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여, ‘아픈 아이들’ 작은 외침에 귀기울이시라

노동사회

노동운동이여, ‘아픈 아이들’ 작은 외침에 귀기울이시라

편집국 0 3,263 2013.05.17 09:51

지금 우리나라의 0~10세의 아동 중 12% 정도가 아토피를 앓고 있고, 23%가 유아천식을 앓고 있다. 서울시의 아토피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중구에는 49.8%, 강남구에는 38.2%, 동작구에는 35%의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이 있고, 그 외의 구에서는 영등포, 종로, 용산, 강서, 노원, 서대문, 송파, 은평의 순으로 수많은 아토피 가정이 있다. 그리고 대구의 중구는 64.2%의 아이가 아토피를 앓고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황이며, 광주의 동구도 46.3%로 역시 매우 심각하다. 이는 정말 살인적인 수치이다. 울산미포, 반월공단, 여수공단 같은 곳을 살펴봐도 20% 이상의 아이들이 아토피를 앓고 있고, 광역단위로는 제주도가 23%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위의 수치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4년 국감자료로 제출한 수치이다. 즉, 자가치료나 한방치료를 받는 경우와 가난해서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집안의 아이들의 숫자는 빠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아토피와 천식 등 호흡기계통 질환을 통계학적으로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 ‘미세먼지’ 즉, 피엠텐(PM10) 통계이다. 미세먼지란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고 작은 먼지를 일컫는다. 1㎛은 100만분의 1미터이다. 이는 사람의 폐포까지 깊숙하게 침투해 각종 호흡기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린다. 이 미세먼지의 수치가 높은 곳 중에서 최근에 공사현장이 많았던 지역의 ‘건축허가면적’을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의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통계학적인 방식으로 어느 곳에서 가장 많은 아토피와 천식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즉, 공사장 근처 500미터에서 2킬로미터 사이에 사는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천식이나 아토피가 발생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세먼지, ‘건설입국’의 유아살해자

그러므로 신행정도시니, 기업도시니, 뉴타운이니 하며 다시 거세지고 있는 건설경기 바람은 이렇게 고통받는 아이들의 숫자를 점점 더 늘려갈 것이다. 아이와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어렵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순이라는 것이 언제나 은폐되고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대기오염과 보건, 특히 유아 보건 사이의 관계는 지금껏 제대로 문제삼아진 적이 없다. 통계도 거의 없을 뿐더러, 더욱 중요한 것은 미세먼지라는 ‘침묵의 살인자’가 맺고 있는 이해관계 때문이다. 어떻게든 건설업을 진작시키고, 그를 통해서 경기부양과 고용창출을 만들겠다는 가부장적인 통치 이념에 모두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미세먼지에 노출된 산모는 4%의 확률로 저체중 아동을 출산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 미세먼지에 노출된 아이들은 ‘저발육’에 시달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미세먼지로 인한 저발육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단지 키만 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폐와 기관지 등 미세먼지에 노출된 기관의 발육이 부진해서 성인이 되었을 때도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나이 먹어서 노화가 진행되면 저발육된 호흡기로 인하여 수명이 4~8년 정도 줄게 될 것이라는 연구가 제출된 바도 있다. 그야말로 일부가 아니라 ‘세대’ 모두가 아픈 것이다. 그렇게 규정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이미 발생했고, 앞으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정지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엄청나게 건설사업이 진행되었고,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소득이 증가하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급증하여, 이미 프랑스를 제치고 독일 수준을 위협하고 있다. 건설경기가 살아나야 나라가 잘 산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잘 사는 것을 정말 잘 사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총생산 중 건설매출액은 이미 20%를 넘어섰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8~13% 구간을 절대 넘어서지 않고, ‘건설국가’라고 불렸던 일본도 15% 선에서 관리되고 있다.  

그러니까 진보와 보수가 모두 천상에서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논쟁을 즐기는 동안, 우리나라의 실제 모순인 건설업 비중이 다시 높아지고 있고, 그 속에서 국민경제가 ‘투기경제’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의 피해자는 집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아이들,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이다. 사태가 이럼에도 건설자본가 뿐만 아니라 대기업노동조합 조합원을 비롯한 ‘집 가진 노동자들’ 상당수는 어쩌면 은근히 투기경제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87년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자각과 성장을 경험했던 이들 중에서도 세월 속에서 좌파의 건강한 질문을 잃어버리고, 전쟁도 찬성하고 시대의 문제에도 눈감고,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우파 논리를 따라가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가슴 아픈 일이다. 

건설투기의 광풍이 퍼뜨리는 극우 문화 

그렇지만 아이들이 아프다는 사실에 대해서 가장 눈을 감고 싶은 세력은 ‘건설만이 살길이다’를 앞에 나서서 외치는 정치인들과 이들을 뒤에서 보호하는 일부 건설자본 그리고 실질적인 최대수혜자인 지방과 중앙의 투기자본들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이들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나는 중남미의 수탈경제 속에서 악랄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까우디요(Caudillo, 카리스마 있는 사나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대농장소유자, 광산소유자, 마약농장 주인들과 그들의 후견을 받는 정치인들의 관계를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논쟁은 정말 우스운 얘기다. 성장 없이도 토호들은 수탈을 계속하고, 분배가 없어도 토지소유자들의 지대 이익은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 유착이 내뿜는 ‘매혹적인 악취’는 점점 더 세상으로 퍼지고 있다. 아침에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TV 방송은 이러한 극우파 문화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남편이 바람 피우더라도 ‘조선여인’의 미덕을 발휘해서 10년 정도 참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더 참아보라고 은근한 조소를 가차없이 날린다. 시민의 발을 묶는 파업은 나쁜 것이고, 또 요번에 새로 생기는 아파트는 어디가 좋고, 어디가 투자가치가 높고, 또 점잖은 사람들이 점잖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그런데 이러한 논리들과 현재 주류 노동운동이 만들어내는 담론이 완전히 격을 달리하고 있을까?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전면 재개발과 국토균형발전의 담론에 노동운동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느낄까? 물론 내부에서는 다양한 노력이 있겠지만, 외형적으로는 건설산업만큼 노동운동도 어쩌면 ‘건설경기부양론’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미세먼지로 인한 천식과 아토피가 일반화된 이 시기에, 지역별 차이만이 존재하지 빈부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의 아이들도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이들도 아프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 모두가 아픈 것이다. 건설일용직 1천명 정도의 고용을 만들기 위해서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아파야 하는 것이라면 노동운동은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까? 

‘생명’ 위한 노동운동 활동이 보고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화학적으로 위험한 공정에 먼저 투입되는 인권유린의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택해야할 입장은 명확할 수도 있겠지만, 고용과 환경을 둘러싼 질문에서 대답을 명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러한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사회단체’로서 입장과 움직임을 가져야 한다. ‘공공선’은 소박한 전략이지만, ‘우리들만의 선’ 보다는 강력하다. 
노동운동이 ‘우리들만의 선’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극우파 문화에 찌든 아버지들을 경계선 밖으로 한 걸음만 끌어낼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새로운 진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극우파들은 노동운동을 자기이익에 미쳐버린 비도덕적 욕심쟁이로 몰고 있다. 조금만 더 신경쓰면 아주 작은 외침일지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작은 외침이 세상을 ‘생명’으로 이끌고 간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