개혁한다.  
4. 고도정보통신사회의 실현을 위해, 모든 국민이 정보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한다. 
5. 자립적인 중소기업의 기반을 확립하고, 독자적인 고도의 기술과 경영기반의 확립을 위한 각종지원책을 강화한다. 
6. “제조업 기반 기술기본계획”의 착실한 실행을 확보함과 함께, 제조기술자가 실감할 수 있는 초등·중등·고등교육, 특히 생애에 걸친 기술 기능의 획득, 계승, 인재의 육성을 추구한다.
7. 산업공동화를 방지하고, 지역의 특성을 활성화할 수 있는 지식 산업 집적 등 지역 제조업을 추진하고, 지역고용의 증대를 꾀한다.  
8. 자유로운 국제경제활동의 발전을 촉진함과 함께 무역협정에 있어서 노동, 환경 등을 사회조항에 삽입한다.
 

연합(連合)의 산업정책 : 
실현을 위한 방안
 
1. 산업정책과 고용정책을 일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예산 책정시에 고용창출량을 명확히하는 것을 추진한다. 또한 정부의 시책에 대하여는 관계심의회 등에 있어 고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의사 개진과 반영을 위해 노력한다. 
2. 각 도도부현에 있어서는 예산 책정시에 고용창출량을 명확히하는 것을 추진함과 함께 지역산업의 활성화, 고용의 창출을 검토 실행하기 위해서 노·사·정에 의한 간담회·연구회의 설치를 꾀한다.
3. 산업사업의 재생에 있어, 부당한 해고와 노동조건의 변경이 이뤄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과 함께 연합의 각 노동상담 창구로 문의하여 관련법규의 주지를 철저히 하도록 한다.
4. 모든 노동조합은 직장의 안전위생의 확보, 제품서비스의 안정성확보와 사고방지, 기업의 공정한 법규 준수를 위해 노사협의제의 재구축, 안전위생위원회의 정기개최 실시, 환경보전과 공정거래 등 기업행동을 감시하여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한다.
5. 각 정당 및 관계심의회 개최 시 노동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추진한다.
6. 중소노동운동위원회와 정책위원회의 활동 및 구성조직·지방연합회의 의견교환·제휴를 활성화하고, 정책입안 및 실현을 위해 노력을 강구한다.
7. 구성조직에서는 산업별노사간담회의 활용과 각종회의 등에서는 격차 시정을 위한 운동과제, 정책과제에 대한 연수제언 등의 방법을 실현한다. 
   자료: 
www.jtuc-rengo.or.jp

이 가운데 산업공동화 방지를 위한 요구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국내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의 생산과 연구개발 등 사업 활동을 지원하는 환경을 정비한다. 2) 지역의 특성을 활성화한 지식·산업집적을 촉진하고 지역고용의 증대를 꾀한다. 3) 지역의 중소기업 지원 센터에서 개최하는 각종 세미나 등에 노동법제 강좌를 개설하고, 중소기업 경영자의 준법정신을 향상시킨다. 4) 중소·벤처기업의 지원책을 강화하고, 지역산업의 활성화를 꾀한다. 5) 지역의 노동조합 대표가 지역의 산업진흥과 고용·노동조건의 유지 안정 등 지역활성화 정책에 대하여 지방경제산업국은 물론 47 도도부현에 설치된 중소기업재생지원협의회와 의견 및 정보 교환을 할 수 있는 장(field)을 설치한다.

즉, 렌고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운동의 개입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운동은 한편으로는 자체의 조직역량을 강화함과 동시에 정책능력의 향상을 통해 정부 정책에의 제도적 개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힘과 정책’을 통해 21세기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연합의 원칙은 결과적으로 기층 조합원의 대중동원이 배제된 채 상층 중심의 노·사·정 협의틀만 유지됨으로써 정책이 힘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한계를 노정하였다. 그 결과 ‘21세기 렌고비전’에서 ‘인간적인 노동과 생활의 틀을 구축’할 것을 다짐했지만 이것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한국 노동운동에 주는 함의  

일본 노동운동의 산업공동화 논란 속에서의 대응전략은 연합이 주로 민간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하는 조직적 성격상 전체 노동자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한편으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의 문제를 노조가 대변하는 노사협조주의적 방향으로 귀결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무한경쟁의 체제 속에서 ‘경쟁력 강화’라는 담론이 기업별 노조체제에 함몰되는 일본노동운동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산업공동화 논란과 그 대응 속에서 한국 노동운동이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산업공동화의 문제점은 일본 노동운동이 70년대 말부터 제기하였으나 이에 대한 대응방안이 주로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 제조업경쟁력 강화 문제로 국한된 결과, 무분별한 기업내 미시적 협조체제 구축되었다. 그 결과 기업경쟁력 강화 논리는 노동자의 임금동결, 명예(희망)퇴직의 수용, 비정규직의 확산, 노동시장 유연화(근로자파견법 등)의 제도적 보장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규직의 고용을 최대한 보장하고 그 부담을 관계회사 및 계열사로 전가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반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실리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체제에 국한된 노동조합운동은 갈수록 정규직 중심의 폐쇄적인 운동으로 약화되는 한계를 노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을 근간으로 한 정규직 노동조합은 8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확대되어 왔던 고용형태의 다양화, 노동자의 다양화와 개성화, 고학력화와 화이트칼라화와 같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고립화된 운동으로 축소되고 있다. 

둘째, 연합은 2001년 채택된 ‘21세기 연합의 비전’이라는 문건에서 ‘힘과 정책’을 통해 노동운동 앞에 제기된 도전을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이는 경기침체 상황에 따른 고실업 및 불안정한 고용문제 그리고 산업공동화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본 노동운동의 대응원칙이었다. 그러나 산업공동화에 대한 대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노동운동은 기층 조합원의 대중동원이 배제된 채 상층 중심의 노·사·정 협의로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여, 정책적 대응 역량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힘으로 관철시키지 못한 한계를 노정하고 말았다. 

셋째,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에 따른 일본 노동운동의 미약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일본에는 산업구조 개편기 산업정책의 참가를 통해 한계산업 및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각종 법안의 제도화 및 지방자치체 차원에서 고용문제의 사회 의제화를 꾀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추진된 대표적인 법안으로는 1977년 제정된 “특정 침체업체의 해고 근로자들의 임시처리에 관한 법”, 1978년 제정된 “부진한 지역경제로 인해 해고된 근로자들의 임시 처리에 관한 법”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법은 1987년 “지역고용개발촉진법”으로 통합되었으며, 법통과 이후 지역 단위의 활동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또한 사회적 협의 과정은 산업집적화 프로젝트를 이끌어 내는 기반이었으며 지속적으로 지역 단위 고용 총량과 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제를 담당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 노동운동은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에 따른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대한 자기 주도적 정책은 갖추고 있으나 이를 실현할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된 형국이다. 그 결과 노동조합 주도의 산업정책 개입 및 기업단위의 경영참가의 효과는 그 목표만큼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노조운동의 기반은 ‘정책과 힘’이라는 양 칼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일본 노동운동에서 찾을 수 있는 정책적 함의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