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홍수시대, 그래도 노보는 필요하다 왜?

노동사회

정보의 홍수시대, 그래도 노보는 필요하다 왜?

편집국 0 2,764 2013.05.17 09:48

보건의료노조 경희의료원지부에서는 임단투 기간을 제외하고 매달 『민들레광장』이라는 노보를 발행한다. 노보를 발행한 지는 꽤 되었지만, 매달 내는 것은 이제 3년째. 2004년부터는 노보를 내기 전에 전임자와 함께 기획회의를 한다. 

지부 정서에 맞게, 지금 필요한 게 뭔지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그리고 외부에 글을 청탁하거나, 조합원에게 글을 써달라거나, 직접 쓴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마감 때가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다른 전임자를 괴롭히기 일쑤다. 왜? 편집이 잘 안 돼서. 글이 안 모여서. 

pslee_01.jpg생글생글 원고청탁, 부글부글 편집교정 

“저기 재미있게 읽은 책 소개하는 글 좀 써주세요. 조합원들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분이 많았어요. 저기 이번 민들레 광장에도 소개 글 좀 써주세요. 정말이라니까요. 꼭 써주세요. 써주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원고 청탁을 할 때 대부분 이렇게 말을 한다. 대부분의 조합원은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한다. “난 글을 못써.”라며 손사래를 치는 조합원, “말도 꺼내지 말라.”며 정색을 하는 분, 미안해하며 다른 분을 찾아보라는 분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글을 못쓰겠다는 것은 똑같다. 

그래도 끈질기게 부탁을 하면 간혹 글을 들고 오는 분이 있다. 딱 걸렸어! 이렇게 글을 들고 오는 조합원에게는 다시 부탁하기 쉽다. 이렇게 하나 둘, 걸리기만 하면 다음에는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차례다. 처음 한번이 어렵지 다음에는 좀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을 마시든 밥을 먹든 편안한 자리를 갖고 노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이렇게 노보가 나온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는 둥, 읽어본 조합원이 재밌다고 난리라는 둥 온갖 감언이설(?)로 글을 쓰도록 한다. 안 그러면 글 받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이게 맞는 거다. 글을 써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글 쓰는 것을 부탁하기 주저하게 된다.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 해도 본인이 자발적으로 써주는 것이 좋은데 아직 그렇진 않으니까. 

글이 예정된 마감 일까지 잘 들어오면 상관없겠지만, 대부분 마감 일을 어긴다. 또, 나는 이에 대비해서 마감 일을 조금 일찍 알려준다. 그래도 늦게 들어오고 시간은 촉박하다. 편집할 시간도 부족하고, 전임자들이 검토하는 시간까지 하면, 상당히 늦어진다. 처음에는 이것 때문에 신경이 예민했다. 그렇다고 어렵게 글을 써주는 조합원에게 심하게 독촉할 수 없고, 최대한 부드럽게 글을 빨리 써달라고 재촉을 한다. 그리고 만만한 게(?) 전임자라고 빨랑 글 쓰고, 받아오라고 -부서 소개 글이나, 신규조합원 글 섭외는 전임자를 통해 하고 있다- 온갖 독촉을 한다. 

그리고 ‘나 건들지마!’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 훨씬 나이 많은 수석부지부장님부터, 가장 연배가 비슷한 정책 부지부장님까지. 그렇다고 기죽을 전임자도 아니고, 오히려 미안해지는 건 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큰소리 한번 내보나하는 생각에 온갖 죽을상 힘든 척 다한다. 그렇게 노보를 인쇄소로 보내면 잘했든, 못했든 ‘이번에도 냈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진다. 

조합원의 글에서 현실을 느낀다 

노보에 글을 안 쓴다는 것은 귀찮거나 정말 못써서일 수도 있지만, 친노조 세력으로 보일까봐 두려워서인 분도 많다. 작년 4월, 한 조합원에게 새내기 소개에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고 했다. 참 예뻤던 ‘쫄래미(신규 간호사를 이르는 말)’에게 “다 쓰는 거”라고 글을 써달라고 했고, 선선히 수락했다. 그런데 이 때문에 병동 수선생님(수간호사)에게 찍혀서 마구 쪼였다는 소문을 들었고, 결국 교섭기간에는 선전물을 나눠줘도 받지 않았다. 

어떤 신규조합원은 글을 써달라고 하면, 자신을 채용한 “병원에 감사한다.”에서부터 시작해서 부서 이야기로 넘어가 윗사람 칭찬을 늘어놓기에 바쁜 경우도 있다. 한참을 들고 보면서,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슬프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도록 길들이는 병원에 화가 나고, 조합원의 처지가 슬프다. 그렇지만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며 손 내미는 듯 자신을 솔직히 내보이는 글을 만날 때, 힘든 파업과 교섭도 한번 겪어보면 큰 도움이 될 거라며 후배에게 권하는 글을 만날 때 그래도 큰 기운이 난다. 

노보가 더욱 필요한 시대 

예전에는 노보를 내는 곳이 참 많았다고 한다. 어디서든 노보를 내고 싶어했고, 또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노보를 내는 곳이 많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노보는 여전히 필요하다. 

예전에는 주로 유통되지 않는 정보(요즘도 그렇지만 노동자와 관련된 정보는 참 유통되지 않는다)를 유통시키기 위해서 필요했다면, 지금은 넘쳐나는 정보 중에 꼭 필요한 정보를 유통시키기 위해 노보가 필요하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노조가 있으니 나는 퇴직할 때까지 안전하겠지’하고 생각하는 조합원에게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줘야 하고, ‘웰빙’에 관심 있는 조합원에게 스티로폼 족탕기를 소개하는 등 다양한 이야기를 조합원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노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소재 빈곤으로 노보 만들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지부나 노조에서는 어떻게 노보를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점점 복잡해지는 이 사회, 보건의료노조 다른 지부들이, 민주노총 산하의 각 노조들이 발행하는 많은 노보들이 ‘이거 내보니까 조합원이 좋아하더라’, ‘이건 별로 안 좋더라’라며 서로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통할 수 있으면, 그런 날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